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10년 만에 다시, 세월호 선장 "큰 죄를 졌다"
신진 기자 2024. 3. 11. 06:00
목사가 전한 '옥중 참회'
"자다 일어나 눈물...유족 만날 낯 없어"
JTBC는 복역 중인 이 선장의 심경을 전해 듣고 정리해 전달합니다.
이 선장과 직접 만난 건 장헌권 광주 서정교회 목사입니다. 지난 8일 면회한 뒤 그 내용을 JTBC와 다시 인터뷰했습니다.
━
오후 2시. 취재진은 교도소 정문 앞 대기실에서 기다렸습니다. 불안했습니다. '이 선장은 나왔을까'. '대화는 잘 되고 있을까'.
25분쯤 뒤 장 목사가 나왔습니다. 표정이 한결 편안합니다. 손에는 흘려 쓴 손글씨 쪽지를 들었습니다. 무슨 대화를 나눴을까요. 장 목사와 대화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했습니다.
Q 이 쪽지는 무엇인가요?
A 이 선장 말을 메모했습니다. 접견할 때 녹음을 하거나 영상을 찍는 건 허용되지 않습니다.
Q 7년 만에 만난 이 선장 모습은 어땠습니까?
A 마스크를 쓰고 있는 데다 칸막이 너머로 소통해야 했기에 표정을 자세히 살필 수는 없었습니다. 안부를 물으니 “눈이 많이 안 좋아서 힘들다”라고 했습니다. 안약을 수시로 넣고 있다 했어요. 말투는 또박또박 분명한 편이었고 백발은 아니었습니다.
Q 이준석 선장은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A 이 선장이 광주교도소에 있을 때 제가 '금요일엔 돌아오렴'이라는 책을 넣어드린 적이 있어요. 참사 시민 기록단이 유가족과 함께 지내며 쓴 인터뷰집입니다. 이 책을 지금도 읽고 있다고 했어요.
Q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0년, 피해자 가족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지 물으셨나요?
A 큰 죄를 지어서 마음이 매우 아프고, 그 생각만 하면 아직도 자다가도 일어나 계속 눈물만 흐른다고 했습니다. “내가 못 할 일을 했습니다”라면서 반성하는 모습이었어요. 여러 명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줬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도 했습니다. 기도를 많이 한다고 하더라고요.
━
Q 만남은 성사됐지만 아쉬움을 느끼신다고요.
A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은 가족과 국민에 대한 사과, 양심선언이었습니다. 물론 반성의 표현을 하셨지만 부족하게 느껴집니다. 또 사고 그 날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듣고 싶었습니다. 당초 이 선장은 세월호 선장이 아니었는데 '대타'로 배를 몰게 됐고, 안개 낀 상태에서 무리하게 출항을 했으며, 배가 가라앉기 시작하자 아이들은 두고 팬티 바람으로 도망쳤습니다. 그 모든 과정마다 누가, 어떤 지시를 했는지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었습니다. 시간이 부족하기도 했네요.
Q 영치품도 보내셨나요?
A 영치금 5만원과 비스킷, 음료수, 그리고 제가 쓴 시집 '서울 가는 예레미야'를 넣어드렸습니다.
68살 장 목사는 '길 위의 목사'로 불립니다.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직후 팽목항, 광주 등에서 유족들을 도왔습니다. 광주에서 열린 '세월호 재판'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습니다. 종교인의 사명감이라고 했습니다.
가해자인 선원들 마음을 움직여보고 싶다는 생각도 그래서 하게 됐습니다. 법정에서 미처 하지 못한 말,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사실을 담은 고백을 이끌어낸다면 진상 규명에도 도움이 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장 목사는 "양심 고백을 하는 것이 유가족뿐 아니라 선원들 본인과 가족에게도 떳떳할 것이라는 오랜 설득 과정이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실제 조타수 오 모 씨 편지에 담긴 고백은 급 침몰 원인의 중요한 단서가 됐습니다.
영상취재 : 정재우
"자다 일어나 눈물...유족 만날 낯 없어"
10년 전 침몰하는 세월호에서 선장은 홀로 탈출했습니다.
이준석 선장. 지난 2015년 살인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고 지금 순천교도소에 있습니다.
이준석 선장. 지난 2015년 살인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고 지금 순천교도소에 있습니다.
JTBC는 복역 중인 이 선장의 심경을 전해 듣고 정리해 전달합니다.
이 선장과 직접 만난 건 장헌권 광주 서정교회 목사입니다. 지난 8일 면회한 뒤 그 내용을 JTBC와 다시 인터뷰했습니다.
━
7년 만의 면회 "만날 수 있을까"
━
장 목사는 2018년 1월부터 이 선장과 처음 소통했습니다. 처음 편지를 보낸 건 2014년 10월인데 답장받기까지 3년 3개월 걸렸습니다.
