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회 오늘 폐막...中성장 비법 안 보이고, 시진핑 ‘통일’ 의지만 재확인
이벌찬 특파원 현장 가보니
“코로나 방역은 풀렸는데 ‘솽차베이(雙茶杯·쌍 찻잔)’는 여전하네요.”
지난 5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양회(兩會)의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국회 격) 연례 회의 개막식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자리에 찻잔 2개가 놓인 모습을 보고 한 서방권 기자가 이렇게 말했다. 시진핑을 제외한 다른 인사들의 자리에는 찻잔이 1개씩만 놓였다. 2021년 양회부터 시작된 시진핑만의 ‘솽차베이’ 관례는 코로나 감염 가능성을 줄이기 위한 방역 차원이란 해석도 있었지만, 5년 만에 방역 조치가 전면 해제된 올해 양회에서도 유지됐다. 이에 따라 솽차베이는 일인 주도 체제의 상징이란 주장이 힘을 얻게 됐다. 중국의 이인자이자 국무원(행정부)의 수장인 리창 총리는 양회의 주인공이어야 했지만, 올해 업무 보고 내내 “당 중앙의 결정을 실행하는 집행자가 되겠다”면서 시진핑에게 반복해서 고개 숙여 인사했다. 1993년 양회부터 이어져 온 폐막일 총리 기자 회견의 관례도 올해 처음으로 없앴다. 성균중국연구소는 양회 보고서에서 “리창 총리는 인사권도 행사하지 못했고, 언론에서도 배제됐다”면서 “시진핑에게 권력이 집중된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줬다”고 했다.
양회가 열린 인민대회당 곳곳에서는 중국 관영 매체를 중심으로 사전에 조율된 질문과 보도자료를 연상케 하는 답변만 오갈 뿐이었다. 사전에 외교부로부터 ‘선택’받은 소수를 제외하면 얻을 수 있는 답변은 제한적이었다. 지난 7일 양회 현장에서 지나가는 전인대 대표를 붙잡고 질문했다가 “다음 일정이 있다”는 답을 받기도 했다.
11일 폐막하는 중국 최대 연례 정치 행사인 양회를 통해 시진핑이 직접 중국의 경제·국방·외교 등 전 분야 정책을 주도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우선 올해 양회에서는 중국의 경제난 해결책으로 시진핑표 전략인 신(新)품질 생산력이 전면 부각됐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시진핑은 지난 5일 전인대 연례 회의에서 장쑤성 대표단과 소조 회의를 갖고 토종 기술로 경제를 강화하는 계획인 신품질 생산력 촉진을 강조했다. 6일에는 시진핑이 양회의 다른 축인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국정 자문회의 격) 연례 회의에 참석한 과학기술계 대표들을 만나 “잘 싸우라”고 독려했다. 양회에서 처음으로 ‘AI(인공지능) 플러스’ 운동이 언급됐고, 미국 봉쇄에 대항해 중국이 자국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려 사상 최대인 270억달러(약 35조원) 이상 규모의 투자 펀드 조성에 나섰다는 소식도 8일 블룸버그를 통해 전해졌다.
국가 안보 강화 의지도 드러났다. 8일 공개된 전인대 상무위 보고서는 “외국 문제와 관련한 분야에서 입법을 강화하고 치외법권 적용을 위한 법체계를 개발할 것”이라고 했다. 시진핑 집권 초기인 2014년 이후 반(反)테러와 국가 기밀 정보, 데이터 보안 등 국가 안보 관련 입법에 주력해왔고, 최근엔 반간첩법과 기밀법 개정안을 내놓았는데 이런 기조가 더욱 강화된다는 것이다.
대만에 관한 시진핑의 강력한 통일 의지도 드러났다. 전인대 대표이자 푸젠성 사회과학원 부원장인 황마오싱 등은 양안(중국과 대만) 융합 발전 시범구를 위해 입법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협위원이자 중국도교협회 부회장인 셰룽정도 “조국 평화 통일 과정을 위해 시범구 관련 입법을 해야 한다”고 했다. 작년 9월 중국 중앙에서는 푸젠성에 ‘양안 융합 발전 시범구’를 조성하자는 의견을 담은 문건을 냈고, 푸젠성은 작년 말에 2025년까지 양안 융합 발전 시범구 건설이 실질적 진전이 있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과거 정부 업무 보고에서 유지하던 평화통일 키워드는 사라지고, 라이칭더 대만 총통 당선인의 취임을 앞두고 독립주의에 강경 대응하겠다는 입장이 강화됐다.
중국은 올해 외부 예상치보다 높은 5% 안팎 경제 성장률을 목표로 삼았지만, 정작 실질적인 방법은 제시되지 않았다. 니훙 주택도시농촌건설부장은 9일 기자회견에서 “파산해야 하는 부동산 회사는 파산돼야 하고, 구조조정이 필요한 회사도 구조조정돼야 한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 저출생 대책도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고 자문 기구인 정협의 대표들로부터 사회 진출 시기를 앞당기는 방안이나 양육비 절감 아이디어가 나왔다. 이번 양회에서 외자 유치와 탈중국 방어를 위해 제조업 분야 외자 진입 규제를 철폐하고, 모바일과 의료 서비스 분야 등의 시장 진입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방향이 나왔다.
한편 성균중국연구소에 따르면 올해 양회에서 한중 관계 언급은 없어, 중국 외교에서 한국의 우선순위 하락이 확인됐다. 왕이 외교부장은 7일 회견에서 한반도 문제 해결책으로 쌍궤 병행과 단계적 동시 진행을 제시하며 미국이 먼저 움직이지 않으면 중국도 가만히 있겠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한국 정부가 한·미·일 안보 협력을 강화하자 지난해 양회에서 친강 외교부장이 이례적으로 한반도 문제에 대해 거론하지 않았는데, 이번에도 한국과의 관계 개선 의지가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향후 한중 정상회담 등 양국 대화 계기 마련도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양회(兩會)
중국에서 매년 3월 열리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국회 격)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국정자문회의 격)를 뜻한다. 약 5000명의 대표단이 베이징 인민대회당에 모여 일주일에서 열흘 동안 한 해 정책 방향과 인사를 논의하는 중국 최대 연례 정치 행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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