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논란 끝?…문신사 합법되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문신 의료행위로 본 판례 뒤집은 하급심 판결
의사단체 반발로 입법 부재 속 혼란
지난 30여년간 이어진 불문율이었다. 그런데 이 불문율이 흔들리고 있다. 복지부가 문신사 자격시험 논의를 꺼냈기 때문이다.
8일 정부와 의료계 등에 따르면 보건복지부가 지난 4일 ‘문신사 자격시험 및 보수교육 체계 개발과 관리 방안 마련 연구’를 발주한 것으로 파악됐다. 복지부는 올해 11월 최종 연구 보고서를 만들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문신사 국가시험 시행 관련 세부 규정과 문신사 위생·안전관리 교육 등 정책을 수립한다는 입장이다.
◆대법원과 헌재 ‘문신은 의료행위’
이 불문율은 대법원 판례에 근거한다. 대법원은 1992년 판결에서 문신이 의료행위라고 봤다. 의료행위는 ‘질병의 예방과 치료행위뿐만 아니라 의료인이 행하지 않으면 보건위생상 위해가 생길 우려가 있는 행위’다. 의사만 할 수 있는 일이란 뜻이다. 대법원은 직전해 눈썹 문신이 의료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을 파기했다. 피부 맨 바깥층인 표피에만 색소를 주입한다고 하지만, 작업자가 실수로 혈관계나 신경계, 림프계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진피를 건드릴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헌법재판소 역시 2022년 비슷한 결정을 내렸다. 문신사 A씨는 2021년 무면허 의료행위 혐의로 기소돼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았다. 그는 ‘의료인이 아니면 누구든지 의료행위를 할 수 없으며 의료인도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는 의료법 제27조 1항이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법에 명시된 ‘의료행위’라는 것이 지나치게 광범위하고 명확하지 않아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 위배된다는 것이었다. 또 해당 조항의 공익적 효과가 크지 않으면서 과잉금지원칙을 위배해 문신사로서 직업선택의 자유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헌재도 대법원과 마찬가지로 감염과 염료 주입으로 인한 부작용 등 위험이 따르므로, 문신 시술이 공중위생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 의료행위라고 봤다. 또 문신 시술 자격제도와 같은 대안을 도입해도 의료인과 동일한 정도의 안정성을 보장할 수 없고 이는 입법재량 영역이기 때문에 법이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해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결정했다.
문신사들의 지난한 사투는 계속돼 왔다. 문신사 노조 ‘타투유니온’은 2020년 녹색병원과 협업해 ‘타투(문신) 위생감염관리 가이드북’을 만들었다. 자체 규정을 만들어 음지에 있는 문신업을 양지로 끌어내고 국민의 건강권을 지키겠다는 취지였다.
문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각도 달라졌다. 패션 문신과 눈썹 문신이 청년뿐만 아니라 직장인들 사이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다. 20∼60대 남녀를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에서는 60대 여성이 문신을 가장 많이 하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한국타투협회 등은 국내 문신 시술 건수는 연간 500만건 이상이고 시장 규모는 2조원대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19년 보고서를 보면 국내 문신 시술자가 2만7000여명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비의료인의 문신 시술은 합법일까? 그렇지 않다. 문신 시술을 의료행위로 보지 않는 하급심 판단이 잇달아 나오고 있지만, 대법원의 확정판결을 받은 건 아니기 때문이다. 법무법인 세승 김진주 변호사는 “(문신 시술 관련) 하급심에서 (문신사에게) 무죄를 선고하는 경우가 생기면서 대법원 판례가 변경될 가능성은 있지만, 이전 판례에 의하면 여전히 위법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고 설명했다.
애매한 상황을 의식한 소비자들도 눈썹 문신 관련 문의는 전화나 문자가 아닌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하고, 비용도 현금 결제를 하는 사례가 많다. 혹시 시술 이후에 법률상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지 두려운 탓이다. 문신 수요 증가와 사회적 인식 변화에 따라 2020∼2023년에는 비의료인 시술자 자격, 영업소 신고, 위생·안전 기준 등을 담은 법 제·개정안이 11건 발의된 상태지만 계류 중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문신 시술 제도화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크다”며 “국회에 다수 발의된 법안에 대비하는 차원으로, 미리 연구를 통해 준비하려는 것”이라고 연구용역의 배경을 의료계 압박과 연결 짓는 해석에는 선을 그었다.
윤준호 기자 sherp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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