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 귀여움이 푸바오만 구원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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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항력이었다.
대왕판다 푸바오에 푹 빠진 것은.
푸바오 영상을 보고 또 보는 데 시력을 바치고 강철원 사육사의 산문집을 읽으며 판다 사육사가 되는 길을 알아봤다.
푸바오가 어디에 있든 나는 푸바오를 사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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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항력이었다. 대왕판다 푸바오에 푹 빠진 것은. 푸바오 영상을 보고 또 보는 데 시력을 바치고 강철원 사육사의 산문집을 읽으며 판다 사육사가 되는 길을 알아봤다. 곧 중국으로 떠나는 푸바오가 마지막으로 관람객을 만난 날 밤 에버랜드 라이브채팅창에 모인 수만 명과 함께 눈물을 글썽이다가 문득 내가 가증스러워졌다.
그날 아침 출근길 나는 발 옆을 지나간 비둘기들이 왜 인간을 두려워하지 않느냐며 한껏 미워했다. 점심엔 산 채로 배가 찢겨 죽었을 광어의 살을 씹어먹으며 고소하다고 감탄했고 양가죽 지갑에서 신용카드를 꺼내 밥값을 결제했다. 40년 넘게 갖가지 동물들을 살뜰히 먹고 입고 누려 놓고 또 다른 동물과의 이별엔 센티해진 이중성이라니.
푸바오는 왜 특별한 동물이 되어 특별한 대접을 받는 걸까. 특별히 귀엽기 때문이다. ‘귀엽다’는 조건 없이, 의심 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쏟아부을 마음이 동하게 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연애 현자들이 “상대가 귀여워 보이면 게임 끝”이라고 하지 않던가. 귀여움은 보호본능을 유발하는 강력한 생존 무기다. 취약한 아기가 살아남아 인간종의 대를 잇는 건 귀여움 덕분이다.
커다란 머리, 넓은 이마, 큰 눈처럼 보이는 눈 주위 검은 얼룩, 작은 코, 짧은 턱과 목, 토실한 뱃살까지, 판다는 구석구석 아기를 닮았다. 아기 같은 귀여움에 매료된 인간이 판다의 개체 수를 열심히 늘린 끝에 판다는 절멸을 피했다. 국제자연보전연맹의 멸종위기종 위험등급은 높을수록 위태롭다는 뜻인데, 대왕판다의 등급은 2016년 ‘위기’에서 ‘취약’으로 내려갔다.
귀여움이 판다를 구했다. 귀여움의 전형과 다소 거리가 있는 멸종위기종인 한국의 고라니와 산양의 운명은 귀여움의 위력을 반증한다. 고라니는 농작물을 먹어치우는 죄로 매년 수만 마리가 사살당하고, 산양은 지난겨울 강원지역 폭설로 수백 마리가 전례 없이 굶어 죽었으나 관심받지 못했다. 뿔제비갈매기, 홍줄나비, 느시 같은 멸종위기종 동물과 곤충의 존재는 제대로 알려지지도 않았는데 사진을 찾아보니 별로 귀엽지 않다.
동물들의 멸종과 멸종위기를 초래한 인간이 귀여워 보이는 순서대로 줄을 세워 동물을 보호하는 것은 폭력적이며 치졸하다. 우연히 인간으로 태어났을 뿐인 인간은 너무 오래 동물들에게 제멋대로 굴었다. 어떤 동물은 내 동생이라 부르고 어떤 동물은 재미로 죽였다. 어떤 동물에겐 유기농 먹이를 주고 어떤 동물은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식재료로 취급했다. 어떤 동물을 위해선 의료보험을 들고 어떤 동물은 의학실험용으로 쓰고 버렸다.
모든 생명은 생명인 자체로 귀하다. 그걸 잊으면 반생명의 논리가 언제라도 당신을 겨눌 수 있다. 인간이라고 안심해선 안 된다. “75세가 넘은 당신은 귀엽지 않고 쓸모도 없으니 안락사당할 것을 국가의 이름으로 명한다.” 생명을 차별하고 착취하는 곳에선 일본 영화 ‘플랜75’의 상상이 현실이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푸바오가 어디에 있든 나는 푸바오를 사랑할 것이다. 푸바오를 싣고 떠나는 비행기가 향하는 하늘을 보며 먹먹해할 것이다. 그러나 내 사랑이 거기서 끝나게 하지 않겠다고, 이제라도 동물권, 동물해방, 동물복지를 공부해 동물들 앞에 덜 가증스러운 인간이 되겠다고 스스로 다짐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남긴다.
최문선 문화부장 moon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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