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 의료진 ‘구원투수’ 차출… 33%만 전공의 거쳐 ‘불안’ [의료대란 '비상']

이정우 2024. 3. 10.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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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집단사직 4주째 긴급투입
남은 의료진 응급콜·당직 시달려
일상 마비… “버티기 힘들어” 호소
교수들은 “정부가 협박” 사직 늘어
긴급투입 공보의 중 92명 '일반의'
이틀간 교육 받고 필수의료 투입
의료사고·지방 공백 우려 목소리
지난달 20일 시작된 전공의 이탈 사태가 4주째로 접어들면서 대형병원 현장에 남은 교수·전임의 등 의료진의 피로도가 한계에 이르고 있다. 병원에 남은 교수들의 사직까지 이어지자 정부는 우선 11일부터 공중보건의(공보의)와 군의관을 투입해 한 달간 ‘전공의 공백’을 메울 계획이다. 하지만 150여명에 달하는 한정적인 인원으로 전공의 빈자리를 채우기엔 역부족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공보의 차출로 인한 또 다른 의료 공백이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지난 8일 서울 시내의 한 대학병원 전공의 전용공간 앞으로 의료진과 환자가 이동하고 있다. 뉴스1
◆‘당직 지옥?’… 지쳐가는 교수들

“3일에 한 번 당직을 들어간다. 일상생활 자체가 불가능하다.”

전공의들이 대거 이탈하면서 남은 의료진은 ‘번아웃’을 호소하고 있다. 외래 진료나 수술 일정 등은 줄었지만, 주·야간 당직 등을 맡은 전공의들이 빠지면서 남은 인원으로 당직 일정을 짜는 것조차 버거운 상황이다. 한 국립대병원 교수는 10일 “2∼3주면 사태가 해결될 것으로 봤는데, 장기전으로 가는 양상이 되니 버티기 어렵다”며 “주변에 이런 이유까지 겹쳐 사직을 고려하는 분이 많다”고 전했다.

전체 교수 수가 많은 진료과는 사정이 낫지만 그렇지 않은 곳은 잦은 당직으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인력난에 허덕이던 외과계는 수술을 절반으로 확 줄이면서 버티고 있다”며 “내과계에서 상대적으로 인력이 많은 심장내과, 소화기내과는 그나마 낫지만 종양내과 등은 피로도가 높다”고 말했다. 이어 “호흡기내과의 경우도 중환자 업무가 워낙 많아 외래와 응급콜에 당직까지 다 소화하면서 지쳐가고 있다”고 말했다.
10일 서울 시내 한 중형병원에서 의료 관계자와 의대생들이 의과대학과 이어진 통로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교수들의 잇단 사직은 사기를 떨어뜨리고 있다. 앞서 충북대병원 교수와 경북대병원 교수가 사의를 밝힌 데 이어 아주대병원 교수도 최근 사직 의사를 밝혔다. 아주대병원 A교수(안과)는 지난 8일 병원 내부전산망에 “전공의들의 목소리에 전혀 귀 기울이지 않고 비민주적인 밀어붙이기와 초법적인 협박을 일삼는 태도는 견디기 어려웠다”며 사의를 밝혔다. 아주대 의대에서만 교수 3∼4명이 추가로 사직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김창수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 회장은 전날 “사직하겠다는 교수들이 제법 많다”며 “정부가 의대생 증원 규모 2000명 같은 조건을 걸지 말고 전공의들과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역거점 국립대 의대 교수들도 잇따라 전공의에 사법조치가 취해질 경우 사직서 제출 등 행동에 나서겠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충남대 의대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는 7∼8일 전체 교수(373명)를 대상으로 ‘정부의 전공의 징계 조치가 이뤄질 경우 겸직해제, 사직서 제출 등 행동이 필요하느냐’고 물은 결과 응답자의 93%(316명)가 행동 필요성에 찬성했다고 주장했다. 전북대 의대 및 전북대병원 교수들도 9∼10일 자체 긴급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188명)의 82.4%(155명)가 사직서 제출에 찬성했다고 전했다.
정부가 진료지원(PA) 간호사 제도 개선에 나선 10일 오전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에서 의료진이 간호교육실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공보의·군의관 투입… ‘단비’ 될까

정부는 전공의 이탈로 발생한 의료공백을 메우기 위해 8일부터 진료지원(PA) 간호사 시범사업 보완지침을 시행하고 11일엔 군의관과 공보의를 투입한다. 군의관 20명, 공보의 138명은 ‘빅5’와 주요 거점 국립대병원 등 20개 수련병원에 파견되는데, 이틀간 파견 병원에서 교육받고 13일부터 다음달 11일까지 필수의료 업무에 투입된다.

현장에선 수련병원 경험이 없는 군의관과 공보의에게 전공의 업무를 맡기는 데 대한 불만과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의료계 등에 따르면 공보의 138명 가운데 수련병원에서 전공의 업무를 경험해본 이들은 46명이다. 나머지 92명은 일반 진료를 담당하는 ‘일반의’로 1년간의 인턴 과정만 이수하고 레지던트 과정은 이수하지 않았다.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 이정환 회장은 “일반의는 수련병원 근무 경험이 없고, 인턴을 수료한 공보의도 보건소 등 지역의료에 종사해왔기 때문에 이렇게 갑자기 수련병원에 들어갔을 때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크다”면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공보의가) 보호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걱정을 많이 한다”고 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중대본 1차장)이 1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던 중 생각에 잠겨 있다. 뉴스1
지방 공공병원·보건소 등 의료 취약지역의 의료를 책임지던 공보의가 빠져나가면서 지방의료에 공백이 생길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 회장은 “계룡시 보건소는 업무가 중단될 가능성이 있다고 연락 받았다”며 “이럴 경우 진료 중단 외에도 보건소에서만 할 수 있는 예방접종 등에 연속성을 확보하지 못할 것 같아 걱정”이라고 밝혔다.

현장에선 군의관·공보의 투입 후 안정되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또 다른 대학병원 교수는 “아직 공보의나 군의관 분들이 몇명이나 배치될지 모르겠지만, 수련 경험 여부를 떠나 개개인의 전공이나 각 병원의 시스템도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릴 수 있다”며 “당장 번아웃을 해소하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걱정했다. 이어 “파견 기간도 한 달이라고 하니 이분들이 적응될 때쯤 다시 인원이 바뀌는 상황이 생기면 현장 혼란만 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정우·정진수·조희연 기자, 수원=송동근 기자, 전국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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