한동훈의 ‘동료 시민’과 86 운동권 청산론은 양립 가능한가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하 한동훈)이 연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민주당) 대표를 저격하고 있다. 민주당 현역 의원 평가에서 김영주 의원이 하위 20%, 박용진 의원이 하위 10%에 속하자 한 위원장은 “이재명 대표는 (하위) 1%에 들어갈 것 같다. 재판 다니느라 의정활동 제대로 못 하지 않았나”라고 되물었다.
윤석열 정부 초대 법무부 장관이던 한동훈은 지난해 12월21일 사직한 이튿날 국민의힘에 입당하고 12월26일 비상대책위원장에 취임했다. 취임한 지 채 세 달이 안 되었다. 그사이 민주당 공천 갈등 등의 여파로 이른바 ‘윤석열 정권 심판론’이 옅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 지지율이 반등하자, 경기 안산상록갑 단수공천을 받은 장성민 전 대통령실 미래전략기획관이 이번 총선 국민의힘 의석수를 150~160석으로 예상하기까지 했다.
한동훈은 1973년생이다. 그는 보수정당의 리더로서는 처음으로 ‘동료 시민’이라는 말을 대중화했다. “제가 말하는 동료 시민에서의 시민은, 특정 지역 주민을 말하는 게 아니라 ‘자유롭고 평등하고 권리를 가진 주체’ 즉 ‘개인’을 말하는 거였습니다. 과거에 ‘국가’의 시대, ‘국민’의 시대가 있었다면, 이제는 ‘개인’의 시대, ‘시민’의 시대라고 생각합니다(2월7일 관훈클럽 토론회).”
그간 한국 보수는 ‘아스팔트 태극기 보수’로 대표되곤 했다. 2015년 박근혜 정부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면서 ‘올바른 역사’가 무엇인지 국가가 정할 수 있다는 태도를 보여주었다. 21세기의 경제 10위권 대한민국에는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다. 드디어 한국에도 피통치자로서 국민의 의무만이 아닌, 시민의 권리도 주창하는 보수 리더가 등장한 것일까?
한동훈의 행보는 일견 그런 실마리를 보여주었다. 법무부 장관 취임 직후인 2022년 6월, 그는 1974년 박정희 유신정권이 조작한 ‘인혁당 사건’ 피해자 이창복씨에 대한 지연이자를 면제했다. 이창복씨는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8년간 복역하다 석방됐다. 2008년 재심으로 무죄판결을 받은 뒤 배상금을 먼저 받았지만, 2011년 판례가 변경되면서 받은 돈보다 더 큰 돈을 반환해야 할 처지에 몰렸다. 2013년 박근혜 정부 법무부가 배상금 반환 소송을 내고, 문재인 정부 법무부도 매듭을 짓지 않는 사이, 지연이자는 10억원 가까이 불어났다.
법무부 장관으로서 인구 위기 해법으로 ‘이민청’ 설립을 제안하기도 했다. “내국인의 출산율 증가만으로 인구 위기를 해결하기에는 이미 늦었습니다. … 우리도 외국인과 이민자를 (내국인과) 경계 짓기보다 어떻게 사회와 경제발전에 활용할 것인지 진지하고 계획적으로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2023년 7월15일 대한상의 제주포럼).”
“다른 정당 지지자도 동료 시민”
박상훈 국회미래연구원 초빙연구위원은 국민 대신 ‘동료 시민(fellow citizen)’이라는 말을 더 많이 써야 한다고 십수 년 전부터 강조해온 정치학자다. “지나친 단순화 같지만, 정치는 곧 말이다. 결국 정치가란 말로 공적 행위를 이끄는 시민 대표다”라고 정의하는 그는, 정치인의 말이 “정치적이되 아름다워야 한다”라고 쓴 적이 있다(〈정치적 말의 힘〉). 박상훈 연구위원에게 ‘정치인 한동훈의 말하기’에 대해 물었다. 박 연구위원은 “한동훈 위원장이 동료 시민의 의미를 자각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라고 답했다.