2018년 1월 첫 면회를 했습니다. 그 뒤로 이 선장은 장 목사에게 지금까지 모두 7통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중 일부는 2019년에 공개됐습니다. 당시 이 선장은 "용서받지 못할 큰 죄를 짓고 죄책감 속에 사로잡혀 있는 저 자신을 자책하면서 하루도 지난날을 잊어본 적 없다"라고 썼습니다.
그러다 2019년 1월부터 연락이 끊겼는데, 6년 만에 얼굴을 마주하게 됐습니다.
8일 오후 1시, JTBC는 순천역에서부터 장 목사와 동행했습니다. 택시를 타고 교도소로 가는 길. 장 목사는 긴장한 표정이었습니다. "이 선장이 면회장에 나올지 모르겠다"고 말했습니다. 자주 먼 곳을 봤습니다.
장 목사는 2018년 1월부터 이 선장과 처음 소통했습니다. 처음 편지를 보낸 건 2014년 10월인데 답장받기까지 3년 3개월 걸렸습니다.
2018년 1월 첫 면회를 했습니다. 그 뒤로 이 선장은 장 목사에게 지금까지 모두 7통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중 일부는 2019년에 공개됐습니다. 당시 이 선장은 "용서받지 못할 큰 죄를 짓고 죄책감 속에 사로잡혀 있는 저 자신을 자책하면서 하루도 지난날을 잊어본 적 없다"라고 썼습니다.
그러다 2019년 1월부터 연락이 끊겼는데, 6년 만에 얼굴을 마주하게 됐습니다.
8일 오후 1시, JTBC는 순천역에서부터 장 목사와 동행했습니다. 택시를 타고 교도소로 가는 길. 장 목사는 긴장한 표정이었습니다. "이 선장이 면회장에 나올지 모르겠다"고 말했습니다. 자주 먼 곳을 봤습니다.
오후 2시. 취재진은 교도소 정문 앞 대기실에서 기다렸습니다. 불안했습니다. '이 선장은 나왔을까'. '대화는 잘 되고 있을까'.
25분쯤 뒤 장 목사가 나왔습니다. 표정이 한결 편안합니다. 손에는 흘려 쓴 손글씨 쪽지를 들었습니다. 무슨 대화를 나눴을까요. 장 목사와 대화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했습니다.
Q 이 쪽지는 무엇인가요?
A 이 선장 말을 메모했습니다. 접견할 때 녹음을 하거나 영상을 찍는 건 허용되지 않습니다.
Q 7년 만에 만난 이 선장 모습은 어땠습니까?
A 마스크를 쓰고 있는 데다 칸막이 너머로 소통해야 했기에 표정을 자세히 살필 수는 없었습니다. 안부를 물으니 “눈이 많이 안 좋아서 힘들다”라고 했습니다. 안약을 수시로 넣고 있다 했어요. 말투는 또박또박 분명한 편이었고 백발은 아니었습니다.
Q 이준석 선장은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A 이 선장이 광주교도소에 있을 때 제가 '금요일엔 돌아오렴'이라는 책을 넣어드린 적이 있어요. 참사 시민 기록단이 유가족과 함께 지내며 쓴 인터뷰집입니다. 이 책을 지금도 읽고 있다고 했어요.
Q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0년, 피해자 가족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지 물으셨나요?
A 큰 죄를 지어서 마음이 매우 아프고, 그 생각만 하면 아직도 자다가도 일어나 계속 눈물만 흐른다고 했습니다. “내가 못 할 일을 했습니다”라면서 반성하는 모습이었어요. 여러 명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줬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도 했습니다. 기도를 많이 한다고 하더라고요.
━
이준석 선장 "유족 면회 와도 차마 얼굴 못 볼 듯"
━
Q 유가족분들에 대한 언급도 있었나요?
A "혹시 유가족분들이 오시면 면회가 가능하겠냐”라고 제가 물어봤습니다. 이 선장은 이렇게 답했어요. “내가 그분들 얼굴을 어떻게 볼 수가 있겠습니까. 차마 볼 수 없습니다.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목사님. 그분들을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Q 그때 이 선장의 표정이 기억나십니까?
A 마스크를 쓰고 있어 자세히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대화 내내 저하고 눈을 직접 마주치려 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미안함 때문이겠죠. 그래도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는 꺼내놨습니다.
Q 유가족분들에 대한 언급도 있었나요?
A "혹시 유가족분들이 오시면 면회가 가능하겠냐”라고 제가 물어봤습니다. 이 선장은 이렇게 답했어요. “내가 그분들 얼굴을 어떻게 볼 수가 있겠습니까. 차마 볼 수 없습니다.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목사님. 그분들을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Q 그때 이 선장의 표정이 기억나십니까?
