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10년 만에 다시, 세월호 선장 "큰 죄를 졌다"

신진 기자 2024. 3. 1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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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가 전한 '옥중 참회'
"자다 일어나 눈물...유족 만날 낯 없어"
10년 전 침몰하는 세월호에서 선장은 홀로 탈출했습니다.

이준석 선장. 지난 2015년 살인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고 지금 순천교도소에 있습니다.

2015년 4월, 선고를 기다리는 이준석 선장. 〈사진=연합뉴스〉

JTBC는 복역 중인 이 선장의 심경을 전해 듣고 정리해 전달합니다.

이 선장과 직접 만난 건 장헌권 광주 서정교회 목사입니다. 지난 8일 면회한 뒤 그 내용을 JTBC와 다시 인터뷰했습니다.

7년 만의 면회 "만날 수 있을까"



장 목사는 2018년 1월부터 이 선장과 처음 소통했습니다. 처음 편지를 보낸 건 2014년 10월인데 답장받기까지 3년 3개월 걸렸습니다.

2018년 1월 첫 면회를 했습니다. 그 뒤로 이 선장은 장 목사에게 지금까지 모두 7통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중 일부는 2019년에 공개됐습니다. 당시 이 선장은 "용서받지 못할 큰 죄를 짓고 죄책감 속에 사로잡혀 있는 저 자신을 자책하면서 하루도 지난날을 잊어본 적 없다"라고 썼습니다.

그러다 2019년 1월부터 연락이 끊겼는데, 6년 만에 얼굴을 마주하게 됐습니다.

8일 오후 1시, JTBC는 순천역에서부터 장 목사와 동행했습니다. 택시를 타고 교도소로 가는 길. 장 목사는 긴장한 표정이었습니다. "이 선장이 면회장에 나올지 모르겠다"고 말했습니다. 자주 먼 곳을 봤습니다.

순천교도소를 향하는 택시 안.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장헌권 목사. 〈사진=JTBC〉

오후 2시. 취재진은 교도소 정문 앞 대기실에서 기다렸습니다. 불안했습니다. '이 선장은 나왔을까'. '대화는 잘 되고 있을까'.

25분쯤 뒤 장 목사가 나왔습니다. 표정이 한결 편안합니다. 손에는 흘려 쓴 손글씨 쪽지를 들었습니다. 무슨 대화를 나눴을까요. 장 목사와 대화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했습니다.

장헌권 목사가 이준석 선장과 대화를 나누며 메모한 쪽지들. 〈사진=JTBC〉

Q 이 쪽지는 무엇인가요?
A 이 선장 말을 메모했습니다. 접견할 때 녹음을 하거나 영상을 찍는 건 허용되지 않습니다.

Q 7년 만에 만난 이 선장 모습은 어땠습니까?
A 마스크를 쓰고 있는 데다 칸막이 너머로 소통해야 했기에 표정을 자세히 살필 수는 없었습니다. 안부를 물으니 “눈이 많이 안 좋아서 힘들다”라고 했습니다. 안약을 수시로 넣고 있다 했어요. 말투는 또박또박 분명한 편이었고 백발은 아니었습니다.

Q 이준석 선장은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A 이 선장이 광주교도소에 있을 때 제가 '금요일엔 돌아오렴'이라는 책을 넣어드린 적이 있어요. 참사 시민 기록단이 유가족과 함께 지내며 쓴 인터뷰집입니다. 이 책을 지금도 읽고 있다고 했어요.

면회를 마친 뒤 대화 내용을 복기하고 있는 장헌권 목사. 〈사진=JTBC〉

Q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0년, 피해자 가족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지 물으셨나요?
A 큰 죄를 지어서 마음이 매우 아프고, 그 생각만 하면 아직도 자다가도 일어나 계속 눈물만 흐른다고 했습니다. “내가 못 할 일을 했습니다”라면서 반성하는 모습이었어요. 여러 명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줬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도 했습니다. 기도를 많이 한다고 하더라고요.

