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용보다 비싸진 산업용 전기
기업 수익성 악영향…물가상승·수출경쟁력 저하 우려
지난해 산업용 전기가격이 4년 만에 주택용을 역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국제 워자재가격 상승에 따른 전기요금 인상 과정에서 가계부담을 우려해 산업용 전기요금을 더 올린 결과다.
하지만 산업용 전기요금은 마지막에는 제품의 소비자가격에 반영되는 만큼 장기적으로 물가상승을 부를 수 있다. 전력을 많이 소비하는 반도체나 철강 제품을 주력 수출 품목으로 두는 상황에선 제품가격 상승에 따른 수출경쟁력 저하 우려도 있다.
10일 한국전력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h(킬로와트시)당 산업용과 가정용 전기 판매 단가는 각각 153.7원, 149.8원으로 집계됐다. 산업용 전기 판매 단가가 가정용보다 3.9원 높다.
이는 정부와 한전이 2022년부터 총 6차례에 걸쳐 전기요금을 현실화하는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산업용 전기요금을 더 많이 올렸기 때문이다. 지난해 평균 전기 판매 단가는 152.8원으로 2021년 대비 41.4% 올랐는데 주택용은 37.2%, 산업용은 45.7% 올랐다. 특히 정부는 지난해 11월 대기업이 쓰는 대용량 산업용 전기만 ㎾h당 평균 10.6원 올리고 주택용 등 나머지 전기요금은 동결했다.
산업용 전기 판매 단가가 주택용보다 비싼 시기는 2019년과 2023년 두 해 뿐이다. 전 세계적으로 산업용 전기요금이 가정용보다 낮은 것이 일반적이다. 산업용은 공장이 밀집한 산업단지에서 대량·고압의 전기를 쓰기 때문에 배전 손실률이 낮고 배전 설비 투자가 적어 원가가 낮다. 반면 가정용은 고압 전기를 낮추는 변전소를 건설해야 하고 각 가정으로 공급하는 배전망을 깔아야 하기 때문에 비용이 많이 든다.
지난해 한전의 전력 판매량 중 산업용 전기는 53%를 차지한다. 원가가 낮아 이윤이 높고 판매량은 많아 한전의 수익성에 도움이 된다. 지난해 말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을 통해 한전은 월 판매수익이 약 2000억원 증가하고 올해 최대 2조8000억원의 요금 인상 효과가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으로 한전은 한숨을 돌렸지만 산업계에선 비용 증가라는 악재를 맞게 됐다. 특히 반도체나 이차전지 등 국내 주력 첨단 수출 제품들은 전력 사용량이 많아 수출 경쟁력 하락도 우려된다.
2022년 기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쓴 전력만 해도 각각 2만1731GWh(기가와트시), 1만41GWh다. 두 회사가 그해 낸 전기요금만 총 3조7000억원대로 추산된다. 업계에선 지난해 11월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추가로 지불해야 할 비용이 연간 각각 3000억원, 1350억원 가량 늘어날 것으로 본다.
전력사용량이 많은 철강업계와 시멘트업계도 부담이 크다. 전기로 비중이 큰 철강업체들의 경우 전기요금이 ㎾h 당 1원 상승하면 연간 부담은 100억원 정도 증가한다. 생산 설비를 꾸준히 돌려야 하는 시멘트업계도 생산단가 중 전기요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15~20%가량으로 핵심 원자재인 유연탄(25~30%) 다음으로 높다.
전기요금 인상은 기업 수익성 악화에 영향을 미치고 판가 인상의 명분이 될 수 있다. 철강, 시멘트 등 후방산업의 판가가 인상되면 건설, 조선 등 전방산업의 부담도 덩달아 늘어나게 된다. 업계가 피해를 상쇄하기 위해 분양가나 제품 가격 인상 카드를 꺼내들 경우 결국 피해가 소비자에게 전가된다.
원가주의에 맞지 않게 가정용 전기요금 인상을 억제하는 것은 시장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다. 전기 판매시장이 개방된 대부분의 국가들은 공급 원가가 싼 산업용 요금이 더 낮다. 실제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해 8월 발표한 2022년 기준 에너지 가격 통계에 따르면 OECD 38개국 평균 산업용 전기요금 단가는 주택용보다 25% 낮다. 산업용 전기요금이 더 비싼 나라는 튀르키에와 리투아니아, 헝가리, 멕시코 등 일부 국가뿐이다.
최민경 기자 eyes00@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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