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 금융지주 사외이사들, 162건 통과될 동안 반대 ‘0표’
견제·감시 외면…‘거수기’ 그쳐
KB·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금융지주 이사회에서 활동한 사외이사들이 지난해 결의된 162건의 안건 중 반대표를 행사한 경우가 단 한 번도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영활동을 견제·감시해야 할 사외이사의 역할이 여전히 찬성 ‘거수기’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10일 5대 금융지주가 공시한 ‘2023년 지배구조 및 보수체계 연차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모두 37명의 사외이사가 각 금융지주 이사회에서 활동했다.
금융그룹별로 사외이사 인원은 KB 7명, 신한 9명, 하나 8명, 우리 6명, NH농협 7명이다.
이들은 1년간 개최한 총 68차례 이사회에서 총 162건의 ‘결의안건’을 논의했다. 이 중 사외이사가 반대표를 던진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수정·조건부 가결된 3건을 포함해 162건 모두 전원 찬성으로 이사회에서 가결됐다.
각 금융지주 전반의 각종 거래 위험을 인식·측정·감시·통제하는 리스크관리위원회(신한금융은 ‘위험관리위원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각 위원회를 이룬 3~4명 사외이사들은 여기서도 안건들에 100% 찬성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금융권의 가장 큰 위험요소로 부각된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등에 관한 논의도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5대 금융지주 사외이사의 지난해 평균 보수는 7531만원으로, 시급으로 따지면 평균 약 20만원이었다. H지수 ELS 손실 규모가 가장 큰 KB금융지주는 사외이사 7명 중 3명의 보수가 1억원을 넘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사외이사 선정 절차에서 경영진에게 우호적이고 마찰을 일으키지 않을 인사들이 주로 추천되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애초부터 ‘반대하지 않는 사람들’로 이사회를 구성하는 관행이 지속된다면 전체 인원을 늘리거나 여성 비중을 높이는 것만으론 실제 변화가 나타나지는 않을 것으로 지적된다.
지난해 각 금융지주 사외이사 대다수는 전문성·기여도 등에서 ‘최우수’ ‘최고 수준’ 평가를 받았다. 사외이사 평가는 주로 자기 평가와 동료 평가 방식으로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대다수 금융지주의 대주주인 국민연금 등 국내 기관투자자가 사외이사의 경영 견제·감시 소홀을 문제 삼지 않는다”며 “근본적으로는 국내 기관투자자의 독립성 문제와 결부돼 있다”고 말했다.
김지혜 기자 kim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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