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 여사, 백악관 권력자… 한번 찍히면 회복 어렵다”

워싱턴/이민석 특파원 2024. 3. 11. 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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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T 기자 ‘아메리칸 우먼’ 출간
질 바이든(왼쪽) 여사가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함께 지난달 11일 백악관에 전용 헬기로 도착한 뒤 걷고 있는 모습. /UPI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발언을 제지하면서 질책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자, 백악관 내 모든 사안을 꿰뚫고 있는 사람. 한번 찍히면 회복하기 힘든 (무서운) 사람.”

뉴욕타임스(NYT)의 백악관 출입 기자인 케이티 로저스가 최근 출간한 ‘아메리칸 우먼: 현대 퍼스트레이디의 변화’에서 바이든 대통령의 부인 질 바이든(73) 여사를 묘사한 내용이다. 그는 “미 대중에게 ‘상징적 역할’로 받아들여지는 퍼스트레이디는 무대 뒤에선 백악관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강력한 사람일 경우가 많다”며 “질 여사가 대표적”이라고 했다.

책에 따르면 질 여사는 바이든의 모든 비밀을 공유하고, 바이든의 공식 일정에 대부분 동행하면서 식사 메뉴까지 세세하게 챙긴다. 로저스는 “질 여사는 백악관 웨스트윙(집무동)에 상주하지 않고 있음에도 무엇이 일어나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며 “바이든 대통령 고위 참모들에게 질 여사는 바이든 대통령의 ‘문지기’”라고 했다. 백악관 내 주요 사안을 결정하는 바이든 대통령의 ‘이너 서클(inner circle·소수 핵심 그룹)’에 들어가려면 질 여사를 거치는 게 필수라는 뜻이다.

'아메리칸 우먼'

질 여사가 사실상 백악관 내 ‘주요 권력자’라는 걸 보여주는 일화로 책은 바이든의 최측근들을 모아놓고 질책한 사건을 꼽았다. 2022년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바이든이 코로나 백신과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등을 언급하면서 사실과 다른 발언을 수차례 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그러자 질은 바이든과 고위 참모들이 모여있는 대통령 개인 집무실 ‘트리티룸’에 나타나 “왜 아무도 오류를 중단하지 않았느냐”고 했다. 이어 참모들을 쳐다보면서 “여러분은 (도대체) 어디 있었나요? 회견을 끝낼 사람은 어디 있었나요”라고 했다. 참모들은 물론 바이든 대통령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영문학 대학교수인 질 여사는 1977년 바이든과 서로 재혼했다. 첫 아내와 딸을 교통사고로 떠나보낸 바이든이 델라웨어주 상원 의원을 이어가고 부통령, 대통령이 되는 과정에서 든든한 정치적 동반자였다.

질이 바이든 대통령 참모들에게 요구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는 ‘충성심(loyalty)’이다. 로저스는 “불충한 모습을 한 번이라도 보이면 두 바이든(바이든 부부), 특히 질에게 신뢰를 되찾는 건 정말 어렵다”고 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과거 경선 때 바이든을 공격했던 부통령 카멀라 해리스의 ‘수난’이다. 2020년 대선을 한 해 앞둔 2019년 민주당 선두 주자였던 바이든이 ‘흑인 인권 운동’에 반대했던 전직 의원들을 두둔하는 발언을 하자 경선 경쟁자였던 해리스가 그를 ‘인종 분리주의자(segregationist)’라고 비판한 적이 있다. 격분했던 질 여사는 해리스가 부통령으로서 남편을 보좌하게 된 이후에도 당시 발언을 잊지 않았다. 책은 “(그 발언의) 대가로 해리스는 질 여사에게 (오랫동안) 미움을 받았다”고 했다. 바이든 취임 이후인 2022년 해리스가 검사장을 지냈던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기금 모금 행사에서 해리스를 칭찬하는 기부자들 발언에 질 여사는 대꾸도 하지 않고 다른 이야기로 화제를 바꾸는 등 내내 냉랭한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그래픽=김성규

해리스는 미국의 첫 여성 부통령이자 흑인 부통령이라는 상징성에도 바이든 임기 내내 정치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다. 이를 ‘바이든의 견제’로 해석하는 미 유력 언론 보도들이 이어졌는데, 실제론 질 여사의 ‘복수’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질 여사의 수석 보좌관 앤서니 버널이 백악관 내 주요 사안에 관여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왔다. 버널은 대통령 부인의 집무실이 있는 이스트윙의 일정 담당·정책 보좌관·대변인 등 직원 수십 명을 총괄하는 수준을 넘어, 대통령 참모들이 일하는 웨스트윙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고 한다. 책은 “버널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충성스럽다. 누군가는 그가 질 여사를 위해 과속하는 기차 앞으로 걸어갈 거라고 말할 정도”라고 했다.

책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부인 멜라니아(54) 여사는 질 여사와 달리 “남편을 중재하거나 내조하는 데엔 관심이 없다”고 했다. 멜라니아는 대통령 공식 일정에 잘 참여하지 않는 수동적인 내조로 ‘그림자 대통령 부인’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책은 “(멜라니아는) 퍼스트레이디 생활을 즐겼지만, 선거 유세 등에 동행하는 건 즐기지 않는다”고 했다. 멜라니아는 남편이 지난 2022년 11월 재선 도전을 밝힌 이후 지금까지 한 번도 유세에 동행하지 않았다. 슬로베니아에서 태어난 멜라니아는 10대에 패션 모델을 시작해 파리와 뉴욕 등에서 활동했다. 2005년 부동산 재벌이던 트럼프와 결혼하고 이듬해 미국 국적을 취득했다.

트럼프 임기 초 트럼프와 멜라니아 간 ‘불화설’이 나오면서, 멜라니아가 트럼프의 공격적인 언사와 정책 등에 반발했기 때문이란 추측이 이어졌다. 그러나 책은 “멜라니아는 남편의 (공격적인 성향을 말리는) 중재자 역할을 전혀 하지 못했다”며 “오히려 남편이 (외부에서) 공격받으면 남편에게 반격하도록 부추기는 스타일이었다”고 했다.

트럼프가 작년 형사 기소된 계기 중 하나인 2021년 1월 지지자들의 연방 의회 난입 사태 당시 멜라니아는 백악관 내 양탄자 사진을 찍느라 바빴다고 책은 전했다. 멜라니아의 비서실장이었던 스테퍼니 그리셤이 달려와 “폭력 사태를 막기 위해 발언을 하실 생각이 있느냐”고 했지만 멜라니아는 딱 잘라 “그럴 생각 없다”고 답했다. 책은 “멜라니아는 대부분의 시간을 (대통령 부인 집무실이 있는) 이스트윙이 아닌 관저에만 머물렀고, 백악관에 나오더라도 사진작가를 불러 백악관 내 장식들을 찍게 했다”고 했다.

책은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하더라도) 멜라니아는 워싱턴에 완전히 돌아가지 않을 수도 있다”고 했다. 플로리다 별장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주로 시간을 보내는 남편과 달리 멜라니아는 주로 뉴욕에 거주하면서 아들 배런(18)의 대학 진학 지원에 열중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이 지난 1월18일 부인 멜라니아와 함께 플로리다주 팜비치에서 열린 장모 장례식에 참석하고 있는 모습. /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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