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에서] ‘돌려차기’ 피해자의 울분
“법원에 내 피해의 심각성을 구걸하고 ‘잘 봐달라’ 아첨 떨어야 하는 상황이 너무 괴로웠다. 피해 사실만으로도 힘든데 온갖 눈치를 다 봐야 하더라. 그렇게 쓴 탄원서를 가해자는 피고인 방어권 덕에 내 동의 없이도 볼 수 있는데, 내겐 가해자 탄원서 열람이 허락되지 않았다. 법 앞에는 모두가 평등하다면서 법의 균형이 가해자 쪽으로 지나치게 기울어져 있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 김진주씨는 최근 본지 인터뷰(3월 8일 자 A1면)에서 이렇게 말했다. 김씨의 이 말은 현행 사법체계에서 범죄 피해자 지위의 불평등을 보여준다. ‘피해자는 당사자가 아니다’라는 형사재판의 원론만 상식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다. 국가에 가해자의 처벌을 ‘요구’하는 것이 피해자의 권리일진대, 으레 ‘탄원’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 현실도 아이러니다. ‘요구서’ 아닌 ‘탄원서’를 내야 하는 존재가 당당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판사 출신 변호사 송민경의 책 ‘법관의 일’에 이런 구절이 있다. “우리의 형사재판 구조는 처벌 오류를 되도록 방지하기 위해 설계된, 피고인 쪽으로 15도쯤 유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은 ‘한 사람의 무고한 사람을 처벌하는 것보다 열 사람의 범인을 놓치는 것이 낫다’는 영국 법학자 윌리엄 블랙스톤(1723~1780)의 말이 형사재판의 기본 이념이라 설명한다. 법원이 피해자의 고통에 귀 기울이기보다 무고(誣告)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재판 과정에서 배제하는 것은 이런 논리에 기반한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블랙스톤의 말은 중대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열 사람의 범인을 놓치면 열 명 이상의 피해자가 생겨날 수 있을 텐데, 그들의 눈물은 누가 닦아줄 것인가? 블랙스톤이 살았던 18세기엔 과학수사의 미발달로 무고한 죄인이 많았겠지만 곳곳에 CCTV가 널려 있고, DNA 감정과 디지털 포렌식이 가능한 현대에도 그의 말이 유효할까. 법원이 아직도 이 낡은 이념을 기계적으로 고수한다면 오판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핑계가 아닐까.
이코노미스트 한국 특파원 출신인 영국 작가 다니엘 튜더에게 물었다. “블랙스톤의 조국인 당신네 나라에서도 여전히 그의 말을 금과옥조 삼아 피고인 방어권을 위해 피해자를 희생양으로 삼느냐”고. 그는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이것만은 확실하다고 했다. “한국은 성범죄, 스토킹, 아동 대상 범죄, 그리고 술 취한 범죄자에게 지나치게 너그럽다.”
김진주씨가 국가에 요구하는 것도 심신미약·반성·인정·가정환경·형사공탁 등을 이유로 감형하지 말며, 피해자의 보복범죄 공포에 비해 터무니없이 짧은 수감 기한을 100세 시대에 맞게 늘려 달라는 것이다. ‘법에도 눈물이 있다’는 말은 이제 범죄자보다는 피해자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간 우리 법원은 가해자들을 위해 충분히 많이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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