그는 한동훈의 ‘86(80년대 학번·60년대생) 운동권 청산론’을 예로 들었다. “이재명 대표의 민주당이, 운동권 특권세력과 ‘개딸 전체주의’와 결탁해 자기가 살기 위해 나라를 망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2023년 12월26일 비상대책위원장 수락 연설).” 박상훈 연구위원은 “팬덤 현상을 비판하더라도, 다른 정당 정치인뿐 아니라 이들을 지지하는 시민들 또한 일상을 살아가는 ‘동료 시민’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정치는 청산이나 심판 같은 급진적 변화보다는 조금씩 현실을 개선해가는 과정에 가깝다. 무엇보다 정치인의 말이 아름다우려면, 인간 삶의 고통과 슬픔에 대한 자각이 전제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세계 10위의 경제 대국이 되었어도 우리 안에는 덜 가진 사람들, 아이를 교육시킬 때 부족함을 느껴 괴로워하는 사람들, 산재나 참사 같은 원치 않는 비극을 당한 사람들이 있다. 그런 자각 속에서 정치라는 방법을 통해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야겠다고 여기는 정치가라면, 상대에 대해 조롱이나 야유의 언어를 쓰지 않아야 한다. 오히려 우리가 인간의 불완전함 때문에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 경쟁하지만, 어느 한쪽이 절대적으로 옳은 게 아니라고 인정하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박상훈 연구위원).”
김경율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은 〈월간중앙〉 3월호 인터뷰에서 “곁에서 본 한동훈은 진보적 자유주의자다”라고까지 평했다. 그의 말처럼, 한동훈은 진보적인가? 한동훈은 1월3일 비대위 회의에서 이번 총선 의제로 ‘격차 해소’를 제시하고, 국민의힘 당 강령 중 ‘경제민주화’ 관련 내용에 공감을 표했다. 그러나 격차 해소란 ‘동료 시민’ 간의 엇갈리는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일이다. 우리 시대 큰 격차 중 하나인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격차에 대해, 한동훈은 “목련이 피는 봄이 오면 김포는 서울이 될 수 있을 겁니다. 동료 시민이 원하시면 저는, 국민의힘은 합니다(2월3일 김포-서울 통합 염원 시민대회)”라고 말한다. 서울과 비서울 거주자 간 입장과 관점 차이는 사라져버렸다. 첨예한 이슈인 정년 연장과 연금 개혁, 대-중소기업 격차 해소, 세수 부족 해결과 불평등 완화를 위한 중산층 증세에 대해서 정치인 한동훈이 어떤 대안을 내놓았는지는, 판단할 근거가 아직 부족하다.
그렇다면 한동훈은 ‘자유주의자’인가? 지난해 7월 수해 실종자 수색 중 사망한 해병대 채 아무개 상병 사건을 수사하는 수사단에 대한 외압 의혹이 불거졌다. 윤석열 대통령이 외압을 행사해 임성근 당시 해병대 1사단장의 과실치사 혐의를 빼게 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에 항의한 박정훈 대령은 군형법상 ‘항명’과 ‘상관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채 상병 사망사건 수사 외압 의혹은 사실일 경우 실로 중대한 사건이다. 군인이 복무 중에 생명을 잃은 사건을 수사하는 데 윤 대통령이 자의적 판단으로 개입했을 가능성을 의미한다. 자유주의자라면, 침묵하기 어려운 사건이다.
