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계획 없니?" "여성은 변동 커"…아나운서 채용 성차별 '여전'
[여성의날] UBC·연합뉴스TV, 정규직 앵커 모두 남성…여성은 프리·계약직
이산하 아나운서 법적 다툼 뒤 여성은 프리랜서→기간제 채용
[미디어오늘 김예리 기자]
UBC울산방송과 연합뉴스TV 등 여성 아나운서 부당해고와 경력단절 문제가 불거졌던 방송사들에서 남성 아나운서만을 정규직 채용하거나, 여성은 프리랜서나 계약직으로만 고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법원과 국가인권위원회가 무늬만 프리랜서 관행과 채용 성차별을 시정하라는 결론을 거듭 내놓지만, 방송사들의 여성 아나운서에 대한 성차별적 인식이 바뀌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취재에 따르면 울산지역 지상파 민영방송사인 UBC에서 일하는 아나운서는 4명으로 이 중 정규직 2명은 모두 남성이었다. 여성 2명 가운데 1명은 기간제 비정규직이었고, 나머지 1명은 UBC가 '프리랜서'로 고용했다가 해고 통보한 뒤 부당해고 판결이 확정된 당사자로 UBC가 현재까지 근로계약을 맺지 않고 있다. UBC는 경영난을 이유로 해당 아나운서가 맡았던 방송을 폐지한 뒤 그를 편집요원에 발령한 상태다.
UBC는 최소 9년 간 성별에 따라 아나운서 고용 형태를 달리 적용해왔다. 2013~2022년 남성은 본래 정규직이거나(1명) 기간제 비정규직으로 채용한 뒤 정규직 전환(1명)한 반면, 같은 기간 여성 7명은 모두 프리랜서로만 계약했다. 이들 중 현재까지 UBC에서 일하는 아나운서는 해고 통보를 받은 뒤 부당해고 법적 다툼에 나선 이산하 아나운서뿐이다. 남성의 경우 1명의 아나운서가 기간제 비정규직으로 입사했다가 이직했다.
UBC는 해고한 아나운서가 법적 다툼에 나서 승소한 뒤 이 같은 관행을 일부 틀었다. UBC는 지난해 2월 여성 아나운서 1명을 채용하면서 프리랜서 채용 관행을 깨고 '기간제 비정규직'으로 채용했다. 그러나 기간제 비정규직 채용으로 여성 아나운서에 대한 불안정 고용을 이어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UBC 전 사장, 여성 아나운서 성차별 발언” 증언도…“기억 안 나”
성별에 따른 '고용형태 차별'은 여성 아나운서에 대한 성차별적 인식에서 비롯한다. 이 아나운서는 UBC 전 사장인 A씨가 2019년 남성 아나운서 기간제 채용 당시 사내 프리랜서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했던 발언을 떠올렸다. A 전 사장은 UBC 내 회식 자리에서 한 프리랜서가 '왜 아나운서 중 여성은 계약직(기간제)도 아닌 프리랜서로 뽑느냐'고 묻자 '여성 아나운서는 변동성이 크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같은 자리에 있던 B씨도 통화에서 “(참석자 중 한 명이) 여성 아나운서를 프리랜서로만 뽑는 것을 문제 제기하자 사장이 정확한 표현은 기억나지 않지만 여성 아나운서는 거의 다 그렇게 뽑는다는 식으로 답해 '이 사람도 똑같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이산하 아나운서는 여성 아나운서들은 '결혼=해고'라는 벽에 부딪힌다고 토로했다. 이 아나운서는 “해고당하기 전 담당 팀장으로부터 '결혼 계획이 있냐'는 질문을 들었고, 돌아오고 나서도 관리자를 포함해 두 사람에게 같은 질문을 들었다”며 “되레 묻고 싶다. 결혼 계획이 있다면 여성 방송인들은 그만둬야 하는가? 기혼이고 여성 아나운서보다 나이가 많은 남자 아나운서는 일하는 상황에서 이는 성차별이라고 느꼈다”고 했다.
