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D집다] 대지의 어머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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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가 본격적으로 농사를 설계하는 시기, 십수년차 농부지만 아직도 봄이 되면 설렌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농부는 어머니의 심정에 뿌리내린 이다.
어머니의 병을 돌보는 어머니 농부가 필요했다.
어머니의 영혼을 계승하려는 딸들은 땅을 수호하는 농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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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가 본격적으로 농사를 설계하는 시기, 십수년차 농부지만 아직도 봄이 되면 설렌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농부는 어머니의 심정에 뿌리내린 이다. 주기적으로 자궁 내 출혈을 겪으며 인간의 제일 첫 집인 아기집을 배 속에 가진 연유로 어머니는 창조의 원형과 재생산을 주도했다. 어머니는 아이 성장을 도모하는 집이자 미래지향적인 공간이었다.
그러나 상징적인 어머니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어머니가 되는 과정은 지난했다. 어머니들은 어머니 됨을 힘겨워했다. 나 또한 20대에서 30대로 넘어오며 격렬한 변화의 몸살을 겪었다. 마치 애벌레에서 곤충으로 변하듯이 나는 10여년의 번데기 과정을 거친 느낌이었다. 작은 고치 속에서 고군분투하며 세 아이의 엄마가 됐고, 아기집 속 작은 세포였던 생명은 세상에 나와 벌써 나의 키와 몸무게를 따라잡을 정도로 커갔다. 그간 내가 중심이었던 대외적 활동은 끊어졌다. 조그마한 둥지에서 세 아이를 키우는 것이 삶의 이유였다. 곤충들은 알을 낳고 곧 죽는다는데, 나는 터울 진 막내까지 다 키우려면 십수년이 필요하다. 그 이후에야 노년기가 도래한다.
어머니가 ‘살림’에 공을 들이듯 유기농부는 작물에서 결실을 보기 위한 일련의 과정을 차곡차곡 수행한다. 유독 어머니 농부는 씨앗을 모으고 지키셨다. 지역 토종씨앗을 지켜온 이들의 90% 이상이 여성이었다. 씨앗을 거둬 저장했다. 식물의 생애를 수호하며 재생산을 영위해온 이들이었다. 맛있는 음식이 씨앗에서 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토종씨앗을 수집하러 다니다 보면 처음 뵙는 할머니들이 언젠가 그 씨앗을 찾으러 올 줄 알았다는 듯 기꺼이 한움큼씩 내주셨다.
어쩌면 어머니는 수직과 수평적 네트워킹의 중심에 있는 것 같다. 혹자는 몸과 마음에 병이 생겼다면, 그 근원이 어머니와의 어긋난 관계에서 왔다고 했다. 모든 관계의 엉킨 실타래도 어머니와의 연대를 회복했을 때 술술 풀린다고 할 정도였다. 어머니의 존재는 흡사 땅속에서 뿌리를 연결하고 영양분을 나누는 균류처럼 중추적이지만 드러나지 않는다. 나 역시 어머니와의 연결성을 뒷배 삼아 후세대의 징검다리 역할을 맡았다. 하물며 근원적으로 질적인 관계의 풍요를 찾아 마주하는 연결감은 어머니 지구의 복원으로부터 비롯된다.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는 땅을 이뤘다. 어머니 지구는 한때 대지의 여신으로 추앙을 받았지만 잊혔다. 위대한 존재는 사라졌다. 우리는 뿌리를 잃어버렸다. 어머니가 됐다가 죽었다. 죽기 직전까지 갔다. 우리가 언제부터 어머니를 착취했을까. 어머니의 어머니도 아프셨다. 어머니의 병을 돌보는 어머니 농부가 필요했다. 어머니의 영혼을 계승하려는 딸들은 땅을 수호하는 농부가 됐다.
어머니의 계보를 딸만 잇는 건 아니었다. 아버지의 족보만을 생각했던 문화가 바뀌었다. 우리가 기리는 이들은 어머니에게서 왔다. 설령 남성이라도 어머니로 불릴 수 있다. 어머니는 여성과 남성을 가르지 않는다. 우리 안에 존재하는 모성은 아주 오래전 할머니의 할머니에게서 전해져 내려온 공생의 기술이다. 진화를 거듭하며 지구 생명체가 택한 삶의 방식인 모성의 밧줄을 잡을 때 농사의 결이 달라질 것이다.
박효정 농부와 약초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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