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대한민국] 세계 곳곳에서 아이는 ‘갖춘 자’들만의 특권이 되어가고 있다

최준영·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2024. 3. 11.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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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대학·직장·일의 성취감… MZ 기대 수준 높으니 결혼·출산 기피
복지 제도 우수한 스웨덴·핀란드 등 북유럽서도 출생률 예전 같지 않아
저출생 극복은 어쩌면 불가능한 과제… 한정된 자원 투입 새 고민을
/그래픽=송윤혜

2024년 대한민국의 가장 큰 고민은 저출생이다. 2022년 합계출생률 0.78명에 이어 2023년에는 0.72명을 기록하면서 사상 최저치를 경신하였다. 2024년에는 0.6명대로 진입할 가능성도 높다. 모든 사회적 문제에 대해 정부의 대책으로 대응하는 대한민국답게 이 문제를 총괄하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이 교체되었고 위원 교체도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에서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 저출산 대책의 전면적인 재검토를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는 더 많은 출산과 육아 지원을 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끊임없이 해외 사례를 찾아 세계를 헤매왔고, 북유럽 복지사회를 궁극적인 모델로 삼고 있다. 그 결과 우리는 더 많은 복지와 육아 친화적인 사회적 환경의 조성, 그리고 출산 가구에 대한 주택 공급 우선권 부여와 육아 수당 확대 등의 대책을 조합하면 저출산 추세를 반전시킬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대한민국이 북유럽 국가만큼의 폭넓은 출산 및 육아 지원 수준에 도달한다면 저출산 문제는 해결될 것이라 믿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남은 과제는 더 많은 예산을 더 빠르게 지출하고, 각종 제도를 개편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북유럽 국가들도 사상 최저 출생률을 기록하고 있다. 핀란드의 합계출생률은 10년 만에 25%가 낮아져서 2022년 1.32명을 기록하였다. 2023년 예비 통계를 기준으로 할 경우 1.26명으로 더욱 낮아졌다. 우리에게 일·가정 양립 정책의 원조이자 복지국가의 대명사로 유명한 스웨덴의 경우도 2022년 합계출생률 1.52명에서 2023년 1.45명으로 낮아지면서 매년 역대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구호를 통해 본격적인 복지사회 시대를 열었던 영국의 경우도 잉글랜드를 기준으로 할 경우 2022년 합계출생률은 역대 최저 수준인 1.49명으로 나타났으며, 런던 등 대도시는 1.2명 이하를 기록했다. 스위스 역시 1.29명으로 역사상 최저치를 기록하였다.

그래픽=송윤혜

출산 및 육아와 관련한 다양한 복지제도가 잘 갖춰진 것으로 알려진 유럽 국가에서도 출생률 급락 현상이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다. 물론 이런 수치조차도 합계출생률 0명대를 기록하고 있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북아시아 국가들로서는 부러울 따름이다. 대만은 2023년 0.87명, 싱가포르도 2023년 0.97명의 합계출생률을 기록했으며 중국도 2023년 1명을 기록해 조만간 0명대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대한민국이 겪고 있는 저출산 흐름은 우리만의 특별한 문제가 아닌 것이다. 베트남도 합계출생률은 2023년 1.95명으로 낮아졌으며 호찌민시 등의 경우 1.2명까지 내려갔다. 아프리카를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가 같은 방향으로 향하고 있으며,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다.

저출산의 원인에 대해 대부분의 국가는 주택 등 각종 생활 비용이 증가함에 따라 결혼과 출산 연령이 늦어지거나 아예 결혼을 기피하는 것을 핵심 요인으로 판단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출산 및 육아 지원이 부족하여 여성에게 과도한 부담이 지워지는 것도 주요 원인으로 간주되고 있다. 이에 따라 많은 국가는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기간을 늘리고 비용 지원을 확대하며 출산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에게도 출산휴가를 부여하고 다양한 근무 형태를 허용하는 등의 일·가정 양립 정책을 다양하게 전개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출산 후 일시금으로 지원되는 출산 장려금의 규모도 커지고 있다. 사회적으로는 남성의 가사 및 육아 기여도를 높여야 한다는 분위기도 강해지고 있다.

저출산이라는 결과는 모두 같지만 사실 저출산의 원인은 지속적으로 변해왔다. 과거에는 육아와 출산에 따른 지원 부족이 저출산을 이끌었다면, 현재는 결혼과 출산을 담당하는 세대의 인식 전환이 저출산을 가속하고 있다. 국가를 불문하고 25~30세 전후 세대는 결혼과 출산이 인생의 불확실성을 키울 뿐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인간관계에 대해서도 리스크에 비해 효용은 낮은 것으로 간주한다. 결혼과 출산은 물론 연애에 대해서도 이득보다는 손실에 더 민감하다. 당연히 결혼과 출산 기피 경향은 강해진다. 대만은 결혼에 관심이 없다고 응답한 여성의 비율이 2011년 12.4%에서 2019년 36.8%로 높아졌다. 핀란드에서 자녀를 원하지 않는다는 응답 비율은 80년대 초반 출생 세대에서는 5% 미만이었지만 90년대 초반 출생 세대에서는 25%로 증가하였다.

반면 이들 세대가 충족해야 할 사회적 기대 수준은 매우 높다. 대학에 당연히 진학해야 하고, 좋은 직장에 취업해 높은 소득을 올려 집을 장만해야 하고, 일에서는 높은 성취를 이뤄야 한다는 것이다. 어느 사회나 이러한 요구는 소수만이 충족할 수 있으며, 설령 충족하더라도 이미 출산 가능 시기를 한참 지난 40대 중반에 도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기대 수준 달성이 어렵다고 판단한 사람들이 결혼을 포기하고 소소한 즐거움을 확실하게 누릴 수 있는 각종 콘텐츠와 반려동물에 몰두하는 경향은 세계적인 트렌드가 되었다. 세계적으로 출산은 모든 것을 갖춘 자들만의 특권이 되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이 당면한 저출산이라는 과제는 세계 보편적 문제이며, 사회 환경 변화에 따른 인식 변화가 누적되면서 나타난 인류 초유의 공통 과제이다. 한정된 자원을 단기간 저출산 극복이라는 불가능한 과제에 투입하는 것은 당연히 비효율적이다. 저출산의 극복이 아니라 저출산 사회에 어떻게 적응할지를 고민하고, 어디에 자원을 투입할 것인지를 판단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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