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똑바로 차리고 쳐!" 명장의 한마디, 그랜드슬램으로 화답…'강정호스쿨' 다녀온 정훈의 간절함, 부활을 꿈꾼다 [MD부산]
[마이데일리 = 부산 박승환 기자] "잘하고 싶고, 경기에 나가고 싶어서…"
롯데 자이언츠 정훈은 10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2024 신한은행 SOL Bank KBO리그 시범경기 SSG 랜더스와 홈 맞대결에 1루수, 6번 타자로 선발 출전해 5타수 1안타(1홈런) 4타점 2득점으로 활약, 팀의 2연승을 이끌었다.
지난 2006년 육성선수로 현대 유니콘스에 입단, 2010년 롯데에서 처음 1군 무대를 밟은 정훈은 오랜 선수 생활 속 2021시즌이 끝난 뒤 첫 FA(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얻었다. 특히 FA를 앞두고 있던 2021시즌 정훈은 135경기에 출전해 142안타 14홈런 79타점 타율 0.292 OPS 0.818으로 '커리어하이' 시즌을 보냈고, 그해 겨울 3년 총액 18억원에 재계약을 맺는데 성공했다.
FA를 앞두고 두 시즌 연속 OPS 0.800 이상의 매우 훌륭한 시즌을 보냈던 만큼 롯데에 잔류하게 된 정훈을 향한 기대감은 분명 컸다. 하지만 FA 계약을 맺은 직후 성적이 눈에 띄게 떨어졌다. 특히 2022시즌에는 91경기에서 72안타 타율 0.245 OPS 0.620를 기록하는데 머물렀다. 지난해에는 80경기에서 56안타 6홈런 타율 0.279 OPS 0.796으로 반등에 성공했지만, 시즌 중 내복사근 부상을 당한 탓에 많은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FA 계약을 맺은 이후 2년 연속 성적과 몸 관리 등에서 아쉬움이 컸던 만큼 정훈은 2023시즌이 끝난 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는 강정호(前 피츠버그 파이리츠)를 만나기 위해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정훈은 워낙 독특한 스윙 매커니즘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강정호의 도움을 크게 받지는 못했다. 하지만 미국행을 통해 많은 것을 깨달았고, 10일 시범경기에서 드디어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물론 경기 초반의 경우 타석에서 원하는 성과를 얻지 못했다. 정훈은 1회 첫 번째 타석에서 SSG 선발 박종훈과 맞대결에서 우익수 뜬공을 기록, 3회 1사 만루의 대량 득점 찬스에서도 유격수 인필드플라이로 물러나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5회 무사 만루에서도 1루수 땅볼에 그쳤고, 6회 2사 1, 2루의 네 번째 타석에서도 유격수 땅볼로 물러나면서 이렇다 할 성과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하지만 야구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라는 말처럼 정훈도 마지막 타석에서 폭발했다.
정훈은 9-5로 추격을 당한 8회말 2사 만루에서 SSG의 바뀐 투수 이로운을 상대로 7구까지 가는 승부 끝에 스트라이크존 한가운데로 들어오는 149km 직구에 힘껏 방망이를 내돌렸다. 그리고 이 타구는 좌중간 담장을 넘어간 뒤 돌아오지 않았다. 정훈의 시범경기 첫 안타이자 홈런. 이 홈런으로 롯데는 승기에 쐐기를 박았고 13-5로 SSG를 무너뜨리며 시범경기 2연승을 달리게 됐다.
경기가 끝난 후 취재진과 만난 정훈은 "오늘 처음 시범경기에 나갔는데, 이전에도 만루를 포함해서 득점권 찬스들이 많았다. 그런데 오랜만에 경기를 하다 보니 타석에서 느낌이 별로 좋지가 않았다. 그러던 중 마지막 타석을 앞두고 감독님께서 '정신 똑바로 차리고 쳐. 편하게 그냥 들어가서 쳐!'라고 말씀을 해주시더라. 덕분에 편하게 타석에 임했던 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다"고 미소를 지었다.