A 마스크를 쓰고 있어 자세히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대화 내내 저하고 눈을 직접 마주치려 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미안함 때문이겠죠. 그래도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는 꺼내놨습니다.
Q 만남은 성사됐지만 아쉬움을 느끼신다고요.
A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은 가족과 국민에 대한 사과, 양심선언이었습니다. 물론 반성의 표현을 하셨지만 부족하게 느껴집니다. 또 사고 그 날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듣고 싶었습니다. 당초 이 선장은 세월호 선장이 아니었는데 '대타'로 배를 몰게 됐고, 안개 낀 상태에서 무리하게 출항을 했으며, 배가 가라앉기 시작하자 아이들은 두고 팬티 바람으로 도망쳤습니다. 그 모든 과정마다 누가, 어떤 지시를 했는지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었습니다. 시간이 부족하기도 했네요.
Q 영치품도 보내셨나요?
A 영치금 5만원과 비스킷, 음료수, 그리고 제가 쓴 시집 '서울 가는 예레미야'를 넣어드렸습니다.
━
장헌권 목사는 누구?
━
장 목사는 이 선장 말고도 세월호 선원들과 편지 왕래를 해왔습니다. 2014년 10월, 광주교도소에 복역 중인 세월호 기관장, 조타수, 항해사 등 총 15명에게 손글씨 편지를 보냈습니다. 대부분 수취인 거절로 반송됐습니다. 이 선장을 포함한 3명만 답장했습니다.
조기장 전 모 씨는 "모든 것을 처음 상태로 되돌릴 수 있다면 내 목숨으로 대신하고 싶다"라고 썼습니다. 당시 33살이던 전 씨 딸이 최책감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대목도 적었습니다.
조타수 오 모 씨는 세월호 불법 개조를 폭로했습니다. 화물칸 2층 외벽 일부를 설계도와 달리 철제 구조물이 아닌 천막으로 덮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오 씨는 출소 직후 폐암으로 사망했습니다.
장 목사는 이 선장 말고도 세월호 선원들과 편지 왕래를 해왔습니다. 2014년 10월, 광주교도소에 복역 중인 세월호 기관장, 조타수, 항해사 등 총 15명에게 손글씨 편지를 보냈습니다. 대부분 수취인 거절로 반송됐습니다. 이 선장을 포함한 3명만 답장했습니다.
조기장 전 모 씨는 "모든 것을 처음 상태로 되돌릴 수 있다면 내 목숨으로 대신하고 싶다"라고 썼습니다. 당시 33살이던 전 씨 딸이 최책감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대목도 적었습니다.
조타수 오 모 씨는 세월호 불법 개조를 폭로했습니다. 화물칸 2층 외벽 일부를 설계도와 달리 철제 구조물이 아닌 천막으로 덮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오 씨는 출소 직후 폐암으로 사망했습니다.
68살 장 목사는 '길 위의 목사'로 불립니다.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직후 팽목항, 광주 등에서 유족들을 도왔습니다. 광주에서 열린 '세월호 재판'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습니다. 종교인의 사명감이라고 했습니다.
가해자인 선원들 마음을 움직여보고 싶다는 생각도 그래서 하게 됐습니다. 법정에서 미처 하지 못한 말,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사실을 담은 고백을 이끌어낸다면 진상 규명에도 도움이 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장 목사는 "양심 고백을 하는 것이 유가족뿐 아니라 선원들 본인과 가족에게도 떳떳할 것이라는 오랜 설득 과정이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실제 조타수 오 모 씨 편지에 담긴 고백은 급 침몰 원인의 중요한 단서가 됐습니다.
영상취재 : 정재우
Copyright © JTBC.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JTBC에서 직접 확인하세요. 해당 언론사로 이동합니다.
- [단독] 10년 만에 다시, 세월호 선장 "큰 죄를 졌다"
- "주인이 데려갔어요" 벌벌 떨던 사모예드 2마리 '집으로'
- "이성 되찾자"...교수들 시국선언 6482명, 어떤 경고했나
- 서경덕이 일본 욱일기 때리자..."딸 얼굴 합성 공격 쏟아져"
- 국민 절반이 가난 시달리는데…아르헨 대통령 월급 48% '셀프인상'
- [단독] 명태균 "국가산단 필요하다고 하라…사모한테 부탁하기 위한 것" | JTBC 뉴스
- 투표함에 잇단 방화 '충격'…미 대선 앞두고 벌어지는 일 | JTBC 뉴스
- 기아의 완벽한 '결말'…우승에 취한 밤, 감독도 '삐끼삐끼' | JTBC 뉴스
- "마음 아파도 매년 올 거예요"…참사 현장 찾은 추모객들 | JTBC 뉴스
- 뉴스에서만 보던 일이…금 20돈 발견한 경비원이 한 행동 | JTBC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