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학과 70% 전임교수 ‘0’… 의대 증원 땐 이탈 불보듯 [심층기획-반도체 인력 양성 헛구호]
서강·한양대 포함 4곳 평균 170% 달해
그만큼 많은 최초 합격자가 이탈 의미
반도체 업계 인력난 심화 가중 불가피
학과 느는데 정작 전임교수 확보 안돼
강의 질 하락 ‘인력 유출’ 부채질 분석도
정부, 2031년까지 15만명 양성 계획
전문가 “돈·인력 지원 없인 실효성 없어”
“오늘 개강인데 안 보이는 애들이 있어요. 50명 중 5명은 반수를 택한 것 같아요.”
지난 4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제1공학관에서 만난 시스템반도체학과 2학년생 A씨는 개강 날 소회를 이렇게 밝혔다. 그는 “지난해에도 출석을 안 하거나 한 학기만 다닌 뒤 휴학하는 친구들이 몇 명 있었다”며 “수능점수 몇 점 차이로 의대에서 떨어진 애들이 반수를 많이 하는 것 같다”고 했다.
10일 종로학원에 따르면 올해 정시모집에서 연세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의 추가 합격률은 220%로 나타났다. 지난해 추가 합격률(130.0%)보다 늘었고, 이 학교 자연계열 학과의 평균 추가 합격률(63.2%)보다 훨씬 높았다. 고려대 반도체공학과의 정시 추가합격률은 100%로 집계됐다. 지난해(72.7%)보다 늘어난 동시에 자연계열 학과의 평균 추가 합격률(29.8%)을 크게 웃돈 수치다. 두 학교의 반도체학과는 각각 졸업 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로 입사가 보장된 계약학과다.
추가 합격률이 높다는 것은 최초 합격자가 그만큼 많이 이탈했다는 의미다.
두 학교를 포함해 SK하이닉스와 계약학과 협약을 맺은 서강대·한양대까지 4개 학교 반도체학과의 올해 정시 추가 합격률은 169.1%를 기록했다. 지난해 155.3%에서 높아졌다.
의대 정원이 늘어난 뒤에는 이 같은 현상이 더 심해질 수 있다고 해당 학과 재학생들은 내다봤다.
연세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2학년생 B씨는 “의대 정원을 늘리기 전에도 이런데, 올해 1학년의 경우 반수 비율이 더 높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그는 “애초 물리학이랑 공학에 흥미가 있어 진학한 거라 개인적으로는 의대에 지금 갈 수 있어도 가고 싶진 않다”면서도 “추가 합격률이 높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진 않고, 사기가 꺾이는 친구들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연세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의 경우 2학년 2학기를 마친 뒤 삼성직무적성검사(GSAT)를 포함한 입사 절차를 통과할 시 졸업 후 삼성전자에 입사하게 된다. 이외에도 재학 중 삼성전자 미주법인을 1회에 한해 비용 없이 방문하는 등 지원을 받는다.
학생 이탈만이 문제가 아니다. 반도체학과 미등록률이 높은 현상을 두고 황철성 서울대 재료공학부 석좌교수는 “나 같아도 (반도체학과에) 안 간다”고 꼬집었다.
2014~2015년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장을 지내는 등 국내에서 손꼽히는 반도체 전문가인 황 교수는 “내가 입시생이어도 전임 교수가 그렇게 없는 과에는 안 갈 것”이라며 ‘교수 부족’이 근본 문제라고 짚었다.
황 교수 지적대로 지난해 기준 반도체 관련 학과(기계·기전·반도체 및 세라믹·신소재·재료·전자공학 계열)가 있는 대학교의 학과 1421개 중 전임교수가 한 명도 없는 학과 비율은 69.2%(984개)에 달했다. 김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교육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인데, 반도체학과 10곳 중 7곳은 겸임, 객원교수 등 비전임교수가 강의하고 있다는 의미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에 따르면 2031년 반도체 필요 인력은 30만4000명으로 추산된다. 실제 공급 인력은 이에 한참 못 미쳐 5만4000여명 부족할 전망이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해 말 발표한 산업 기술인력수급실태조사도 국내 반도체 산업 분야의 기술 인력 부족을 뒷받침한다. 조사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국내 반도체 산업 분야의 기술 부족 인력은 2019년 1579명, 2020년 1621명, 2021년 1752명으로 매해 늘고 있다.
정부는 2022년 7월 향후 10년간 약 15만명의 반도체 인재를 양성하겠다고 발표했다. 구체적으로 2027년까지 반도체 관련 학과 입학정원을 2022년보다 5700명 증원한다는 복안이다. 대학 학부 2000명, 직업계고 1600명, 대학원 1102명, 전문대 1000명 등이다.
황 교수는 산업 현장에서 요구하는 반도체 인력은 석박사급이기 때문에 학부를 늘리는 정책은 실효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제대로 된 인재 양성을 하려면 돈과 인력을 지원해야 하는데 정부 정책은 학생만 더 뽑으라는 것 아니냐”며 “지금은 기업이나 공무원이나 계약학과를 늘려서 면피만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지민 기자 aaaa3469@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김나정 측 “손 묶이고 안대, 강제로 마약 흡입”…경찰 조사 후 첫 입장
- 매일 넣는 인공눈물에 미세플라스틱…‘첫방울’이 더 위험?
- “내 성별은 이제 여자” 女 탈의실도 맘대로 이용… 괜찮을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3개월 시한부' 암투병 고백한 오은영의 대장암...원인과 예방법은? [건강+]
- “나 집주인인데 문 좀”…원룸 들어가 성폭행 시도한 20대男, 구속
- “내 딸이 이렇게 예쁠 리가” 아내 외도 의심해 DNA 검사…알고보니 ‘병원 실수’
- 속도위반 1만9651번+신호위반 1236번… ‘과태료 전국 1위’는 얼마 낼까 [수민이가 궁금해요]
- 사랑 나눈 후 바로 이불 빨래…여친 결벽증 때문에 고민이라는 남성의 사연
- "오피스 남편이 어때서"…男동료와 술·영화 즐긴 아내 '당당'
- 예비신랑과 성관계 2번 만에 성병 감염…“지금도 손이 떨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