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인구 2만 이하 시골 90% 트럼프 지지… 총도 들 수 있다 하더라”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2024. 3. 1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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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화제의 책 ‘시골 백인의 분노’
공동저자 톰 셸러 교수 인터뷰
지난 2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州) 그린즈버러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지지자들 앞에서 유세하고 있다. 언론인 폴 왈드먼과 함께 지난달 ‘시골 백인의 분노’를 출간한 톰 셸러 미 메릴랜드대 교수는 9일 본지 인터뷰에서 저소득층·백인·생산직 근로자 중심의 매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트럼프의 대선 구호) 열풍이 당분간 미국 사회에서 상당한 위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로이터 연합뉴스

지난달 미국에서 나온 책 한 권이 미국 정치권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보수와 진보 양측을 대표하는 인사와 언론들이 격한 반응을 쏟아내고 학계 토론에도 불이 붙었다. 정치학자인 톰 셸러 메릴랜드대 교수와 언론인 폴 왈드먼이 쓴 ‘시골 백인의 분노: 미국 민주주의의 위협(White Rural Rage: The Threat to American Democracy)’이 논쟁의 핵심이다. 진보 쪽에선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인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가 “정곡을 찔렀다”고 호평한 반면, ‘트럼프 책사’라 불리는 극우 인사 스티브 배넌은 “좌파 엘리트들의 중상모략이자 역(逆)인종차별”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소멸해가는 미국 시골에 남은 백인의 응축된 분노가 매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트럼프의 선거 구호)’로 상징되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극단적 보수의 지지 기반이며, 이런 분노를 방치하면 국가 전복(顚覆) 시도와 같은 더 과격한 위협으로 번질 수 있다고 저자들은 경고한다. 트럼프 지지자들을 도태된 시골 거주자이자 잠재적 반란자처럼 묘사한 이 책에 보수층은 분개하고 진보 쪽은 공감하며 논란은 격해지고 있다. 트럼프가 11월 대통령 선거의 공화당 후보로 확정된 지 사흘 후인 9일, 지금 미국 정치권에서 가장 화제인 이 책의 저자인 셸러 교수와 전화로 인터뷰했다.

‘시골 백인의 분노’ 저자들은 지난 몇 년에 걸쳐 웨스트버지니아주(州)의 밍고 카운티, 텍사스주의 힐 카운티 등 인구가 3만명 안팎인 여러 시골을 돌아다니며 이른바 ‘매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트럼프의 선거 구호)’를 자처하는 백인들을 만났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이렇다. “총기와 신(神)을 사랑하고, 무수히 많은 음모론을 추종하며, 대통령에 대한 견제나 언론의 자유 같은 민주주의 원칙에 적대감을 가진 이 사람들은 언젠가 정부에 대항해 무기를 들지도 모른다.”

책 '시골 백인의 분노'

-책 제목과 내용이 도발적이다. 보수 진영에서 비판이 상당한데.

“3년 전 1월 6일 (트럼프 지지자들에 의한) 의회 습격 사태를 보며 ‘도대체 미국 민주주의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폭넓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일부러 관심을 끌려 도발적으로 제목을 지었다. 실제로 책을 보면 ‘분노’란 단어는 세 번밖에 안 나온다. 지금도 온갖 협박 메일을 받고 있다. 하지만 만일 흑인 교수나 언론인이 이런 주장(분노한 시골 백인이 트럼프의 핵심 지지층이라는 책 내용)을 폈다면 더 난리가 났을 거다. 논의의 포문은 백인 남성인 우리가 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누구와도 토론할 용의가 있다. 다음 주 배넌의 토크쇼에도 출연할 예정이다.”

-시골 백인이 분노한 배경은 무엇인가.

“여성·흑인·히스패닉 같은 소수 집단이 대학에 진학하고, 기업을 차려 성공하고, 선거에 출마해 대통령까지 되는 세상이 됐다. 이 나라의 가장 넓은 땅에 사는 시골 백인들은 이런 변화와 진보하는 기술에 가장 저항적이다. 은행 ATM(자동화 기기)에 영어와 스페인어가 병기만 돼 있어도 열을 낸다. 이 같은 ‘지체 현상’엔 여러 배경이 있는데, 우리는 시골 지역의 인구 감소에 주목했다. 2010년과 2020년 인구조사를 비교하면 카운티(county, 대도시와 대조되는 시골 지방정부 단위) 지역의 67%에서 인구가 감소했다. 특히 젊은이들이 떠나서 돌아오지 않는 두뇌 유출(brain drain)이 심각하다. 부모들조차 자식들에 ‘도시 지역에 정착하고 고향엔 휴가 때나 오라’고 말할 정도다.” (대도시엔 젊은이와 외국인 이주자들이 계속 늘지만 시골 소도시 등에선 젊은층이 빠져나가고 새로 유입되는 이들이 없어 사회가 정체됐다는 뜻이다.)

