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의료대란 중대 고비, 결국 출구는 의·정 대화로 열어야
의대 증원을 둘러싼 의·정 대치가 4주째를 맞지만, 해결 실마리는 보이지 않는다. 의사들의 반발은 전공의·전임의에 이어 의대 교수들로 확대되고, 비상진료체계는 한계 상황에 맞닥뜨렸고, 정부는 장기전 채비와 각오만 다지고 있다. 급기야 의료 현장을 지켜오던 서울 8개 대형병원 교수·전문의들이 10일 공동성명을 내고 “이대로 가면 곧 의료가 붕괴한다”고 경고했다. 의료대란이 중대 고비를 맞았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이날 “비상진료체계 가동에 만전을 기하겠다”며 앞으로 4주간 20개 병원에 군의관 20명, 공중보건의사 138명을 파견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런 급처방에 안심할 사람은 없다. 빠져나간 병원 인력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고, 코로나19 팬데믹 때 겪었듯 의료진 간 호흡이 중요한 병원에서는 단순히 머릿수 채워준다고 일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공보의가 빠진 지역 의료체계도 허점이 노출되어선 안 된다. 이런 상황에서 파업 의사들이 병원에서 사력을 다하는 동료 의사를 ‘참의사’라고 조롱하면서 신상정보를 공개했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정부가 파상공세로 내놓는 의료공백 대책도 우려스럽긴 마찬가지다. 대통령실은 이날 시범사업으로 첫발 뗀 ‘진료보조(PA) 간호사 제도화’를 추진하고, 지난해 대통령이 거부한 간호법 재논의도 열어놨다. 전공의가 떠난 자리를 메우고 있는 간호사들 협조가 절실해지자 거부권 행사 1년도 안 돼 입장을 뒤집은 것이다. 이미 실질적으로 의사와 업무를 분담해온 PA 간호사를 공식화하고, 의료 수요 변화에 맞춰 간호사 업무를 확장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간호법 재추진은 이렇게 의료공백 해소 급조책이나 의사 압박용 카드로 거론할 때가 아니다. 간호사들의 정책 불신이 여전히 크고, 의료대란 와중에 간호조무사·응급구조사의 직역 갈등까지 재점화할 수 있다. 의료정책 기조를 바꿀 거면, 정부의 책임 있는 입장·사과 표명이 전제돼야 한다.
의·정은 지금 둘만의 링 위에 서 있는 것이 아니다. 정부는 위기관리 시험대에 올라 있다. 의사들의 무리한 요구에 굴복해선 안 되지만 대화의 문을 걸어잠근 채 힘으로만 밀어붙이는 것도 해결책이 아니다. 의사들도 국민의 인내심이 바닥나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의료대란으로 제때 치료받지 못해 중대 사고가 속출할 때 어떻게 감당하려 하는가. 이 사태의 출구는, 결국 하루라도 빨리 의·정 대화로 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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