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운도, 빅뱅, 르세라핌 [1인칭 책읽기 : 선택받는 글쓰기]

이민우 기자 2024. 3. 10.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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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우 랩장의 1인칭 책읽기
유수진 작가의 「선택받는 글쓰기」
정답 없는 글쓰기 속 가장 필요한 건
누구에게도 없는 개인적 취향의 흔적
문학은 개인적이어야 한다.[사진=픽셀]

"저는 설운도와 빅뱅, 르세라핌을 좋아합니다!" 아이돌 지망생이 소속사 면접에서 좋아하는 가수를 말하라고 했을 때 이렇게 답변했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음악을 많이 듣지 않아 알고 있는 가수 이름을 모두 댔거나 음악 취향이 오락가락하거나 아예 없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15살 아니면 16살쯤 됐을까. 날 찾아온 학생은 베이지톤의 스웨터를 말끔하게 입고 있었다. 낯을 가리는지 고개를 숙이고는 자기소개를 했다. "문예창작과를 가고 싶어서 왔어요." 웅얼거리듯 이야기하는 아이를 보며 난 20년 전 혜화동을 생각했다. 나도 저 나이쯤 혜화동에서 수업을 받기 위해 시인을 찾아갔다.

당시 문학을 배우기 위해 찾아간 그곳은 눅눅한 책 냄새와 따뜻한 보리차가 있었다. 상담을 받으러 간 그날에는 '프리티우먼'이라는 영화의 주제곡이 틀어져 있었다. 당시 상담을 해주시던 선생님이 물었다. "문학엔 어떻게 관심 가지게 됐어요?"

상담온 학생은 무언가 불안한 듯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아이의 손톱은 말끔하게 잘려있었다. 스웨터의 오른손 팔목 안쪽만 보풀이 나 있었다. 나는 20년 전 한 시인이 나에게 물었던 것처럼 학생에게도 비슷한 질문을 했다. "어떤 작가를 좋아하세요?"

문학을 하겠다고 찾아오는, 정확하게 말하면 문예창작과 실기 입시를 준비하겠다는 학생들을 만나면 좋아하는 작가들을 물어보곤 했다. 그것은 일종의 자기소개와 같아서 좋아하는 작가의 이름을 3명 정도 들으면 그 아이가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 알 수 있었다. 보통은 그랬다.

학생은 조앤 롤링이 좋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김승일 시인이 좋다고 이야기하다 뭔가 기억이 나지 않는지 인상을 찌푸렸다. 얼마 후 영화 윈터솔져 속 비밀코드를 이야기하듯 칵테일, 러브, 좀비라는 단어를 고장 난 라디오처럼 끊어 뱉었다. 조예은 작가의 책 제목이었다.

국적과 장르를 훌쩍 뛰어넘는 작가들의 이름에서 학생의 취향을 알기 어려웠다. 작가 1명과 좋아하는 다른 분야의 작품이 있느냐 물었다. 황인찬 시인의 이름과 샤프의 연극이 끝난 후라는 노래를 좋아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설운도와 빅뱅, 르세라핌만큼이나 짚이는 것이 없었다. 잠시 고민하느라 학생의 얼굴을 바라보니 뭔가 자신이 잘못 답변을 한 것처럼 당황해했다. 아이가 조심스럽게 "대답 잘못한 거죠?"라고 물었을 때야 나는 웃으며 "연극이 끝난 후라는 노래는 선생님도 좋아해요"라고 말했다. 학생이 환하게 웃었다.

마음이 편해져서였을까. 아이는 그제야 소설 해리포터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이야기했다. 최근에는 소설 속 기차역을 재현한 세트장에 간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 읽는 게 좋아져 책이 좋아졌다는 이야기를 한참을 털어놓고 나서야 말했다. 그러다 물었다. "작가가 될 수 있을까요?" 그제야 학생의 얼굴 위로 겹쳐보였던 20년 전의 내 모습이 지워졌다. 나는 처음 혜화동을 찾아간 날 이렇듯 밝게 이야기를 하진 못했었다.

"될 수 있어요." 책 한 권을 학생에게 줬다. 이것이 내 답이었다. 유수진 작가의 「선택받는 글쓰기」라는 책이었다. 이 책은 일종의 작법서다. 글의 소재를 어디서 찾는지 객관적 상관물이 무엇인지 등 글쓰기 이론과 예시가 적혀 있다. 나는 이 책을 일종의 에세이라고 생각하며 읽었다. 이 책은 유수진 작가의 개인적인 글쓰기 고민이 담겨 있었고 스스로 답변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책은 답을 내주기보단 작가의 경험을 보여주고 있었다.

[사진 | 도훈]

20년 전 막 글을 배우던 때. 나는 글쓰기에 어떤 '답'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논술 문제처럼 질문에 맞는 답이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래서 클리셰처럼 가난, 재개발, 가족의 아픔 등 부지런히 어떤 문법을 흉내 내려 노력했다.

나는 곧잘 대회에 나가 상을 타곤 했다. 항상 내 상은 2등과 3등 사이를 맴돌았다. 물론 1등을 해보지 못한 건 아니었지만 다수의 글이 그랬다. 좋은 문학의 기준이 될 소재들을 외웠고, 암기했다. 필사를 하고, 합평을 하고 누군가에게 첨삭을 받고. 내 고등학교 시절 대부분의 시간은 혜화동에 머물러 있었지만 거기에는 내 이야기가 없었다. 내 이야기가 없는 것. 나는 그것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선택받는 글쓰기」는 내가 읽은 작법서 중 가장 개인적이다. 그래서 그 책이 좋았다. 나에게 상담을 받으러 온 학생의 경향성 없는 취향은 달리 말한다면 문학을 폭넓게 사랑하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색이기에 어쩌면 그 다양함이 반짝이는 빛이 될 것이라 기대한다.

어쩌면 설운도와 빅뱅, 르세라핌을 동시에 사랑하는 건 굳이 아이돌 가수가 되지 않아도 좋으니 정말 음악을 사랑하는 게 아닐까. 조앤 롤링을 건너 황인찬의 시 '무화과 숲'을 사랑한다는 그 학생은 어쩌면 문학을 정말 사랑하는지도 모르겠다. 부디 그 누구보다 개인적이길. 자신의 이야기를 쓰길. 작가라는 것은 원래 그런 것이라 말하는 유수진 작가의 마음과 내 마음이 전달됐기를 바란다.

이민우 문학전문기자
문학플랫폼 뉴스페이퍼 대표
lmw@news-pap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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