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中·日 방사성 물질, 국토 최끝단서 감시…인력 부족 고충 토로
8일 오전 제주 서귀포 운진항에서 남쪽으로 30분 가량 배를 타고 들어간 마라도. 이곳에는 국토 최남단 방사선감시기가 있다. 감시기 화면에는 초록색 글씨로 '정상'이라고 표시됐다. 성인 가슴 정도 높이의 장비 한 대뿐인 이곳은 '감시소'라고 부르기엔 다소 초라해 보였지만 맡은 임무는 막중했다.
● 전국 방사능 감시망의 최전선
마라도 방사선감시소는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2012년에 설치돼 국토 최남단에서 국외 방사능 영향을 조기에 탐지하는 경계 임무를 수행 중이다. 국토 북쪽 끝으로는 강원도 고성에, 서쪽 끝으로는 백령도에, 그리고 동쪽 끝으로는 독도에 방사선감시소가 있다. 국내 원전이나 대도시 근처에 설치된 감시소와 달리 국토 최외곽에 위치한 감시소는 국외에서 유입되는 방사성 물질을 가장 먼저 감지하는 역할을 한다.
방사능감시기 안에 아르곤(Ar) 가스가 압축되어 들어있다. 공기 중 방사성 물질이 내뿜는 방사선이 아르곤 가스와 충돌하면 발생하는 미세한 전류로 방사선량을 측정하는 원리로 작동한다.
송명한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 환경방사선 감시평가실 책임연구원은 "만일 중국이나 일본 등 주변 국가에서 방사능 관련 사고가 발생하면 방사성 물질이 대기 중 먼지를 타고 남쪽에서 날아올 수 있는데 이를 감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감시기 화면에는 시간당 0.082μSv(마이크로시버트)라는 수치가 표시돼 있었다. 감시기를 살펴보는 동안에도 수치는 실시간으로 조금씩 변했다. 최인희 KINS 환경방사선 감시평가실 실장은 "이 정도 수치는 주변 토양이나 우주 등에서 유래한 자연 방사선이 측정된 것"이라며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고 비나 눈이 오는 등 날씨에 따라 약간 변한다"고 말했다.
5초에 한 번씩 측정된 전국 감시소의 방사선량 데이터는 대전에 있는 KINS 서버로 실시간 전송된다. 데이터는 KINS 국가환경방사선자동감시망(IERNet) 웹페이지나 앱(eRAD@NOW)을 통해 누구나 확인할 수 있다.
● 바닷물, 녹차, 광어…생활 속 방사능도 철저히 감시
7일 오후 제주대 제주지방방사능측정소 전처리실에서는 바닷물이나 먹거리 속 방사능 오염을 측정하는 과정이 공개됐다.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이후 일본 수산물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이곳의 역할도 더욱 커졌다.
대기 중 방사성 물질은 방사선감시소에서 모니터링하지만 바닷물이나 먹거리 속 방사능 오염을 파악하긴 어렵다. 바닷물과 음식물 등을 가져와 이곳 제주를 포함해 각 지역 대학과 연계한 전국 15개 지방방사능측정소에서 정밀하게 방사능을 측정한다.
정만희 제주대 전기에너지공학과 교수는 먼저 방사능을 계측하기 전 시료를 만드는 전처리실을 소개했다. 한쪽 벽에 있는 커다란 수조가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정 교수는 " 바닷물 속 핵종인 세슘-137 등을 검출하기 위한 장비"라며 "바닷물 60kg에 세슘을 선택적으로 흡착시키는 물질을 넣어 섞고 가만히 두면 바닥에 노란색 가루가 침전된다"고 설명했다.
전처리실에는 바닷물 속 삼중수소를 검출하기 위한 증류장치나 음식물을 분쇄하기 위한 분쇄기 등이 구비되어 있었다.
준비가 끝난 시료는 방사능 계측실로 옮겨진다. 계측 업무를 수행하는 김덕우 제주지방방사능측정소 연구원은 "시료를 HPGe라는 분석기 안에 넣으면 시료에서 나오는 감마선을 측정해 어떤 핵종이 있는지 극미량까지 잡아낼 수 있다"며 "핵종의 양이 달라지거나 평소에 발견되지 않는 핵종이 발견된다면 바로 파악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분석 장비는 고가라 지방측정소마다 보통 2대씩 있는데, 제주 지역은 양식장 등 의뢰가 많아 6대를 운영한다"고 덧붙였다.
실시간 모니터링이 가능한 공기 중 방사선과 달리 바닷물과 음식물 속 방사능은 전처리부터 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수일에서 수주씩 걸리기도 한다. 정 교수는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가 시작된 작년에는 방사능 검사 의뢰가 6배나 늘었다"며 "이곳 측정소에는 행정을 담당하는 직원을 제외하면 실제로 검사 업무를 하는 직원은 3~4명 정도"라며 인력 부족에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했다.
● 방사능 감시 현황, 현재까지 '이상 무'
KINS 측은 기기 오작동 등을 제외하면 현재까지 국내 방사선감시소에서 방사선량이 기준치를 넘은 적은 한 번도 없다고 강조했다. 전국 지방방사능측정소에서 진행한 바닷물과 먹거리 방사능 검사 결과도 마찬가지다.
송명한 책임연구원은 "한국은 미국이나 독일 등 다른 나라의 방사능 감시망 보유 현황과 비교해도 인구당, 면적당 설치 수로 봤을 때 세계적으로 촘촘한 편"이라고 설명했다.
방사선감시소는 지난 1997년 17개소를 시작으로 국내외 방사능 감시를 위해 확충되어 현재 기준으로 전국에 총 238개소가 설치됐다. 최인희 실장은 "아직 감시소가 국내 모든 지역을 커버하지는 못한다"며 "인구 밀집도 등을 기준으로 추가 설치할 예정이며 최종 목표는 정해져 있지 않지만 일단 2028년까지 총 296개소 설치가 목표"라고 밝혔다.
[제주=이병구 기자 2bottle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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