-시골 백인들의 분노가 공화당 지지로 이어진 이유는.

“보수 정치인들이 이 지역들의 발전을 위한 비전을 제시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당선을 위해 흑인·이민자·동성애자 같은 외부의 적을 만들어 시골 백인들의 분노와 열패감을 자극하는 데 충실했다. 그 시초는 2008년 공화당 부통령 후보였던 세라 페일린(전 알래스카 주지사)이 사회·문화 이슈에 대한 분노를 동력으로 펼쳤던 선거 캠페인이라고 본다. 이어 트럼프가 백인 분노를 잘 포착해 올라탔고 대통령까지 되는 데 성공했다. 가난하고 소외된 중남부 백인을 대변한 책 ‘힐빌리의 노래’가 베스트셀러가 되고, 총기 소유를 노래하는 제이슨 알딘의 컨트리음악이 지난해 빌보드 1위에 오르면서 자신감은 더 붙었다.”

실제로 올해 미 경선 현장에선 이민자·동성애자 등을 공개적으로 비하하는 적나라한 ‘매가’ 지지자들이 많이 보이고 있다. 8년 전 트럼프가 처음 등장할 때나 4년 전 그가 재선에 도전할 때까지만 해도 상당수가 ‘샤이 트럼프(소심한 트럼프 지지자)’였지만, 이젠 대놓고 훨씬 큰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셸러 교수는 이를 “그전까지 무대 뒤에 숨어 있던 사람들이 완전히 가면을 벗어버렸다”라고 표현했다.

톰 셸러 메릴랜드대 교수

-’매가’가 자유민주주의에 문제가 되나.

“이들이 가진 걱정·근심과 분노가 계속 자극되면 언젠가는 ‘민주주의가 우리에게 맞는 체제인가’ 회의하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실제로 (우리가 만난) 시골 백인 중 상당수가 ‘어느 시점에 정부를 향해 무기를 들 수 있다’라고 믿고 있었다. 책에 인용한 시카고대 조사 결과에 따르면 넷 중 한 명이 ‘무력을 사용해서라도 트럼프가 백악관에 복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난 대선 때 (시골이라 할 수 있는) 인구 2만명 미만의 카운티 중 90%가 트럼프에게 표를 몰아줬다. 이 사람들이 이번 선거에서도 공화당에 투표할 것이라고 본다.”

저자는 트럼프와 공화당이 정작 시골 백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정책은 펴지 않는다는 점을 지목한다. 한편으론 정책과 상관없는 맹목적 지지이기 때문에 민주당으로서는 설득이나 회유가 더 어려울 수 있다고 이들은 본다. 예를 들어 시골 백인들이 싫어하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대표 정책인 ‘오바마케어(전국민 건강보험)’를 공화당은 가열차게 공격한다. 하지만 도입 10년이 지나고 보니, 시골 거주자의 무보험 비율이 24%에서 16%로 8%포인트나 감소해 전체 감소폭보다 컸다. 민주당의 정책이 ‘시골 백인’에게 오히려 도움이 됐다는 뜻이지만, 이들은 오히려 공화당의 오바마케어 공격에 동참하고 있다. 크루그먼은 이런 현상을 ‘시골 백인의 미스터리’라고 표현하면서 “시골 백인의 분노는 미국 민주주의의 최대 위협이지만 이와 싸울 방법은 떠오르지 않는다”라고 최근 칼럼에 적었다.

-트럼프가 이번 대선에서 지면 ‘매가’는 어떻게 될까.

“트럼프가 설사 내일 심장마비가 와서 죽더라도 ‘매가’는 한동안 계속될 것이다. 조시 홀리가 됐든, 테드 크루즈가 됐든(모두 공화당 상원의원) 수많은 이가 전면에 등장해 ‘트럼프 후계자’를 자처하며 싸울 것이다. 정쟁(政爭)을 하더라도 상식에 기반을 뒀고 작은 정부, 낮은 세율 같은 국가의 철학 문제를 놓고 다퉜던 로널드 레이건(전 대통령, 1981~1989 재임) 시대의 보수주의자들은 당분간 공화당에서 설 곳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시골 백인의 분노

정치학자인 톰 셸러 메릴랜드대 교수와 칼럼니스트 폴 왈드먼이 ‘카운티(county)’라 불리는 인구 3만명 안팎의 시골 마을들을 다니며 조사해 썼다. 이른바 ‘매가(MAGA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자처하는 시골 백인들이 “인종차별적이고 민주주의 근간이 되는 여러 원칙에 적대감을 갖고 있다. 미국 민주주의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래서 부제가 ‘미국 민주주의의 위협’이다. 지난달 27일 출간 직후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도발적 주장으로 진보·보수 양쪽 진영에서 무수한 논쟁을 양산하고 있다. 셸러 교수는 28년 차 정치학자로 워싱턴포스트·뉴욕타임스에 정치 관련 글을 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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