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 살롱] [1436] 유림(儒林)의 어른 세 분
인생 살면서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상의하고 싶은 영남의 어른이 3명 있다. 안동의 습천회(習踐會)를 이끌고 있는 행파 이용태(92) 선생, ‘TK 사부’ 유목기(91) 선생, 그리고 퇴계 종손인 이근필(92) 선생이었다. 나는 이 세 분을 유림(儒林)의 어른으로 의지하였다.
행파 선생의 습천회는 유교의 윤리 도덕을 익히고 실천하는 공부를 하는 모임이다. 행파에 의하면 윤리 도덕 교육은 테니스를 익히는 것과 같다. 책만 읽는다고 되는 게 아니라 코트에서 직접 라켓을 잡고 뛰어다니고 땀을 흘리면서 공을 쳐 봐야 익혀지는 것이다. 교실에서 수업만 듣는다고 되는 게 아니다. 차세대 유림 지도자 연령층인 60~70대들을 위하여 한 달에 한 번씩 안동 유림회관에서 실천 모임을 갖는 게 습천회이다.
유목기는 대구·경북의 식자층이 선생님으로 존경한다. 80년대 삼성 산하 고려병원의 사무국장을 할 때 납품 리베이트를 한 푼도 받지 않아서 삼성 감사팀이 놀란 사건은 유명한 일화이다. 처신이 선비의 전형이다. 미국의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이 풍산고등학교를 방문할 때 경북지사 쪽에서 제일 먼저 부시와 악수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러자 유목기는 ‘학교니까 교장이 제일 먼저 해야지요’라고 거절하였다. ‘그렇다면 두 번째로 하게 해주세요.’ ‘아니지요. 교육장이 하는 게 맞지요.’ ‘병산서원에 갔을 때 제일 먼저 하면 어떨까요.’ ‘서원이니까 병산서원장이 먼저 하는 게 맞지요.’
엊그제 세상을 뜬 퇴계 종손 이근필은 한국의 유교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인물이었다. 중국에서도 없어지고 일본에도 없지만 한국에는 아직 남아 있는 유교. 하루에도 몇 번씩 순례자들이 버스를 타고 퇴계 종가를 방문한다. 이들을 접견하는 게 당신의 인생이었다. 대청마루에서 손님들과 같이 큰절을 하고 90세 노인이 무릎을 꿇고 앉아 40~50분간 대담을 나눈다. 주로 이웃 선비 집안들의 역사와 미담을 이야기한다. “무릎이 저리지는 않습니까?” “할아버지도 이렇게 앉았고, 아버지도 이렇게 앉는 모습을 보고 컸기 때문에 저리거나 어색하지 않습니다.” 다른 선비들 이야기는 하지만 퇴계 선생 이야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안동시 입구에 ‘한국정신문화의 수도’라는 현판이 걸릴 때 종손은 ‘등에서 땀이 납니다’라고 속내를 밝혔다. 이걸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퇴계 종가의 대청 마루에는 ‘도학연원방(道學淵源坊)’이라는 글씨가 걸려 있다. 멸종 위기에 몰린 유교·도학의 장문인(掌門人)이 세상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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