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룸 전세요? 중개 안합니다”...공인중개사 기피대상 1순위 된 ‘다가구’
다가구 한 호실 중개하려면
모든 호실 근저당·보증금 등
권리관계 확인 부담에 기피
세입자 못구한 임대인 발동동
10일 서울 화곡동 공인중개사 김모씨는 “집주인 분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다가구는 웬만하면 안하려고 한다. 아주 급한 경우 월세 매물은 받는데 전세는 절대 안한다”고 했다.
공인중개사들 사이에서 ‘다가구 기피’가 확산되고 있다. 전세 사기여파로 공인중개사의 설명 의무가 강화되면서 전세사기 노출 위험이 큰 ‘다가구’ 매물 자체를 꺼리게 되는 것이다. 세입자들도 다가구 전세는 기피하고 있어 다가구 집주인들은 “세입자 구하기가 너무 힘들다”며 현실에 맞는 규제를 해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중개사들 사이에서 다가구 기피가 확산된 결정타는 작년 11월에 나온 대법원 판결이다. 지난해 11월30일 대법원은 중개업자가 다른 임차인의 임대차보증금 액수, 임대차의 시기와 종기 등에 관한 사항을 설명 하지 않고 다가구주택이 임의경매로 넘어가 임차인이 보증금반환을 받지 못한 사안에서, 중개업자에게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위반했으며, 공인중개사법 제30조에 따른 배상책임을 부담한다”고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중개업자는 임대의뢰인에게 이미 거주해서 살고 있는 다른 임차인의 임대차계약내역 중 임대차보증금, 임대차의 시기와 종기 등에 관한 자료를 요구하여 이를 확인한 다음 임차의뢰인에게 설명하고 자료를 제시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 판결에 따르면, 공인중개사는 다가구 주택을 중개할때 해당 가구의 근저당뿐만 아니라, 그 건물의 다른 호수의 권리관계도 확인하여야 한다. 다른 세입자들의 전세금이 얼마인지, 기존 건물에 있던 근저당이 얼마인지 등을 확인하여 계약을 할 사람의 보증금이 안전한지를 설명해야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다가구를 중개할때 중개사는 계약하는 가구뿐만 아니라 다가구의 모든 세대의 근저당과 전세보증금 등 부채를 확인하고 시세와 비교해서 임차인, 즉 세입자가 보증금 반환을 받을 수 있을지 설명해야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원룸 여러채로 구성된 다가구 집주인이 앞에 전세 같은 게 없다고 거짓말하며 다 월세라고 한 다음에 다른 사람한테 전세를 받는 경우다. 알고보니 이미 다른 원룸들의 전세 보증금 총액이 시세보다 높아서 경매에 넘어가게 되면 세입자는 전세보증금을 못돌려받게 된다.
이러한 일을 방지하고자 법원은 공인중개사가 원룸 등 다가구의 일부 세대를 중개할때 그 건물 자체의 총 부채를 확인하고 시세와 비교해야 한다고 판결한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어렵다보니 중개사들이 “그럴바에 다가구 중개를 안하겠다”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한 공인중개사는 “집주인이 우리 집(다가구)의 근저당 금액을 구두로 알려주고 믿으라고 하는데 우리는 믿을 수밖에 없다. 다른 세입자들의 계약서를 다 가지고 오지 않는한 우리가 확인할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또다른 공인중개사는 “다른 모든 원룸의 계약서까지 가지고 오고 모든 호실의 근저당까지 확인해준 경우에만 중개를 한다. 그러나 그정도까지 해주는 집주인이 없어서 다가구 중개는 안한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중개사들도 매물 받기를 기피하는데 세입자들도 다가구전세를 기피하고 있다. 지난해 수도권 비(非)의 전·월세 계약 10건 중 7건은 월세였다. 비아파트를 중심으로 역전세·전세사기·깡통전세 등 ‘전세 리스크’가 불거진 영향이다. 부동산R114가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2023년 단독·다가구주택의 임대차 거래 중 월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69.8%로, 2022년(66.2%)보다 3.6%포인트 늘었다. 같은 기간 연립·다세대주택의 월세 비중도 39.4%에서 47.4%로 상승했다. 이는 아파트 월세 비중이 2022년 44.1%에서 지난해 42.5%로 하락한 것과 다른 양상이다.
이는 역전세·깡통전세 등 전세보증금 미반환 우려가 상대적으로 덜한 아파트에 전세 수요가 쏠린 반면 비아파트를 중심으로 월세 선호현상이 짙어진 결과로 해석된다. 부동산R114 관계자는 “비아파트는 아파트 대비 전세가율이 높은 편인데, 집값이 하락하고 깡통전세 위험에 취약해지면서 월세 전환 수요가 증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가구 임대인들은 ‘퇴로가 없다’고 호소하고 있다. 다가구에 대한 전세 수요가 급감한데다가, 기존 전세 세입자가 있는 다가구는 전세보증한도 축소로 ‘역전세’에 처해있다. 정부가 ‘깡통전세’를 막기 위해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전세보증금 반환보증(전세보증) 가입 기준을 강화하면서 전세보증보험 한도가 축소됐다. 그러다보니 현재 대부분의 다가구가 시세보다 낮은 전세보증한도가 적용돼 보증금 일부를 돌려줘야하는 상황이다.
다가구 임대인 김모씨는 “세입자도 못구하고, 기존 세입자는 보증보험이 거절됐다고 나가겠다고 한다”면서 “전세 사기 일당이 작정을 하고 사기를 친 것과 이동네에서 10년넘게 원룸 임대를 하고 있던 선량한 집주인들은 다르다. 선량한 임대인들이 파산하지 않도록 퇴로를 마련해달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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