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비용 계산 후 자녀 지원 기준 세워야[정경아의 퇴직생활백서]
노후 위한 재무 상황 꼼꼼히 점검을
자녀에 재정 상태-노후 계획 알리고
‘자립 전 3년간 지원’ 등 원칙 세워야
작은 차 안에서 나눈 아이와의 대화 때문이었다. 앞으로의 진로를 묻는 내 질문에 아이는 이렇게 대답했다. “학교를 더 다닐까 봐.” 대학교 4학년에 올라가는 아이는 가급적 졸업을 미루고 싶어 했다. 취업이 걱정되는지 졸업 유예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선배들도 많이들 그런다며 내 눈치를 살폈다. 그 말을 듣는데 가슴이 내려앉았다. 아이가 학교를 오래 다니게 되면 부담은 오롯이 내 몫일 게 뻔했다.
끝없이 뒤엉키는 감정에 머리가 복잡해졌다. 마냥 응원해 주지 못해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불안한 나의 앞날과 사랑하는 자녀의 미래, 과연 둘 사이에서 현명한 선택은 무엇일까. 퇴직 후 한 번은 짚어보아야 할 문제를 앞두고 비슷한 고민을 하시는 분께 다음 세 가지 이야기를 해 드리고 싶다.
나 역시 미루다가 해보았는데 결과가 놀라웠다. 보수적으로 잡았는데도 생활비가 턱없이 모자랐다. 여차하면 외곽으로 이사하려는 일정을 앞당겨서 진행해야 할 처지였다. 이러다가는 분명 내 앞길이 평탄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동안 씀씀이를 줄여보겠다고 애는 써보았지만, 그때뿐이었다. 이미 몸에 밴 생활 패턴과 소비 습관은 퇴직했다고 해서 결코 바뀌지 않았다. 재정 상태를 점검하고 노후 비용을 계산할 때는 이 점을 고려하여 현실 가능한 계획을 짜보시길 바란다.
둘째, 자녀 지원의 원칙과 기준을 세워야 한다. 앞서 말한 대로 퇴직 후 주머니 사정은 팍팍한 데 반해 자녀의 독립 기준이 되는 초혼 연령은 점차 늦어지고 있다. 실제 2022년도 기준 1988년생의 미혼율은 50%로, 자녀의 결혼이 생각보다 훨씬 늦어지거나 심지어 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이는 자녀에 대한 부담이 퇴직 후에도 상당 기간 지속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여기에 기대수명이 늘어나는 분위기까지 감안한다면 상황은 더 나빠질 수밖에 없다. 가정 경제는 서로 얽혀 있는 거미줄과도 같아서 한 곳이라도 끊어지면 전체가 무너지기 십상이다. 오직 분에 맞는 원칙과 기준만이 최악의 결과를 막을 수 있다.
내가 원칙을 잡는 데 있어 목표로 삼은 것은 아이의 3년 내 자립이었다. 이를 앞당길 수 있는 곳에는 지원할 수 있지만 그 외에는 아이가 혼자서 해결하도록 지켜볼 계획이다. 큰돈이 들어가는 결혼도 아이에게 일정 부분을 분담시키려 한다. 대출을 받거나 의료용 비상금을 허무는 등과 같이 노후를 위협하는 무리한 지출도 하지 않을 작정이다. 기준을 세우는 가운데 흔들리는 마음을 굳게 다잡았다. 아이에게 내 노후를 저당 잡혀 여생을 암울하게 보낼 수는 없었다.
셋째, 노후 계획을 자녀에게 공유하고 세워둔 원칙에 따라 지원을 시작한다. 흔히 노후 계획은 부부만의 과제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자녀 또한 노후의 큰 영역을 차지한다. 따라서 자녀에게 부모의 노후 계획을 알리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래야 자녀도 문제를 인식하고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퇴직 후 맞닥뜨리는 경제적 변화부터 시작해서 전체적인 노후 계획에 관해 이야기하면 좋겠다. 특별히, 부모의 재산이 결코 자녀의 것이 아님을 인지시킬 필요가 있다. 혹여 자녀로 하여금 막연한 기대를 갖게 하여 과도한 도움을 바라게 해서는 안 된다.
내가 아이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말하자 아이는 당황했다. 왜 그렇게 결정했는지를 다 듣고 나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한꺼번에 하기 어려운 부분만 시일을 두고 단계를 조정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래서일까. 아이는 요사이 공부하는 틈틈이 아르바이트한다며 정신없이 지내고 있다. 두고 볼 일이지만 당장의 깨달음은 있어 보였다. 주어진 형편에 맞춰 규모 있게 생활하려는 노력이 아이에게도 유익한 과정이라 믿는다. 그리고 이러한 수고는 아이의 홀로서기를 앞당길 것이다.
결국, 퇴직자 자신도 노년에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의 모습을 객관화시켜 바라보며 냉철하게 살아가자. 지금이야 버틸 수 있어도 한정 없이 퍼준다면 나이 들어 스스로 건사하기조차 어려워질 수 있다. 그렇다면 그 짐은 고스란히 아이에게 되돌아가지 않을까. 오늘날 많은 이가 고민하는 자녀 리스크가 세대를 건너 우리 자녀를 짓누르는 부모 리스크로 연결돼서는 안 된다. 부모를 모시고 자녀를 돌보고 거기에 자기 자신까지 책임져야 하는 속칭 낀 세대는 우리 세대로 족하다.
시대가 달라졌다. 자칫하다가는 원치 않는 모습으로, 살아온 시간만큼을 더 살아야 할 수도 있다. 자녀 부양에 대해 고민하는 퇴직자에게 새로운 마음가짐이 절실한 이유이다. 만물이 소생하는 새봄, 부디 지혜로운 답을 찾으시길 소망한다.
정경아 작가·전 대기업 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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