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협력사 자녀가 한 어린이집에… “이직 줄고 생산성 올라”
지난 4일 경북 포항 포스코 본사 옆에 있는 ‘포스코동촌어린이집’. 오전 6시 50분부터 아이들이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날 처음 등원한 1세반 아이들도 29명 있었다.
이곳은 포스코가 운영하는 어린이집이다. 부모가 아이를 데려다주고 출근하는 건 다른 직장 어린이집과 똑같다. 하지만 이곳만의 특별한 점이 있다. 부모가 입은 근무복에 적힌 회사 이름이 다양하다는 것이다. 포스코 본사와 계열사 직원뿐아니라 협력사 직원의 자녀가 함께 다니기 때문이다.
포스코 협력사 아이랙스에서 일하는 이도현(38)씨는 2020년부터 출근할 때 아이를 이곳에 맡긴다. 이씨도 처음엔 ‘혼자만 현장 근무복이 다르면 어쩌나’ 걱정했다고 한다. 이씨 직장 아이랙스는 문을 연 지 31년 된 탄탄한 중소기업이지만, 직장 어린이집은 없다. 이씨는 “여러 협력사 직원들이 아이를 맡기는 모습을 보니 ‘괜한 걱정을 했구나’ 싶다”면서 “지금 어린이집에 너무 만족한다”고 말했다.
포스코는 협력사 직원들을 위해 2020년 포항·광양 사업장에 각각 약 90억원을 들여 ‘상생형 공동 직장 어린이집’을 열었다. 상생 어린이집은 150명 내외 정원 중 포스코 본사 직원 자녀와 협력사 직원 자녀가 1대1 비율이 되게 하는 게 원칙이다. 현재는 전체 원생 134명 중 포스코 그룹 직원 자녀 98명, 협력사 직원 36명으로 포스코그룹 직원이 더 많다. 등원을 원하는 협력사 직원 자녀가 적고, 작년 포스코가 일부 협력사를 자회사로 직고용하면서 협력사 비중이 줄어든 영향이다. 포스코 관계자는 “본사·협력사 구분 없이 근로자가 출산·육아 부담은 덜고 마음 편히 일할 수 있는 직장 환경을 만드는 게 핵심”이라면서 “안심하고 자녀를 맡기고 출근하면서 협력사 근로자도 업무에 몰입할 수 있어 포스코 생산성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저출산 여파로 동촌어린이집도 정원(159명)을 채우지 못하지만, 지역에선 유일하게 매년 원아 숫자가 늘고 있다. 교육의 질과 시설이 좋다고 소문난 덕분이다. 2층짜리 어린이집은 전체 면적이 2541㎡(약 768평)이고, 탁 트인 실내 중앙 정원엔 바나나·귤나무 등이 자란다. 아이들이 열대 과일을 직접 수확해 맛보기도 한다. 직원은 보육 교사 36명 등 44명에 달한다. 원어민 교사 2명이 매일 영어 수업도 한다. 비용은 전액 무료다. 정부가 지원하는 보육비 외에 부모가 부담해야 하는 현장학습비, 특별활동비, 행사비 등을 모두 포스코가 지원한다.
퇴근이 늦은 부모를 위해 오후 8시까지 운영하고 아침·점심·저녁 식사 모두 제공한다. 포스코 사내 맞벌이 부부인 김나데즈다(37) 설비자재구매실 과장도 네 살, 두 살 자녀를 이곳에 맡긴다. 김 과장은 “집 근처 어린이집에 맡길 땐 갑자기 퇴근이 늦어지면 아이를 데리러 갈 때까지 눈치가 보이고 아이가 혼자 남을까 걱정됐지만, 지금은 믿고 맡길 수 있어 마음이 놓인다”고 했다.
다른 포스코의 상생 어린이집인 전남 광양 금당어린이집은 2020년 개원 때부터 포스코 협력사뿐 아니라 광양국가산업단지에 입주한 중소기업 자녀들에게까지 문을 활짝 열었다. 올해 원아 106명 중 포스코·계열사 자녀가 48명, 협력사 12명, 협력사는 아니지만 같은 산단에 입주한 중소기업 자녀가 46명이다.
2020년 이후 포항 동촌어린이집엔 협력사 41곳, 광양 금당어린이집엔 협력사와 산단 중소기업 포함, 88곳의 직원 자녀가 다녔다. 워낙 다양한 협력사와 중소기업 자녀들이 다니기 때문에 부모 직장에 따른 아이들 간 위화감은 없다고 한다. 이곳에 자녀를 보낸 협력사 학부모 16명을 심층 인터뷰한 서울대 인구정책연구센터 조영태 교수 연구팀은 “포스코 직장 어린이집 덕분에 협력사 직원들도 시간적 여유를 갖고, 육아에 대한 불안감이 줄었다”며 “결국 협력사 직원들의 이직률이 줄어드는 효과도 있었다”고 결론 냈다.
포스코의 상생 어린이집에 대해 “우리나라 대기업과 중소기업 직원 간 육아 환경 차이를 메울 수 있는 좋은 방안”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중소기업 종사자들은 상대적 저임금뿐 아니라 육아 등 사내 복지가 부족해 출산을 꺼리는 경우가 많은데, 포스코처럼 대기업이 협력사들에 어린이집을 개방한다면 저출산 극복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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