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공백 와중 ‘간호법’ 재점화…현장선 “애로사항 개선 먼저”
간호계, 다시 법 제정 촉구
윤 대통령 작년엔 ‘거부권’
정부, 긍정적 검토로 선회
의협은 반발 강도 더 높여
“불법과 저질 의료 판칠 것”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으로 의료공백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간호법’이 다시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전공의들의 빈자리를 간호인력으로 대응하겠다는 정부 방침을 간호계가 받아들이면서 간호법 제정을 다시 촉구했기 때문이다.
정부도 간호법 재제정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현장 간호사들의 애로사항 개선이 먼저”라는 일부 간호사들의 의견과 “불법 의료행위를 양성화한다”는 의사단체의 반발도 거세다.
10일 정부와 의료계에 따르면 정부가 마련한 ‘간호사 업무 시범사업 보완지침’이 지난 8일부터 의료현장에서 시행되고 있다. 보완지침은 간호사의 숙련도와 자격에 따라 전문간호사·전담간호사(진료지원인력·PA)·일반간호사로 나눠 업무 범위를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간호사들에게 심폐소생술, 응급약물 투여, 심전도·초음파 검사 등 기존에 의료법상 불법진료였던 의료행위들 중 일부가 허용됐다. 전공의들이 대부분 병원을 떠나면서 생긴 의료공백을 간호사들의 업무 확장으로 해소하겠다는 취지다.
간호계에선 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더 명확히 하기 위해 ‘간호법 제정’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한간호협회(간협)는 지난 8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그간 간호사의 업무 범위는 법으로 정해지지 않아 법의 사각지대에 있었다”며 “이제라도 정부가 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명확히 하고 법적 보호를 해주겠다고 한 것은 대한민국 의료체계를 한층 발전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간호계는 국민이 더 안정적인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논란의 여지를 없앤 새로운 간호법을 추진할 것”이라고 했다.
간호법은 간협의 오랜 숙원 사업이다. 1951년 제정된 의료법의 낡은 체계가 그간 전문화·세분화한 간호사의 업무를 명확히 규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간호사를 위한 별도의 법이 필요하다는 취지다. 간협이 추진한 간호법은 지난해 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 폐기됐다. 당시 법안 내용 중 ‘이 법은 모든 국민이 의료기관과 지역사회에서 수준 높은 간호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필요한 사항을 규정한다’는 조항이 의사들의 반발을 샀다.
대한의사협회(의협) 등 의사단체는 이 ‘지역사회’ 문구가 의료기관 밖에서 간호사의 ‘단독 개원’을 가능하게 하는 내용이라고 주장했다. 간호법 제정안은 국회 보건복지위 간사인 고영인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의해 지난해 11월 재발의됐고, 논란을 빚었던 ‘지역사회’ 문구가 수정됐다.
의료공백이 장기화하는 상황에서 정부도 간호법 재검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 8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에서 “간협에서 새로운 간호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국민 보건체계를 강화하는 의료개혁에 간호사들 의견을 경청하고 반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실에서도 현재 시범사업으로 운영하는 간호사 업무 범위 확대를 제도화하고 간호법을 재검토하는 방안이 거론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간호사들 사이에선 “현장 간호사의 고통을 모른다”는 비판도 나온다. 행동하는간호사회는 지난 8일 성명에서 정부의 간호사 업무 시범사업을 두고 “병원 현장의 간호사들은 엄청난 혼란과 위기를 겪고 있다”며 “구체적인 업무 기준도 없고 교육훈련 과정도 없이 불법 상황까지 내몰리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시범사업이라는 이름의 꼼수이고, 전공의 빈자리를 메우는 한시적 허용일 뿐 법적 근거나 구체적인 법적 보호는 없다”며 “더 이상 윤석열 정부와 보건복지부에 속아서는 안 된다”고 했다.
지난해 간호법 통과 당시 반대의 선봉에 섰던 의협은 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의협은 지난 7일 브리핑에서 “(간호법 제정은) 불법 의료행위 양성화”라며 “제대로 자격도 갖추지 못한 PA 간호사에 의한 불법 의료행위가 양성화되면 의료인 면허 범위가 무너지면서 의료현장은 불법과 저질 의료가 판치는 곳으로 변질될 것”이라고 밝혔다.
민서영 기자 min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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