A 전 UBC 사장은 10일 해당 발언이 사실인지 묻는 질문에 “기억 나지 않는다. 현재 대표이사직을 떠나 자연인으로 있으며 할 말이 없다”고 했다. UBC울산방송 경영 담당자는 “회사가 채용하는 방식엔 여러 가지가 있고 그 중 하나를 택한 것이지 다른 목적을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여성 아나운서를 정규직으로 채용한 적 있는지 여부는 확인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해당 UBC 담당자는 이 아나운서 호칭을 두고 “아나운서가 아니다”라고도 강조했다.
연합뉴스TV 정규직 아나운서 1명 남성…“선례 막기”
2022년 아나운서 출산 뒤 복직을 거부하는 관행으로 국가인권위원회 차별시정 권고를 받았던 연합뉴스TV도 정규직 아나운서를 남성만 채용하고 있었다. 연합뉴스TV 보도국에서 앵커 22명 가운데 정규직은 3명으로, 남성 아나운서 1명, 남성 기자 2명이다. 반면 여성 아나운서는 프리랜서로만 채용했다. 19명의 프리랜서 아나운서 중 10명이 여성, 9명이 남성이었다.
보도전문채널 YTN의 경우 아나운서 중 여성이 더 많지만, 프리랜서 비율도 여성에서 더 높았다. YTN 보도국 앵커 26명 중 16명이 여성이었는데 이 중 정규직은 5명, 프리랜서는 11명이었다. 여성 아나운서 중 프리랜서 비율은 69%다. 반면 남성 앵커 10명 중 정규직은 4명, 프리랜서는 6명으로 남성 아나운서 중 프리랜서 비율은 60%였다.
연합뉴스TV를 상대로 인권위에 차별시정 진정을 제기했던 김난영 전 연합뉴스TV 아나운서는 이를 '유리천장을 깨는 선례 막기'로 지적했다. 김 아나운서는 먼저 “방송사들은 요즘 남성 아나운서도 비정규직으로 많이 뽑는다”고 전제한 뒤 “젊은 여성 앵커만 쓰려는 고정관념이 아직도 있다”고 했다. “어느 방송사든 남성보다 여성 아나운서 비율이 훨씬 높은 만큼, 선례를 남기고 싶지 않은 듯한 느낌을 많이 받는다. 한 여성을 정규직 전환하거나 출산 뒤 복직시키면 나머지 수십 명도 해줘야 한다는 생각”이라는 것이다.
연합뉴스TV는 임신과 출산을 이유로 5명의 아나운서에 복직을 거부했다가 인권위 권고가 나온 뒤 진정 당사자의 재계약을 거부하는 한편 다른 아나운서와 이례적 재계약을 진행해 '꼼수'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당시 연합뉴스TV는 '인권위와 상관 없는, 필요에 의한 재계약'이라며 '프리랜서 아나운서들에게 임신과 출산을 이유로 일방 고용해지 등 불이익을 준 사실이 전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는 “아나운서의 업무가 성별에 따라 달라질 이유는 없다. 그럼에도 방송사들은 스스로 '여성 아나운서는 젊어야 한다'는 사회적 편견에 기대, 여성 아나운서를 더욱 손쉽게 쓰고 버리려 하고, 정규직으로 진입시키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며 “회사는 (이 같은 채용 관행에) '별다른 목적이 없다'고 말하는데, 이는 전국적으로 문제가 불거진 뒤에도 성찰 없이 편하게 접근하는 태도란 점에서 더욱 문제”라고 말했다.
방송사들의 아나운서 성차별 채용실태는 2019년 유지은 대전MBC 아나운서 등의 인권위 진정으로 수면 위로 드러난 바 있다. 인권위는 2020년 대전MBC가 1997년 이후 남성은 모두 정규직, 여성은 모두 계약직 또는 프리랜서로 채용한 것은 명백한 차별에 해당한다며 유 아나운서 정규직 전환을 권고했다. 춘천·제주·원주를 제외한 12개 지역MBC 내 여성 아나운서 32명 중 정규직은 4명뿐이고, 남성은 29명 중 26명이 정규직인 사실이 인권위 조사로 드러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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