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J팝은 안 나오는 라디오

임희윤 음악평론가 2024. 3. 1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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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넘게 여러 라디오 프로에서 대략 2000~3000곡을 소개했다. 그중 일본 가수는 한 손에 꼽을 정도다. 일본어 노래는 나갈 수 없다는 지상파 라디오의 불문율 탓이다. 몇몇 PD에게 이유를 묻자 “위법”이라고 했다. 어떤 법을 어기는 거냐 물으니 “국민 정서법”이란다. 일본어 노래 송출을 막는 규정은 없지만 이에 항의하는 청취자 민원이 들어올 경우 방송국이 곤란해진다는 것이다.

일본 노래를 아예 소개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가사가 ‘레시레/레미솔라시솔솔/솔솔파레시 라솔…’ 식으로 계이름으로만 부르는 일본 그룹 ‘공기공단’의 ‘음계소야곡(音階小夜曲)’이나 그룹 ‘세카이 노 오와리’의 ‘안티히어로(ANTI-HERO)’처럼 가사가 온통 영어로 된 곡 등이다. 아이슬란드 전자음악부터 아르헨티나 록까지 세계 각국 음악을 소개했지만, 정작 가장 가까운 나라 음악을 들려줄 기회는 거의 없었다.

올해는 일본 대중문화 전면 개방 20주년의 해다. 1998년 애니메이션을 필두로 한 1차 개방을 시작해 2004년 마지막 4차 개방 때 J팝까지 해금됐다. 당시 국내에선 ‘우리 문화가 왜색으로 물들 거다’ ‘한국 문화시장이 잠식되고 산업 경쟁력이 약화될 것이다’ 등 우려가 쏟아졌다. 기우였다. J팝이 주춤하는 사이 K팝이 세계로 먼저 치고 나갔다. 1963년 일본 가수 사카모토 규가 차지한 미국 빌보드 싱글차트 1위의 대업을 아시아 가수로는 무려 57년 만에 한국 그룹 방탄소년단이 이었다. 한국의 여러 아이돌 그룹은 일본의 가장 큰 돔 구장들을 돌며 공연하며 일본 젊은이들의 선망의 대상이 됐다.

한국 젊은이들도 일본 문화를 즐기고 있다. 소셜미디어와 OTT에는 ‘너의 이름은’ ‘더 퍼스트 슬램덩크’ ‘스즈메의 문단속’ 등 일본 애니메이션이 인기를 끌고 있다. 요아소비, 이마세, 아도 같은 일본 가수들이 국내 차트 최상위권에 오르거나 내한 공연을 펼치기도 한다.

라디오에서만 일본어 노래를 막는 건 시대착오적이다. 한일 젊은이들의 자연스러운 문화 교류는 양국의 문화 토양을 풍요롭게 할 것이다. ‘레시레~’ 식의 서양에서 온 계이름으로만 된 세레나데 말고 그 나라만의 독특하고 다양한 음운, 정서, 언어로 가득한 세레나데가 양국에 맘껏 소개되고 울려 퍼지면 좋겠다. ‘국민 정서법’에도 유효 기간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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