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과일 출하 코앞인데 정부는 수입 늘려…고물가에 농산물 ‘때리기’?

하지혜 기자 2024. 3. 11. 05: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사과값 잡겠다고 두리안까지
1월 6품목 할당관세 이어
만다린 등 추가, 총 22만t
일본산 사과 수입 여론에
수입 위험 분석 빨라지나
“대표과일 뚫리면 ‘도미노’
국내 생산기반 무너질 것”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앞줄 오른쪽)이 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농축산물 물가 대응 상황 긴급 기자 간담회’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농식품부

정부가 물가안정을 이유로 과일 수입 확대 카드를 또 한번 꺼내들었다. 봄철 과일이 본격 출하되는 4∼6월 값싼 수입 과일이 시장에 대거 풀릴 경우 국산 과일 소비에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최근 ‘물가관계장관회의’에서 상반기 할당관세를 적용할 품목에 만다린·두리안 등을 추가한다고 밝혔다. 사과·배 등 국내 공급이 부족한 품목의 수요를 분산하기 위해 대체 과일 수입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만다린(500t)은 50%에서 10%로, 두리안(1300t)은 45%에서 5%로 관세율을 낮춘다.

정부는 앞서 1월에도 상반기에 21만8000t 규모의 신선과일 6개 품목에 할당관세를 적용한다고 발표했다. 바나나(15만t)·파인애플(4만t)·망고(1만4000t)·자몽(8000t)·아보카도(1000t) 등 5개 품목은 30%였던 관세율을 없앴다. 오렌지(5000t)의 관세율은 50%에서 10%로 낮췄다. 이번 할당관세 적용 품목에 추가한 만다린·두리안까지 합하면 22만t에 달하는 수입 과일이 싼값에 밀려들어오는 것이다. 최근에는 바나나(5000t)·오렌지(5000t) 일부 물량을 더 저렴하게 시장에 공급하기 위해 aT(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직수입하는 방안도 추진하기로 했다.

이번 수입 정책과 관련해 가장 큰 문제는 할당관세 물량을 도입하는 시기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1월에 발표한 할당관세 적용 신선과일 가운데 4일까지 통관을 완료한 물량은 5만3000t이다. 6월말까지 나머지 물량 16만5000t이 더 들어온다. 만다린·두리안은 ‘관세법 시행령’ 개정 절차를 거쳐 4∼6월에 집중적으로 도입될 예정이다. 상반기 할당관세 적용 신선과일 22만t 가운데 4분의 3에 달하는 물량이 참외·수박 등 국산 과일이 본격적으로 출하되는 시기에 국내시장으로 들어오는 셈이다.

강도수 한국참외생산자협의회장(경북 성주 월항농협 조합장)은 “참외가 집중적으로 소비되는 봄철에 저렴하고 다양한 수입 과일이 국내시장에 밀려들면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며 “요즘 국산 과일이 비싸다고들 하는데, 2월에는 일조량 부족 등으로 참외 작황이 좋지 않았지만 4월에 접어들면 출하량이 늘고 가격도 내려갈 것”이라고 말했다.

과일값 안정을 명분으로 만다린·두리안처럼 기존에 국내 수요가 높지 않은 과일까지 수입을 확대하는 것에 우려 섞인 시선이 많다. 아직 국내 소비자에게 생소한 수입 과일을 정부가 앞장서서 싼값에 선보일 경우 외국산의 국내시장 잠식을 부추길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정부가 과일을 물가상승 주범으로 지목하고 수입에 적극 나서면서 사과 수입을 요구하는 여론도 거세지는 분위기다. 특히 최근 정부가 일본산 사과를 수입하기 위해 내부 검토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파장이 예상된다.

8일 한 경제지는 기획재정부가 농식품부에 외국산 사과 수입 검역을 우선순위에 둘 것을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우리나라는 세계무역기구(WTO)의 동식물 위생·검역(SPS) 조치에 따라 검역상 문제로 사과·배 등의 수입을 금지하고 있다. 외국산 사과가 우리나라에 들어오려면 국내에 미발생한 병해충이 유입되는 것을 막기 위한 수입위험분석 8단계 절차를 거쳐야 한다. 한국에 사과 수입위험분석 절차 개시를 요청한 11개 국가 가운데 일본이 5단계, 미국·뉴질랜드·독일이 3단계 절차를 진행 중인데 재정당국이 이를 서두르라고 압박하는 분위기다.

농업계는 일시적으로 높게 형성된 사과 가격을 문제 삼아 사과 수입을 촉구하는 정부와 언론의 여론몰이에 강하게 반발했다.

박철선 한국과수농협연합회장(충북원예농협 조합장)은 “사과 생산량 감소와 생산비 급등으로 농가가 피해를 보는 상황에서 일시적인 수급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수입을 추진한다면 과수농가에 생업을 포기하라는 것과 같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대표 과일인 사과가 수입되면 배·단감 시장도 개방될 것이고 이들 농가의 폐원과 작목 전환이 전체 과수 산업을 무너뜨리는 상황을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7일 송미령 농식품부 장관이 주재한 ‘농축산물 물가 대응 상황 긴급 기자 간담회’에서도 정부의 사과 수입 계획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송 장관은 “정부가 국내 사과시장을 보호하기 위해 일부러 수입 검역 협상을 늦추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 근거에 따라 수입위험분석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며 “수입 검역 협상에 평균 8년1개월의 기간이 소요되는 만큼 올해 사과 가격이 높아 당장 수입을 진행한다고 해서 가격안정 효과를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지난해 같은 과일 생산 감소가 올해 반복되지 않도록 생육관리를 지원하고, 기후변화에도 안정적인 과일 생산기반을 구축할 수 있는 ‘과수산업 경쟁력 제고 대책’을 마련해 이달 안에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Copyright © 농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