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想과 세상]밝은 곳에 거하기

기자 2024. 3. 10.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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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물항아리를 들고 내게 왔다

한 손으로 덮개를 꽉 잡은 채 아이는 말한다

자신이 물에서 헤엄치는 빛을 잡았다고

빛을 풀어놓으면

이곳도 밝아질 거라고

아이는 내 앞에서 물항아리를 열어 보였는데

빛은 담겨져 있지 않았고

물만 찰랑거렸다

나는 울상이 되어버린 아이에게

빛은 이곳이 낯설어 무서운 나머지

숨어버린 걸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나는 보고 있던 사진첩을 내려놓고

물항아리를 조심스럽게 안아 들고

아이와 함께

볕이 드는 곳으로 갔다

그곳에서 우리는 항아리 속 빛이 놀라지 않도록

천천히 덮개를 열었고

우리는 함께 항아리에 담긴 빛이 헤엄치는 것을 보았다 설하한(1991~)

나는 한때 빛을 잃어버린 마음을 안다고 생각했었다. 돌아보니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마음의 빛들이 새나가는 줄도 모르고, 안개를 쫓아다녔다.

아이가 “물에서 헤엄치는 빛”을 잡았다며 “물항아리”를 어두운 “이곳”으로 들고 온다. 물항아리 속에 있던 “빛을 풀어놓으면” “이곳도 밝아질 거라”며. 아이가 물항아리를 열자, ‘빛’이 사라져 다시 어두워진다.

아이는 미래에서 온 신. 오늘의 어둠을 빛으로 바꿔 미래로 빛을 전달해 줄 작은 신. 시인은 오래된 “사진첩”을 내려놓고, “아이와 함께 볕이 드는” “그곳”으로 간다. 아이와 함께 물항아리의 덮개를 천천히 열자, 그 속에서 “빛이 헤엄치”고 있다.

우리는 어둠에 파묻힌 길들을 밝히기 위해 ‘빛’을 더 많이 모아야 한다. 빛을 가리고 있는 벽을 부수고, 마침내 “밝은 곳에 거”하기 위해.

이설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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