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테쉬'가 열어젖힌 글로벌 유통전쟁[목멱칼럼]
중국 이커머스 상품의 가격을 보면 싸도 정말 너무 싸다. 쿠팡에서 20만원대에 판매중인 남성용 트래킹화는 테무에서 10분의 1 가격이면 살 수 있다. 모르는 브랜드에 품질도 의심스럽지만 트래킹화가 1만~2만원이라니 믿기지 않는다. 알리익스프레스(알리)의 ‘천원마트’나 ‘선착순 50%’에 나와 있는 물건들은 진짜 1000원대다.
중국 직구 제품이 가격은 싸지만 품질이 조악하고 반품과 환불이 잘 안된다는 불만도 제기된다. 그러나 워낙 가격이 싸니 사봐서 마음이 안 들면 버려도 된다는 생각으로 구매한다고 한다.
파격적 초저가를 앞세운 중국 직구 플랫폼에 소비자들이 몰리고 있다. 지난 2월 알리 앱을 사용한 소비자는 818만명으로 쿠팡(3010만명)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국내에 진입한 지 반년밖에 안 되는 테무는 581만명의 사용자를 끌어모아 전체 4위에 올랐다. 중국발 온라인 직구액은 2023년 3조2873억원으로 전년보다 121%나 증가했다.
중국 쇼핑 앱의 부상이 해외직구에 대한 혜택 때문만은 아니다. 현재 150달러 이하의 해외 직구는 품질 인증이 필요 없고 관세 및 부가세를 면제받아 정상 수입품보다 싸게 팔 수 있다. 이런 혜택은 우리 기업이 중국을 비롯해 다른 나라 소비자를 대상으로 온라인으로 직판(역직구)할 때 똑같이 적용한다.
그런데 통계를 보면 우리가 그동안 온라인 해외 직판 기회를 충분히 포착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2023년도 온라인 직구액은 6조7567억원인데 온라인 직판액은 1조6516억원이니 4배나 차이가 난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직구액은 증가세지만 직판액은 감소세를 보여 불균형 적자가 더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작년 전체 직구액은 전년대비 27% 증가한 반면 직판액은 10% 감소했다.
알리는 이전부터 국내에서 직구판매를 했지만 언어 장벽, 결제의 불편함, 느린 배송 때문에 성장이 지지부진했다. 그러다 최근 소비자가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문제를 해결하면서 급성장한 것이다. 앞으로 중국 이커머스 업체들이 직구를 넘어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유통사업을 추진하면 빠르게 시장을 잠식할 것이다. 알리는 과일, 채소, 소고기, 수산물 등의 신선식품 카테고리를 추가해 오픈마켓 방식으로 팔기 시작했다. 판매자들을 유치하기 위해 입점수수료뿐 아니라 판매수수료도 면제해 주고 있다. 여기에 대응해 국내 이커머스 업체들도 판매수수료를 대폭 인하하는 조치를 취했다. 중국 이커머스가 구색을 확대하고 초저가로 판매하면 국내 유통업체들은 따라서 가격을 인하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공격적 마케팅과 초저가를 무기로 돌진해 오는 중국 이커머스가 출혈 경쟁을 촉발해 국내 제조업과 유통업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중국 업체들이 국내 유통시장을 장악해 산업기반을 초토화하기 전에 이를 규제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기존의 대형마트 규제를 풀어서 국내 유통기업의 대응력을 높여야 한다는 것에서 플랫폼 규제를 입법화해 독과점을 방지해야 한다는 등 각론이 백가쟁명식으로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이커머스 업체들을 제외한 채 중국 이커머스 업체들만 꼭 집어서 규제할 묘안은 없다. 혹시나 중국정부가 사드 보복을 위해 중국에 진출한 우리 유통기업들을 핍박한 것과 같이 무지막지한 행정제재를 가한다면 모를까.
본질적으로 유통업의 혁신은 가격파괴에 있다. 미국에서도 월마트와 아마존이 가격파괴로 유통업의 변혁을 이끌었다. 국내에서도 역사적으로 대형마트, 이커머스가 가격파괴를 선도해 유통업을 혁신해 왔다. 중국 쇼핑 앱의 진격은 유통업의 가격파괴가 글로벌 차원으로 확대되는 추세를 보여준다. 10년여 전 전자상거래가 등장할 때 국경을 초월하는 글로벌 경쟁이 전개될 것이라고 했는데 이제 현실로 다가왔다.
김영환 (kyh1030@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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