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 상병 순직 사건’ 연루자들 공천·영전…수사 뭉개고 ‘꽃길’
신범철·임종득은 총선 공천
해병대 사령관 등 모두 유임
공수처 조사는 더디게 진행
‘외압 의혹 폭로’ 박정훈 대령
보직 해임·‘항명’ 혐의 재판
지난해 발생한 ‘해병 순직 사건 수사 외압’ 사건 핵심 연루자들의 근황이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이 사건과 관련해 피의자 신분으로 출국금지 조치되고 조사를 받던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주호주대사에 임명돼 10일 출국하면서다. 당시 수사책임자로서 외압 의혹을 고발한 박정훈 대령(전 해병대 수사단장)은 항명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는 반면, 의혹에 연루된 핵심 관계자들은 총선 후보 공천을 받거나 진급하는 등 승승장구하고 있다. 외압 의혹의 윗선을 겨냥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수사가 계획대로 진행될 수 있겠느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이다.
대사 임명, 승진에 공천까지
이 전 장관, 신범철 전 국방부 차관, 임종득 전 국가안보실 2차장, 임기훈 전 국가안보실 국방비서관, 박진희 전 국방부 장관 군사보좌관. 모두 해병 순직 사건 수사에 외압을 행사한 것으로 지목되거나 당시 보고 라인에 있어 공수처에 고발된 인물들이다. 이들은 피의자 신분인데도 총선을 앞두고 여당 후보로 단독공천을 받거나 진급했다.
이 전 장관은 박 전 수사단장이 이끌던 해병대 수사단의 초기 수사 기록을 회수하도록 지시하는 등 직권을 남용한 혐의로 공수처에 고발된 핵심 피의자인데도 주호주대사에 임명됐다. 이 전 장관은 지난 1월 공수처가 국방부를 압수수색할 무렵부터 출국금지 조치를 받아왔지만, 지난 4일 주호주대사로 임명되면서 이런 조치가 사실상 무력화됐다. 법무부는 8일 “별다른 조사 없이 출국금지가 수차 연장돼 왔다”면서 이 전 장관의 출국금지를 해제했다고 밝혔다. 이 전 장관이 지난 7일 공수처에 출석해 조사를 받을 당시 수사 협조 의사를 밝혔다고는 하지만 그가 출국해 주호주대사로 부임하면 수사에 제약이 생기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신 전 차관은 박 대령의 상관인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에게 이 전 장관의 지시를 따르도록 지시한 혐의로 공수처에 고발된 상태다. 그는 해병대 측에 박 대령의 보직 해임을 압박하는 취지로 말한 의혹도 받았다. 국민의힘은 신 전 차관을 충남 천안갑 총선 후보로 확정했다.
임 전 2차장도 국민의힘 경북 영주·영양·봉화 총선 후보로 공천됐다. 임 전 2차장은 해병대 수사단이 사건 기록을 경북경찰청에 이첩한 지난해 8월2일 무렵 김 사령관과 두 차례 통화하는 등 의사 결정 과정에 개입한 의혹을 받는다.
피의자 신분인데도 ‘영전’한 사례도 있다. 해병 순직 사건 당시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국방비서관으로 근무한 임기훈 육군 1군단 부군단장(육사 47기)은 지난해 11월 신임 국방대 총장을 맡으면서 중장으로 진급했다. 박진희 전 국방부 장관 군사보좌관(당시 육군 준장)도 소장으로 진급해 육군 56사단장으로 발령받았다. 박 전 보좌관의 경우 지난 1월 공수처로부터 압수수색을 받았다.
해병 순직 사건에 연루된 주요 피의자들은 모두 유임됐다. 김 사령관은 지난해 해병대 수사단이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에게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한 조사 결과에 대해 “대통령실 회의에서 VIP(대통령)가 격노했다”고 박 대령에게 말한 것으로 지목됐다. 임 전 1사단장만 한직에 가까운 ‘정책 연수’를 받고 있는데, 이마저도 본인의 의사에 따른 인사 조처였다.
외압 폭로자만 불이익
반면 수사 외압 의혹을 폭로한 박정훈 대령은 인사상의 징계에 이어 ‘항명’ 혐의 등으로 재판을 받고 있다. 국방부는 박 대령이 ‘수사 결과를 경찰에 이첩하지 말라’는 이 전 장관 지시를 어기고 사건을 경북경찰청에 넘겼다며 지난해 8월2일 그를 보직에서 해임했다. 국방부 검찰단(군 검찰)은 같은 이유로 박 대령을 항명 및 상관 명예훼손 혐의로 지난해 10월6일 불구속 기소했다.
박 대령 항명 사건 첫 공판은 지난해 12월7일 서울 용산구 중앙군사법원에서 열렸다. 지난 2월1일 2차 공판에 김 사령관이 출석한 데 이어, 오는 21일 3차 공판에는 김화동 해병대 비서실장과 이윤세 해병대 공보실장이 출석할 예정이다. 정종범 당시 해병대 부사령관과 국방부의 박진희 당시 장관 군사보좌관, 허태근 국방정책실장, 전하규 대변인, 유재은 법무관리관 등도 군 검찰 측 증인으로 신청돼 있다.
박 대령 측은 수사 결과를 축소·왜곡하라는 불법적인 명령이 사건의 본질인데도 군 검찰이 대통령실 개입 의혹 등을 충분히 조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군 검찰은 박 대령 항명 사건 수사 과정에서 피의자로 지목된 이 전 장관을 조사하지 않았고, 국가안보실 관계자나 임 전 사단장의 진술서를 재판부에 제출하지 않아 비판받았다.
공수처는 지난 7일 이 전 장관의 출국금지 조치를 해제하기에 앞서 4시간가량 대면 조사를 벌인 것 외에 주요 피의자들에 대한 직접적인 조사는 진행하지 않고 있다.
강연주·유새슬 기자 pla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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