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희 칼럼] 유튜브에서 벌어지는 역사전쟁 각개전투

강경희 기자 2024. 3. 11.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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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재평가 다큐
‘건국전쟁’이 촉발한
역사 알기 관심
20년간 공고해진
좌편향 ‘한국사 시장’
오류 저격하는
젊은 역사 유튜버들
지난 8일 자신의 지역구인 인천 계양을에서 선거 운동을 하던 중 한 테이블에 앉은 청년을 향해 "설마 2찍 아니겠지"라고 말하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재명 유튜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선거운동 중에 만난 유권자에게 “설마 ‘2찍’ 아니겠지”라고 말했다가 “부적절한 발언”이라며 사과 글을 올렸다. ‘2찍’이란 지난 대선 때 기호 2번 윤석열 후보를 찍은 유권자를 비하하는 표현이다. 부지불식간에 야당 대표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정도로 우리 사회는 심각하게 분열돼 있다. 정치가 조장한 갈등과 대립의 골은 비단 정당 지지에 그치지 않고 역사적 사실을 받아들이는 태도조차 심하게 갈린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을 재평가하는 다큐멘터리 ‘건국전쟁’에 100만명 넘는 관객이 모이고 화제가 되면서 유튜브에서도 흥미로운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젊은 보수’를 자처하는 유튜브 채널 ‘그라운드 C’의 운영자 김성원씨가 그동안 이승만 대통령 폄하에 앞장서온 50대 강사 황현필씨의 오류를 조목조목 반박하는 영상을 올렸다. 황씨의 이승만 대통령 평가는 대부분 시민단체 민족문제연구소가 제작한 다큐 ‘백년전쟁’에 기반한 내용들이다. 지난 대선 때 그는 이재명 대표를 이순신에, 윤석열 대통령을 원균에 비유했었다. 기성세대 시각으로 보자면 황씨는 권위 있는 역사학자는 아니고 그냥 학원 강사이지만 유튜브 플랫폼이나 한국사 수험 시장에서는 100만명 가까운 구독자를 보유한 인플루언서이자 인기 강사여서 대중들의 역사 인식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유튜브 지형에서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 같은 ‘그라운드 C’의 도전에 네티즌들이 관심을 보였다. 황씨 채널로 달려가 역사 왜곡을 지적하는 댓글도 많이 달았다. 명색이 인기 역사 강사인데 저리도 틀린 사실이 많이 드러나서 대체 그 오류를 어찌 바로잡을까 싶었는데 그건 순진한 생각이었다. 여전히 강한 주장의 동영상을 올렸고 네티즌들이 그를 ‘엄호’하는 댓글을 달면서 ‘1찍·2찍 역사전쟁’을 벌이고 있다. 학원 강사도 연예인처럼 인지도가 중요한 직업이어서 만약 그가 오류를 시인한다면 불량 콘텐츠를 유통한 강사로 평가절하될 수밖에 없다. 어차피 우리 사회가 쪼개져 ‘친일·부패 프레임’으로 보수층을 공격하는 것을 속 시원해 하면서 그걸 지지하는 것이 마치 ‘애국 시민’인 양 여기는 사람들이 적지 않기 때문에 그 진영 안에서 버티는 것이다.

‘그라운드 C’보다 더 젊은 91년생 ‘간다효’ 같은 유튜버는 또 다른 유형이다. “나는 좌도 우도 아니다”면서 ‘도대체 이승만은 어떤 사람일까’라는 장장 7시간 50분짜리 동영상을 올렸다. 구독자 수가 60만명이 넘는 유튜버인데 점잖은 기성 세대들이 보면 난감해 할 비속어도 종종 사용하지만 젊은 세대의 구미에 맞는 재미있는 말투로 “지난 역사를 입체적으로 보자”고 설득하니 합리적인 댓글이 많이 달린다. “마냥 듣기 좋은 민족주의에서 벗어나 세계사적 관점으로 우리 스스로를 돌아봐야 객관적 분석이 가능하다” “냉혹한 국제사회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승만에 대해 좀 안다고 생각했는데…그동안 우리를 가르쳤던 민족문제연구소 재평가 필요합니다” 같은 젊은 사람들의 반응이 올라왔다.

19세기 제국주의부터 시작해 국제정치의 지각 변동이 심한 시대를 거쳐온 한국 근현대사와 그 시기 인물들의 평가는 생각만큼 단순하지 않다. 한국사의 좁은 시야로는 제대로 해석될 수도 없다. 그럼에도 정치가 개입하면서 꼬일 대로 꼬여왔다. 김영삼 대통령의 ‘역사 바로세우기’에 입각한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파동부터 문재인 정부에 이르기까지 한국사 교육은 생산, 유통, 소비 모든 과정에서 왜곡이 심하게 이뤄져 왔다.

2000년대 들어서는 시민단체 민족문제연구소가 논란 많은 ‘친일 인명 사전’을 발표하면서 반공주의자였던 고 박정희 대통령, 백선엽 장군 등에게 ‘친일 프레임’을 덧씌웠다. 그곳에서 2012년 공개한 다큐 ‘백년전쟁’에서는 강한 반일주의자였던 이승만 대통령에게도 ‘친일’의 꼬리표와 ‘독재’ ‘바람둥이’ ‘횡령’ 같은 온갖 오명을 달아 폄하했다. 이걸 기반으로 학교에서는 전교조 교사, 학교 밖 학원가나 대중매체 등에서는 일부 강사들에 의해 황당한 한국사 왜곡이 확대 재생산되어 왔다.

‘건국전쟁’의 흥행 덕에 난공불락 같던 편향적 한국사 시장에서 젊은 역사 유튜버들의 다른 목소리도 주목 받고 있다. 거대한 역사 전쟁에서 아주 작은 단초에 불과하지만 이미 부강해진 대한민국에 태어나 해외도 자유롭게 다니는 젊은 세대들에게 어필하는 방식으로 대중적 플랫폼에서 깊이 있는 역사 콘텐츠가 늘어나는 것은 바람직하다. 이런 젊은 유튜버들이 운영하는 채널도 열심히 보고, 책도 사주고, 적극 지원하는 역사 소비자층이 두꺼워져야 공급층도 늘어난다. 그래야 친미·반미, 친일·반일의 이분법적 사고와 수구적 운동권 인식에 기반해 손쉬운 선전 선동으로 대한민국 정통성을 훼손하면서까지 권력 잡고 돈벌이도 해온 왜곡된 역사관의 입지도 줄어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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