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학과 70% 전임교수 ‘0’… 의대 증원 땐 이탈 불보듯 [심층기획-반도체 인력 양성 헛구호]

이지민 2024. 3. 11.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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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고대 정시 추가 합격률 각 220·100%
서강·한양대 포함 4곳 평균 170% 달해
그만큼 많은 최초 합격자가 이탈 의미
반도체 업계 인력난 심화 가중 불가피
학과 느는데 정작 전임교수 확보 안돼
강의 질 하락 ‘인력 유출’ 부채질 분석도
정부, 2031년까지 15만명 양성 계획
전문가 “돈·인력 지원 없인 실효성 없어”

“오늘 개강인데 안 보이는 애들이 있어요. 50명 중 5명은 반수를 택한 것 같아요.”

지난 4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제1공학관에서 만난 시스템반도체학과 2학년생 A씨는 개강 날 소회를 이렇게 밝혔다. 그는 “지난해에도 출석을 안 하거나 한 학기만 다닌 뒤 휴학하는 친구들이 몇 명 있었다”며 “수능점수 몇 점 차이로 의대에서 떨어진 애들이 반수를 많이 하는 것 같다”고 했다.

‘의대 증원’에 반도체학과가 긴장하고 있다. 2022년부터 정부가 야심차게 반도체 인재 양성 방침을 밝혔으나 최근 의대 증원과 맞물리면서 의대가 기존 반도체과 학생들을 더 빨아들일 것이란 우려다. 지금도 적지 않은 반도체학과 이탈 학생 수가 향후 더 늘어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도 나온다. 반도체 업계에서 토로하는 인력난 문제가 더 심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달 7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에 의대 입시 홍보 안내문이 붙어 있다. 뉴스1
◆재학생들도 “반수 비율 높아질 것”

10일 종로학원에 따르면 올해 정시모집에서 연세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의 추가 합격률은 220%로 나타났다. 지난해 추가 합격률(130.0%)보다 늘었고, 이 학교 자연계열 학과의 평균 추가 합격률(63.2%)보다 훨씬 높았다. 고려대 반도체공학과의 정시 추가합격률은 100%로 집계됐다. 지난해(72.7%)보다 늘어난 동시에 자연계열 학과의 평균 추가 합격률(29.8%)을 크게 웃돈 수치다. 두 학교의 반도체학과는 각각 졸업 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로 입사가 보장된 계약학과다. 

추가 합격률이 높다는 것은 최초 합격자가 그만큼 많이 이탈했다는 의미다.

두 학교를 포함해 SK하이닉스와 계약학과 협약을 맺은 서강대·한양대까지 4개 학교 반도체학과의 올해 정시 추가 합격률은 169.1%를 기록했다. 지난해 155.3%에서 높아졌다. 

의대 정원이 늘어난 뒤에는 이 같은 현상이 더 심해질 수 있다고 해당 학과 재학생들은 내다봤다.

연세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2학년생 B씨는 “의대 정원을 늘리기 전에도 이런데, 올해 1학년의 경우 반수 비율이 더 높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그는 “애초 물리학이랑 공학에 흥미가 있어 진학한 거라 개인적으로는 의대에 지금 갈 수 있어도 가고 싶진 않다”면서도 “추가 합격률이 높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진 않고, 사기가 꺾이는 친구들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연세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의 경우 2학년 2학기를 마친 뒤 삼성직무적성검사(GSAT)를 포함한 입사 절차를 통과할 시 졸업 후 삼성전자에 입사하게 된다. 이외에도 재학 중 삼성전자 미주법인을 1회에 한해 비용 없이 방문하는 등 지원을 받는다.

B씨는 이 같은 점을 언급하며 “다른 학과에 비해 밀어준다는 느낌을 받고, 취업이 보장되니까 정서적으로 안정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시스템반도체공학과로 입학할 시 복수전공이 불가능한 점은 이탈률을 높이는 요소라고 지적했다. 그는 “학과에 종속시키려는 의도인데 그 부분을 불만으로 꼽는 학생들이 많다”고 말했다. 
◆학부생 늘어나는데 가르칠 교수 없어

학생 이탈만이 문제가 아니다. 반도체학과 미등록률이 높은 현상을 두고 황철성 서울대 재료공학부 석좌교수는 “나 같아도 (반도체학과에) 안 간다”고 꼬집었다.

2014~2015년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장을 지내는 등 국내에서 손꼽히는 반도체 전문가인 황 교수는 “내가 입시생이어도 전임 교수가 그렇게 없는 과에는 안 갈 것”이라며 ‘교수 부족’이 근본 문제라고 짚었다.

황 교수 지적대로 지난해 기준 반도체 관련 학과(기계·기전·반도체 및 세라믹·신소재·재료·전자공학 계열)가 있는 대학교의 학과 1421개 중 전임교수가 한 명도 없는 학과 비율은 69.2%(984개)에 달했다. 김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교육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인데, 반도체학과 10곳 중 7곳은 겸임, 객원교수 등 비전임교수가 강의하고 있다는 의미다.

올해 전임교수 비율 조사는 한국교육개발원 고등교육기본통계를 바탕으로 다음달 이루어진다. 다만 올해도 크게 비율이 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전임교수가 그나마 많은 연세대 시스템반도체학과의 경우 지난해 4명에서 올해 2명이 추가됐으나 입학 정원이 지난해 50명에서 올해 100명으로 크게 늘었다. 고려대 반도체공학과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올해도 전임교수가 없다. 
황 교수는 “지금 대학 강의실을 보면 전부 겸임교수로 채워놨다”며 “기업을 다니다가 그만둔 임원들을 모셔온 곳도 수두룩한데 30년 동안 제품 만들던 사람이 무슨 수로 좋은 강의를 하겠느냐”고 강하게 비판했다. 교수를 늘리지 않고선 강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에 따르면 2031년 반도체 필요 인력은 30만4000명으로 추산된다. 실제 공급 인력은 이에 한참 못 미쳐 5만4000여명 부족할 전망이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해 말 발표한 산업 기술인력수급실태조사도 국내 반도체 산업 분야의 기술 인력 부족을 뒷받침한다. 조사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국내 반도체 산업 분야의 기술 부족 인력은 2019년 1579명, 2020년 1621명, 2021년 1752명으로 매해 늘고 있다.

정부는 2022년 7월 향후 10년간 약 15만명의 반도체 인재를 양성하겠다고 발표했다. 구체적으로 2027년까지 반도체 관련 학과 입학정원을 2022년보다 5700명 증원한다는 복안이다. 대학 학부 2000명, 직업계고 1600명, 대학원 1102명, 전문대 1000명 등이다. 

황 교수는 산업 현장에서 요구하는 반도체 인력은 석박사급이기 때문에 학부를 늘리는 정책은 실효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제대로 된 인재 양성을 하려면 돈과 인력을 지원해야 하는데 정부 정책은 학생만 더 뽑으라는 것 아니냐”며 “지금은 기업이나 공무원이나 계약학과를 늘려서 면피만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지민 기자 aaaa3469@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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