이날 정훈은 홈런을 치고 더그아웃으로 돌아온 뒤 김태형 감독과 한차례 기쁨을 나눴다. 그리고 동료들의 축하를 다 받은 뒤 정훈이 다시 한번 김태형 감독에게 다가갔고, 김태형 감독이 이를 뿌리치는 장면이 중계화면에 고스란히 잡혔다. 사령탑과는 무슨 대화를 나눴던 것일까. 정훈은 "감독님께 (하이파이브를) 한 번 더 쳐달라고 했는데, '가라'면서 싫어하시더라. 그래도 끝까지 치고 왔다"며 "네 번째 타석까지 못 치면 감독님 입장에서는 다섯 번째 타석까지 내기가 쉽지 않은데, 덕분에 홈런이 나온 것 같다"고 호탕하게 웃었다.
공격에서는 경기 초반 기회를 살리지 못했지만, 정훈은 7-1로 앞선 6회초 2사 1, 2루 위기상황에서 SSG 고명준이 친 강습 타구를 특유의 핸들링으로 잡아낸 뒤 아웃카운트를 만들어내는 엄청난 호수비를 펼치기도 했다. 그는 "오늘처럼 타석에서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이면, 나 같은 선수는 수비에서 만회를 해야 한다. 때문에 더 집중했고, 운이 좋게 잘 잡혔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부활을 위해 몸부림친 정훈, 이번 겨울 '강정호 스쿨'에서 어떤 것을 배웠을까. 정훈은 "나이가 적지 않은 입장에서 10일이라는 기간은 정말 큰 동기부여 중 하나였다. 아직까지 잘하고 싶고, 경기에 나가고 싶은 마음들이 있었기 때문에 미국에 다녀왔던 것이다. 기술적인 것보다는 마음적으로 성장을 하는 시간이었다"이었다고 말 문을 열었다. 이때까지는 훈훈한 이야기가 풀어질 것 같았지만, 아니었다.
정훈은 "(강)정호가 '너는 너대로 쳐라'며 나를 중간에 포기를 하더라. 정호가 '공을 맞히는 면적을 넓게 쓰자'고 했는데, 나는 반대로 쓰고 있다고 하더라. 기분이 살짝 나쁘더라. 그래서 '내가 알아서 하겠다'고 했는데, 정호가 너무 좋아하더라"고 웃었다. 하지만 이내 "오랜만에 친구 얼굴도 봤고, 정말 좋은 이론도 많이 들었다. 같이 운동을 하면서 기술적으로도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농담을 했지만, 정훈은 실제로 부활을 위해 이번 겨울 엄청난 구슬땀을 흘렸다. 하지만 연습경기 내내 성적이 나오지 않으면서 적지 않은 마음고생을 했다. 그는 "매일 타격 일지를 쓰는데, 한탄하는 일지밖에 없더라. 그러나 이런 것을 올해만 했던 것이 아니고, 선수 생활을 하면서 5~6년을 왔다 갔다 하는 시즌을 보냈다. 그렇게 겪어봤기 때문에 오늘 좋은 타구가 하나 나온 것 같다"고 덧붙였다.
정훈과 롯데의 계약은 올해로 만료가 된다. 하지만 정훈은 2024시즌이 끝난 뒤에도 현역 생활을 이어가고 싶은 마음이 크다. 그는 "이 때문에 올해 팀 성적이 잘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야 나 또한 설자리가 있고, 경기 나갈 수 있는 기회가 있지 않겠나. 30대 초반에는 경기에 못 나갈 때면 티를 냈었는데, 이제는 경기에 나가지 못하더라도 팀을 위해서는 인상을 쓸 이유도 없고, 잘하는 선수들을 도와줄 수 있도록 하겠다"며 부활을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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