그러나 채 상병의 생일이던 지난 1월2일 한동훈 위원장이 국립대전현충원을 방문한 자리에서, 정원철 해병대예비역전국연대 집행위원장이 “채 상병을 참배하고 가주십시오”라고 외쳤지만 그는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떴다. 한 위원장은 윤 대통령 졸업식 축사 중 한 카이스트 졸업생이 R&D 예산 삭감에 항의하다 경호원들에 의해 입을 틀어막힌 채 끌려 나간 2월16일 당일 기자들이 관련 질문을 하자 “(내용을) 듣지 못해서 말씀드리기 어렵다”라고 답했다. 한 위원장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 파행 운영이나, ‘김건희 특검법’에 여사 호칭을 붙이지 않았다며 선거방송심의위원회가 SBS에 내린 행정지도 등 언론자유 사안에도 특별히 의견을 내지 않았다. 오히려 “사직에서 야구를 봤다고 했지 사직구장에서 봤다고 하지 않았다”라며 〈오마이뉴스〉에 정정보도 청구를 하는 등, 자신과 관련한 보도에 대해서는 당 차원에서 적극 대응하고 있다.
한 국민의힘 지도부 인사는 그에 대해 “나이스하고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기존 방식이나 틀에 얽매이지 않고, 수요자에 대한 적응이 빠르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당내 관계자는 “노동이나 여성, 인권 문제에서 PC함(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감각이 몸에 배어 있다. 어떤 정책을 이야기할 때 자기 레퍼런스를 인용하는데, 주로 관련 서적이나 원서더라. 누구누구한테 컨설팅을 받는다는 얘기도 있는데, 내가 보기에는 ‘독고다이’ 같다”라고 말했다. 물론 김건희 여사 명품 가방 수수로 불거진 윤석열 대통령과의 갈등 이후 한동훈 위원장이 조심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비(非)윤석열계로 분류되는 한 국민의힘 의원은 “요즘은 대통령 눈치를 보는 것 같다. 공천도 ‘물공천’이다. 친윤계 핵심과 현역은 거의 다 살지 않았나”라고 말했다.
“우리는 정치인 한동훈을 잘 모른다”
한동훈 위원장은 ‘의원 정수 300명에서 250명으로 축소’를 주장하기도 했다. 한 위원장은 개인 의견을 전제로, ‘국민을 대표하는 직역인 만큼 국회의원 세비를 현재의 3분의 1인 국민 중위소득 수준으로 낮추자’고 했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의원 세비를) 별도 기구를 설치해 국민 결정에 맡기겠다”라고 말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1월17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정당이 가장 손대면 안 되는 표가 정치 혐오에 기반한 표다. 특권 내려놓기를 얘기하는 순간 어느 당이든 혁신이 끝났다고 보면 된다”라고 비판했다. 최혜영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의원 한 명이 대변해야 하는 국민 수가 많으면 대표성이 떨어지고, 국민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할 우려가 있다”라고 말했다.
박상훈 연구위원은 “한국보다 인구가 1.5배 많은 독일은 (연방의회 의원 포함 전체) 선출직 규모가 20만명으로, 우리보다 70배나 많다. 인구 대비 선출직 규모나 예산으로 보면 한국은 정치에 지독히 돈을 안 쓰는 나라인데도 비슷한 주장이 끊이지 않는다. 법률가나 의사와 마찬가지로 선출직도 숫자를 늘려야 기득권이 줄어든다는 사실을 무시한 결과다”라고 지적했다. “오히려 물어야 할 질문은 ‘정치 경험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이토록 한국 정치를 휘저을 수 있는지’ 그 자체다. 한국 정당과 정치인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상대를 요령 있게 비난하는 걸 기사화하기 좋아하는 언론들이 한동훈 위원장에게 기회를 주었을 뿐이다. 우리는 정치인 한동훈을 아직 잘 모른다.”
돌이켜보면, 정치 경험이 없으면서 한국 정치를 휘저은 정치인이 한 명 더 있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이다. 그도 2012년 10월 ‘국민 여론’을 들어, ‘정치권이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논리로 의원 정수 축소를 주장했다. 안철수는 한때 ‘새 정치’의 대명사였다. 당시 지지율 20%대를 기록했지만, 2024년 현재 대선주자 지지율은 1%대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전혜원 기자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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