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 발언대]진보운동만의 독자적 전망은 어디로 갔을까
비례 의석수는 2004년 56석에서 출발해 2008년 54석, 2016년 47석으로 줄었다. 2024년엔 46석이 되었다. 진보운동의 정치개혁 전략의 중심엔 비례대표제가 있었다. 그러나 진보당의 강성희 의원은 비례 의석수를 줄이는 법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일부 ‘진보’정당들은 민주당의 하위파트너로 민주당 위성정당에 제 발로 들어갔다. 민주노총은 위성정당을 비호하고, 시민사회 일부는 위성정당 창당과 운영에 가담하고 있다. 민주당 이중대를 넘어 선봉대를 자임하는 정당들이 우후죽순 생겼다. 신장식은 노회찬을 인용하며 조국과 손잡았다. 이합집산만 치열하고 진보운동만의 독자적 전망은 온데간데없다. 녹색정의당은 지지율 2%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진보운동의 한 순환이 종료되는 듯하다. 진보정당과 진보의 외피를 둘러썼던 노동, 시민사회 모두 근근이 유지해오던 역사와 유산을 불사르고 퇴화를 선언하고 있다.
양권모는 경향신문 칼럼(3월5일자 ‘양권모 칼럼’)에서 야당 패배를 경계하며 다음과 같이 경고한다. “정작 심판받아야 할 여권이 총선에서 이긴다면, 윤석열 정부의 실정을 용인한 걸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중략) 이 대표와 민주당의 헛발질로 윤석열 정권에 역주행의 무한대로를 열어준다면 그 책임은 누가, 어떻게 질 텐가.”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에게 자성을 촉구하고 있지만, 기저에는 윤석열 정부의 실정을 막기 위해 민주당이 승리해야 한다는 논리가 흐르고 있다.
선거마다 반복되는 ‘심판’이라는 대의하에 진보운동은 자기 지분을 서서히 갉아먹혔고, 스스로 갉아먹었다. 한편으론 보수세력 집권 책임론에 겁박당했고, 다른 한편으론 민주당에 대한 비판적 지지라는 입장으로 논리를 적극 수용했다. 진보정당 후보의 완주는 몹쓸 짓 취급을 받아왔고 윤석열 대통령의 당선으로 대역죄인이 되기도 했다. 반면 민주당과의 지역구 협상은 진보정당에는 생존을 위한 유일한 방편이기도 했다. 그러면서 지역구는 민주당, 비례대표는 진보정당을 택해달라 외치기도 했다. 서서히 기반을 상실했고 민주당 의존도는 정점에 이르렀다. 비례대표제는 진보정당의 유일한 돌파구처럼 보였으나, 진보정당 스스로의 손에 희화화된 채 앙상한 뼈대로만 남아버렸다. 어쩌면 진보운동은 보수 집권 책임론, 공포론에 잠식되거나 투항하면서 이미 퇴화의 경로에 들어섰던 것일지도 모른다.
민주당에 투항하지 않고 살아남은 자들에겐 힘겨운 시간이 될 것이다. 진보적 대안이 부재한 가운데 양당을 거부하는 시민들은 외려 퇴행적인 정당이나 포퓰리즘 정당으로 향할 것이다. 민주당을 포함한 보수 양당의 실패가 진보운동의 확장 대신 사회 전반의 퇴행으로 이어진다. 비판만으로 살아남기 어렵고, 비판 없이 살아남기도 어렵다. 구태의연하지만 진보운동은 지금의 폐허 위에서 소실된 독자적 전망을 다시 세우는 데 전념해야 한다. 심판으로 연결될 것이 아니라 구조적·제도적 대안을 만들어내는 데 연결되어야 한다. 진보가 진보이기 위한 정도는 이것뿐이다.
김건우 참여연대 정책기획국 선임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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