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AI 시대, 외국어는 통·번역만을 위해 배우는 게 아니다
AI(인공지능)가 인간을 대신하는 시대가 온다고? 첨단 기술의 상징인 AI가 급기야 인간의 정신과 언어도 대신할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최근 조선일보 사회 면에 실린 ‘AI가 다 통·번역해 주는 시대… 위기의 어문학과’ 기사도 이런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다. 이에 우려와 함께 반론(反論)을 제기하고 싶다.
최근 통·번역해 주는 AI의 활용으로 대학에서 어문학을 전공하는 것이 필요 없다고 느끼는 분위기가 우리 사회에 공유된다니 우려스럽다. 특히 일부 대학 당국에서 막연히 취업에 좋다는 생각으로 실용 학문 위주로 학과를 개편하거나, 이른바 첨단 학과를 신설·확충하고자 기초 학문과 순수 학문 위주로 구조 조정을 한다는 보도를 접하니 개탄스럽다. 더욱이 그 표적이 주로 인문학이라면 우리 사회 대학 수준을 보여주는 부끄러운 일이다.
자유주의 시장 경제학자로 잘 알려진 하이에크가 1968년 발표한 ‘정치사상에서 언어 혼란’이라는 논문은 언어에 관한 흥미 있는 견해를 알려준다. 그는 인간의 언어 표현은 인간의 의지와 목표, 의견과 가치를 알려주는 수단이라고 지적한다. 언어에는 인간의 가치도 담겨 있는 것이다.
생태학자 게릿 하딘은 ‘국부론’ 저자 애덤 스미스야말로 현대 AI를 발전시킨 인공두뇌학의 주창자라고 주장했다. 애덤 스미스가 가격을 통한 시장의 자율적 조절 시스템인 ‘보이지 않는 손’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하이에크는 자유 경제 시장의 발전을 기계적, 인공적 질서가 아닌 ‘자율적 조직 질서’ 혹은 ‘감각적 질서(sensory order)’의 형성이라고 했고, 이것을 인간 문화의 진화와 그에 따른 사회 질서의 진화 과정으로 이해했다. 인간과 문화의 자율적 힘을 믿는 그는 경제학자 이전에 인문학자였다. 그의 대표적 경제 이론은 이런 인문학적 바탕에서 가능했다.
독일 인문학자 빌헬름 폰 훔볼트(1767~1835)도 언어란 ‘인간 사고를 형성하는 기관’이며, 조화로운 인간의 형성은 인간의 개인적인 완성은 물론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자신과 사회를 인식할 수 있는 자율적 인간을 길러내는 것이 필요한 이유다. 그가 베를린에 훔볼트 대학을 설립한 취지처럼, 여기에 외국어를 포함한 대학 교육의 목표가 놓여 있다. AI는 그런 자율성이 없다. 인간만이 그렇다. 언어와 인문학 교육이 AI 시대에도 필수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훔볼트가 단언했듯이 인문학이 없으면 인류와 국가의 진보는 결실을 맺을 수 없다. 대학이 AI 시대의 ‘전공 바보’를 배출하는 기관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전공 바보’는 외국어 교육과 어문학 전공이 단순히 통역과 번역만을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진실은 그렇다. 어문학과 인문학은 문화와 인간, 세계와 환경, 역사와 미래에 대한 인식 도구이자 인간 생존 수단이다. AI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의 영역이다. 자신과 인류의 운명, 사회의 미래를 추적하며 자연과의 공존을 추구하는 인간 파우스트가 보여주는 행로가 그것이다.
자신을 인식하지 못하는 지식인은 자신의 연기를 이해하지 못하는 배우와도 같다. 현대의 대표적 극작가 브레히트가 ‘서사극’을 ‘교육극’이라 부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외국어는 사설 학원에서 배우면 된다고 말하는 대학 총장이나, 특정 전공 지원자가 많으면 그 전공 인원을 무조건 늘려야 한다는 교수가 있는 것도 현실이다.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이지만, 실패한 인문 교육의 사례이기도 하다. 제대로 된 인문학 교육이 없다면 그런 지식인은 양산될 것이다.
대학의 인문학도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 자신의 행위를 돌아보지 못하는, 최소한의 윤리와 인성도 갖추지 못한 정치인과 집단들이 있는 점에도 우리의 인문학은 부끄러워하고 책임을 공감해야 한다. 대학을 감독할 교육부는 말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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