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이 힘 합쳐 키운다, 독일의 ‘공동 육아’
지난 5일 독일 슈투트가르트 공업지역 파이힝엔의 어린이집 ‘엘레멘트 아이 슈테프케스’. 6개월부터 6살까지 51명이 모여 병원 놀이, 모형 만들기 등을 하고 있었다. 보육 교사만 14명이다. 이 어린이집 운영자는 국가도, 지방자치단체도, 개인도 아니다. 공단 내 중소기업 여러 곳이 연합해 만든 돌봄 시설이다. 중소기업 직원들의 자녀인 51명이 함께 돌봄 서비스를 받고 있다. 이들 중소기업은 모두 재정이 탄탄하지만 대기업처럼 단독으로 보육 시설을 운영하기는 벅찬 회사들이다. 독일 연방가족부는 “중소기업은 돌봄 시설비와 운영비를 혼자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에 연합 어린이집 모델이 필요하다”고 했다. 중소기업이 모인 공단일수록 ‘공동 육아’ 시스템이 유용하다는 뜻이다. 반면 쇠락한 국내 공단에는 어린이집을 찾아보기도 어렵다.
보육 자문 회사 ‘콘쳅트 이(Konzept-e)’의 경영진인 발트라우트 베그만씨는 “돌봄 서비스가 좋으면 중소기업이라도 양질의 노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했다. 이 회사가 슈투트가르트에서 관리하는어린이집 20여 곳 중 12곳이 ‘연합 어린이집’이다. 가장 오래된 곳은 30여 년 전인 1993년 12곳이 연합해 만든 어린이집이다. 케이블 제조 업체 랍 같은 대표적 중소기업도 동참했다. 공단 특성상 기업들이 업종별, 구역별로 모여 있는데 직원들이 출퇴근할 때 자녀를 맡기기 편한 위치에 공동 시설을 만든다. 부지 매입비, 시설비, 운영비 등을 같이 부담한다. 외국계를 많이 고용한 기업은 해당 문화에 익숙한 보육 교사를 별도로 두기도 한다. ‘엘레멘트 아이’에는 스페인계 아이를 위한 교사가 식단과 놀이 프로그램 등을 함께 짠다.
베그만씨는 공단 어린이집의 특징으로 운영 시간을 꼽았다. 그는 “생산직에서 일하는 부모들을 위해 오전 8시부터 문을 열고, 사무직에서 일하는 부모님을 위해선 오후 6시까지 운영하는 등 공공 어린이집보다 운영 시간이 더 길고 탄력적”이라고 했다. 연방가족부는 “직원들이 아이를 보낼 곳을 찾지 못하면 일상적 직장 생활이 어려워진다”며 “잘 마련된 사내보육 제도는 육아휴직 등을 줄여 오히려 기업 생산성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고 했다.
독일은 출산율을 지키는 카드로 ‘일과 가정’의 균형을 꺼내 들었다. 연방가족부의 2022년 자료에 따르면독일 중소기업 3곳 중 2곳(63%)이 일과 가정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구체적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중소기업의 약 27%가 재택근무를 허용한다. 독일 함부르크가족연합은 2007년부터 가족 친화적 경영을 하는 중소기업에 ‘함부르크 가족 인증’을 수여하고 있다. 2023년 500번째 기업이 탄생했다. 홍보를 지원하는 등 혜택을 준다. 함부르크 상공회의소 노르베르트 오스트 회장은 “파격적 저출생 극복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함부르크만 해도 2035년까지 13만3000여 명의 숙련된 노동력이 부족할 것”이라며 “노동력을 중소기업으로 끌어들이려면 매력적인 근무 조건, 특히 육아와 가정 생활을 보장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독일 연방노동청은 중소기업들이 도입할 만한 ‘모델’들도 소개하고 있다. 보이첸부르크 지역 제과업체인 스위트는 회사가 운영하는 캠프에서 휴일 보육 등을 할 수 있도록 했다. 450명이 근무하는 인터스포츠는 “아이들 돌봄을 지원해야 부모가 안심하고 일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출산 보조금 500유로 등 보육 비용을 60%까지 지원한다. 독일은 2013년 ‘만 1세 이상의 모든 아이들은 어린이집에 자리를 가질 권리가 있다’는 내용의 법안을 통과시켰다. 부모가 어린이집을 찾지 못하면 정부가 나서 대중교통 30분 이내, 주거지 5㎞ 이내 어린이집을 찾아 연결하도록 했다. 이후 보육 시설에 정부 보조금이 대거 투입되며 연합 어린이집과 직장 어린이집이 대거 늘었다고 한다. 여러 기업이 만든 연합 어린이집이라도 정부 보조금을 받으면 기업뿐 아니라 해당 지역 주민들도 이용할 수 있다. 기업과 지역이 ‘공동 육아’ 문화를 만드는 것이다. 직원과 주민들은 오전 8시에 아이를 맡기고, 오후 4시 퇴근할 때 아이를 데려가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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