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올바름’ 논란에 공연취소-하차… “2차 가해” vs “마녀사냥”

이지윤 기자 2024. 3. 11.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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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공연계에선 다음 달 17∼21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되는 발레 '모댄스'가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장인주 무용평론가는 "자하로바 공연 논란의 경우 자하로바 본인이 전쟁을 원치 않는다 주장해도 핵심적인 친푸틴 예술가로서 가해자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다"며 "전쟁에 반대하는 나라들에선 러시아 출신 예술가들의 공연을 줄줄이 취소했다. 비윤리적 예술가가 활동을 재개해도 괜찮다는 안 좋은 선례를 남겨선 안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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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배우’ 주연 연극은 개막도 못해
러 자하로바 출연 ‘모댄스’도 논란
“피해자 고통” “예술 위축” 찬반 팽팽
러시아 볼쇼이발레단의 수석 무용수이자, 예술계 대표적 ‘친푸틴’ 인사로 손꼽히는 발레리나 스베틀라나 자하로바가 주역으로 올라 공연계 정치적 올바름(PC) 논쟁을 일으킨 발레 공연 ‘모댄스’의 한 장면. 공연은 패션 디자이너 코코 샤넬의 삶을 다룬 발레 작품으로 명품 브랜드 샤넬이 무대 의상에 참여해 화제가 됐다. 인아츠프로덕션 제공
최근 공연계에선 다음 달 17∼21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되는 발레 ‘모댄스’가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주역인 세계적 발레 스타이자 러시아 볼쇼이 발레단의 수석무용수 발레리나 스베틀라나 자하로바(45·사진)의 정치색 논란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태생인 그는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에 찬성한 데 이어 러시아 연방의회 국가두마(하원) 의원을 두 차례 지낸 인물이다. 푸틴으로부터 훈장도 받아 ‘친푸틴’ 인사로 손꼽힌다. 이 때문에 이번 공연을 앞두고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 측은 주한 대사관을 통해 “침략 국가의 공연자들을 보여주는 것은 러시아의 부당한 침략을 정당화하고, 우크라이나 국민의 고통을 경시하는 것과 같다”며 공연 취소를 주장하고 있다. 이를 계기로 공연계에선 논란이 되는 정치적 배경을 지닌 예술가의 공연을 허용해도 되는가에 대한 찬반 의견이 팽팽하게 맞물리고 있다.

최근 정치적 올바름(PC)이 대중의 중요한 잣대가 되면서, 정치적 성향뿐 아니라 윤리적 결함이 있는 예술가의 공연 취소, 캐스팅 변경 등을 요구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올 초 공연 예정이던 연극 ‘두 메데아’는 공연예술 관계자 343명, 관객 363명이 연명한 보이콧 운동으로 개막을 열흘 앞두고 취소됐다. 주연 배우 김모 씨가 2018년 미투로 질타를 받은 연희단거리패 대표 출신인 데다, 그래픽디자이너가 성범죄 의혹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달 3일 폐막한 뮤지컬 ‘더 데빌: 파우스트’에는 원래 배우 한모 씨가 출연 예정이었으나 개막 전 ‘건강상의 이유’로 하차했다. 2020년 성추행 논란을 두고 관객들이 대학로 거리에 현수막을 내거는 등 거세게 항의한 데 따른 결정으로 알려졌다. 공연을 허용하는 것이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비판적인 여론을 수용한 것이다.

공연계에선 PC 논란을 일으킨 예술가들의 공연 여부를 놓고 엇갈린 의견이 나오고 있다. 공연 강행이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견과 캔슬컬처(논란이 된 인물의 지위를 박탈하는 집단적 움직임)는 마녀사냥일뿐더러 예술가들의 예술 활동을 위축시킬 뿐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는 것.

장인주 무용평론가는 “자하로바 공연 논란의 경우 자하로바 본인이 전쟁을 원치 않는다 주장해도 핵심적인 친푸틴 예술가로서 가해자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다”며 “전쟁에 반대하는 나라들에선 러시아 출신 예술가들의 공연을 줄줄이 취소했다. 비윤리적 예술가가 활동을 재개해도 괜찮다는 안 좋은 선례를 남겨선 안 된다”고 말했다.

반면 이은경 연극평론가는 “공연을 ‘안 볼 권리’가 있는 개개인이 작품을 외면함으로써 예술가가 반성을 하고, 자연적으로 정화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며 “공과를 다각도로 살피지 않은 일방적 매도는 다양한 예술 활동을 위축시킬 우려도 있다”고 했다.

일회성에 그치는 단죄를 넘어 논란이 된 예술가의 작품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16일 서울 종로구 예술가의 집에서 열리는 포럼 ‘연극계 백래시, 어떻게 맞서나갈 것인가’에 참여하는 홍예원 연출가는 “나치 독일의 괴벨스가 만든 선전 영화는 미학적 완성도를 인정받는 한편 어떤 목적으로 제작됐는지 대중이 인지하고 본다는 게 핵심”이라며 “공연을 취소하고 사안을 봉인할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재평가로 건강한 논의를 이뤄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다음 달 16∼18일에는 러시아 볼쇼이 발레단의 갈라콘서트가, 6월에는 이스라엘 예루살렘 현악 4중주단의 공연이 열린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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