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거부한 간호법 다시 급물살…직역 간 갈등 우려도

김윤주 기자 2024. 3. 10.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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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정, 간호법 제정 검토
복지부 ‘PA 간호사 제도화’ 힘실어
한덕수 총리 “의견 경청하고 반영”
국힘도 “간호법, 우리 입장과 부합”
윤 대통령 거부권때와 사뭇 달라져
의료공백 해소 대응 논리로 접근
‘지역사회 돌봄 강화’ 빠질 우려도
8일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간호사 등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공의들의 집단행동이 장기화함에 따라 정부는 피에이(PA·진료보조) 간호사를 적극 활용하고 향후 제도화할 방침을 밝혔다.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던 간호법이 다시 급물살을 타면서, 직역 간 갈등도 불거질 가능성이 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10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해 피에이 간호사 활용에 대해 “병원협회와 간호협회가 함께 논의하여 시범사업 지침을 마련했다”며 “앞으로도 의료체계 발전을 위해 현장 목소리를 경청하고 반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날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채널에이(A)에 출연해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보다 더 제도화하는 것까지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앞서 복지부는 전공의와 비슷한 일을 하지만 법적 근거가 불분명했던 피에이 간호사의 업무 기준을 마련하고 8일부터 적용했다.

여기에 최근 전공의 이탈로 의료 공백 우려가 커지자 당정이 간호법 제정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다. 앞서 간호법은 지난해 4월 국회를 통과했지만,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폐기됐다. 당시 윤 대통령은 “유관 직역 간의 과도한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간호 업무의 탈의료기관화는 국민 건강에 대한 불안감을 초래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공의 공백에 간호사를 활용하게 되자 한덕수 국무총리는 8일 “정부는 의료개혁에 간호사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반영할 것”이라고, 유의동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의료개혁 전반을 논의하면서 그 안에서 간호법 문제를 다루는 건 우리 입장과 부합한다”고 밝혔다.

정부의 움직임이 ‘지역사회 돌봄 강화’라는 애초 간호법 제정 취지와 달라, 이런 취지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현행 의료법은 방문간호 등을 빼고는 의료기관 밖에서 간호사 업무를 허용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지자체 보건소 간호사가 환자 가정을 방문해도 환부 소독 등 간단한 처치도 할 수 없었다. 김원일 건강돌봄시민행동 활동가는 “간호법 제정 이유는 고령화에 따라 지역사회에서 간호 돌봄의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라며 “정부가 의사 집단행동 대응이라는 전혀 다른 이유로 간호법을 이야기하면서 지역사회 관련 내용을 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아울러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이유인 ‘직역 간 갈등’이 불거질 가능성도 있다. 지난해에도 간호조무사와 응급구조사, 임상병리사 등이 업무 영역 침해를 이유로 반발했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정부는 간호법을 법률화할 경우 다른 보건의료 직역의 반발을 불러올 주요 쟁점은 수정할 움직임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10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현재는 간호법과 관련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며 “간호법이 제정된다면 지난해 재의요구권 행사의 사유가 됐던 내용에는 변화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대한의사협회(의협)는 간호법안의 ‘지역사회’ 문구를 문제 삼아 간호사가 의료기관 밖에서 단독으로 개원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라고 반발했는데, 이런 내용이 빠질 수 있다는 취지다.

한편, 정부는 이날도 전공의들에게 의료 현장 복귀를 촉구했다. 조규홍 장관은 전공의들을 향해 “불법적인 집단행동에 대해서는 법률과 원칙에 따른 처분이 불가피하다”며 “조속한 복귀와 대화를 촉구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공의들의 90% 이상인 1만1천여명이 의료 현장을 이탈한데다 울산의대 교수진이 사직서 제출 의사를 밝히는 등 교수들마저 전공의들의 집단행동에 동참할 움직임을 보였다.

또 서울아산병원, 여의도성모병원, 세브란스병원 등 교수·전문의 16명은 ‘2024년 의료 시국선언문’을 내놓았고, 10일 오후 2시 기준 전국 의사 5236명이 서명에 동참했다. 선언문은 정부의 의료 정책 추진 방식을 비판하며, 동시에 합리적 대화를 요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김윤주 기자 kyj@hani.co.kr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김가윤 기자 ga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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