이준석 선장 "유족 면회 와도 차마 얼굴 못 볼 듯"



Q 유가족분들에 대한 언급도 있었나요?
A "혹시 유가족분들이 오시면 면회가 가능하겠냐”라고 제가 물어봤습니다. 이 선장은 이렇게 답했어요. “내가 그분들 얼굴을 어떻게 볼 수가 있겠습니까. 차마 볼 수 없습니다.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목사님. 그분들을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Q 그때 이 선장의 표정이 기억나십니까?
A 마스크를 쓰고 있어 자세히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대화 내내 저하고 눈을 직접 마주치려 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미안함 때문이겠죠. 그래도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는 꺼내놨습니다.

세월호 참사 당시 전남 진도군 팽목항 방파제에 놓인 유가족의 편지. 〈사진=연합뉴스〉

Q 만남은 성사됐지만 아쉬움을 느끼신다고요.
A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은 가족과 국민에 대한 사과, 양심선언이었습니다. 물론 반성의 표현을 하셨지만 부족하게 느껴집니다. 또 사고 그 날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듣고 싶었습니다. 당초 이 선장은 세월호 선장이 아니었는데 '대타'로 배를 몰게 됐고, 안개 낀 상태에서 무리하게 출항을 했으며, 배가 가라앉기 시작하자 아이들은 두고 팬티 바람으로 도망쳤습니다. 그 모든 과정마다 누가, 어떤 지시를 했는지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었습니다. 시간이 부족하기도 했네요.

Q 영치품도 보내셨나요?
A 영치금 5만원과 비스킷, 음료수, 그리고 제가 쓴 시집 '서울 가는 예레미야'를 넣어드렸습니다.

2014년 4월, 세월호를 탈출하는 이준석 선장. 〈사진=JTBC 캡처〉

장헌권 목사는 누구?



장 목사는 이 선장 말고도 세월호 선원들과 편지 왕래를 해왔습니다. 2014년 10월, 광주교도소에 복역 중인 세월호 기관장, 조타수, 항해사 등 총 15명에게 손글씨 편지를 보냈습니다. 대부분 수취인 거절로 반송됐습니다. 이 선장을 포함한 3명만 답장했습니다.

조기장 전 모 씨는 "모든 것을 처음 상태로 되돌릴 수 있다면 내 목숨으로 대신하고 싶다"라고 썼습니다. 당시 33살이던 전 씨 딸이 최책감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대목도 적었습니다.

조타수 오 모 씨는 세월호 불법 개조를 폭로했습니다. 화물칸 2층 외벽 일부를 설계도와 달리 철제 구조물이 아닌 천막으로 덮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오 씨는 출소 직후 폐암으로 사망했습니다.

세월호 조타수였던 고 오모씨가 2014년 11월 장헌권 목사에게 보낸 편지. 〈사진=JTBC〉

68살 장 목사는 '길 위의 목사'로 불립니다.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직후 팽목항, 광주 등에서 유족들을 도왔습니다. 광주에서 열린 '세월호 재판'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습니다. 종교인의 사명감이라고 했습니다.

가해자인 선원들 마음을 움직여보고 싶다는 생각도 그래서 하게 됐습니다. 법정에서 미처 하지 못한 말,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사실을 담은 고백을 이끌어낸다면 진상 규명에도 도움이 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2014년, 세월호 선원들이 수감중인 광주교도소 앞에서 양심선언을 촉구하고 있는 장헌권 목사. 〈사진=연합뉴스〉

장 목사는 "양심 고백을 하는 것이 유가족뿐 아니라 선원들 본인과 가족에게도 떳떳할 것이라는 오랜 설득 과정이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실제 조타수 오 모 씨 편지에 담긴 고백은 급 침몰 원인의 중요한 단서가 됐습니다.

영상취재 : 정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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