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혁신 과기정책을 말한다] 디지털 제조혁신에 사활 걸어야
연초부터 세계 각지에서 선거가 이어지는 2024년, 전 세계가 글로벌 정세의 변동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을 비롯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모디 인도 총리 등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는 강한 지도력을 앞세운 스트롱맨의 향방이 첨단패권경쟁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전망은 산업계 초미의 관심사이다.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를 비롯한 첨단산업 글로벌 경쟁의 한가운데에 놓인 우리의 대응전략에 대한 정부와 기업의 고민이 깊은 이유이다.
우리와 경쟁 중인 주요국들은 핵심기술 확보를 위한 연구·개발(R&D) 투자뿐만 아니라, 이를 제품으로 생산하는 공장설비의 고도화까지 산업가치사슬 전반에 걸친 총체적 지원을 하고 있다. 특히 제이크 설리번 美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신 워싱턴 컨센서스(New Washington Consensus)'를 주장하며, 1990년대 워싱턴 컨센서스 이후 산업 육성과정에서 인위적인 정부의 개입을 축소하고 산업정책을 금기시하였던 미국의 입장이 바뀌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백악관 내에 제조와 산업 혁신경쟁력 확보를 위한 전담 조직을 설치하려는 법안까지 논의 중인 점은, 산업정책의 재림(再臨)을 상징하는 움직임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간 기술정책, 혁신정책 등 다양한 용어로 숨겨져 왔던 산업정책이 다시금 전면에 등장한 이 시기, 산업정책의 핵심은 바로 첨단제조패권 확보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아무리 뛰어난 첨단기술을 개발해도 이를 제품으로 생산하고 산업·경제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첨단제조역량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나아가 급변하는 공급망 위험 속에서 경제안보 확보를 유지하는 핵심전략이기도 하다. 반도체법(The CHIPS Act),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앞세워 미국 내에 첨단공장을 유치하려는 정책을 펼치는 속내도 이 때문일 것이다.
글로벌 제조강국인 우리 역시 지속적인 경쟁우위 확보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그동안 축적된 제조역량과 높은 정보통신 기술역량을 활용한 디지털 제조혁신이 우리의 핵심전략이 될 수 있다. 특히 산업·경제에 있어서 제조업의 역할에 대하여 대규모 고용창출을 넘어 새로운 기술과 아이디어가 새로운 제품으로 실현되는 '혁신의 인큐베이터' 역할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다만 디지털 전환에만 지나치게 매몰돼 디지털 기술의 적용과 확산에만 초점을 맞춘 전략은 오히려 우리의 강점을 잃게 할 우려가 있다. 국내 제조업의 경쟁력과 기술수준을 면밀히 검토해 산업별 맞춤형 제조혁신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반도체, 배터리와 같이 국내 산업경쟁력이 우수하고, 필요한 기술수준도 높은 분야는 우리의 경쟁우위를 유지하고, 후발국과의 격차를 확대하는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 이때 초기 기술개발부터 설계, 양산까지 연구개발과 제품생산이 함께 이루어져 기술·공정·제품 혁신을 선도하는 '마더 팩토리(mother factory)'가 주요한 전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첨단제조공장의 국내 유치 및 해외진출 첨단기업의 국내 복귀를 촉진하는 전략도 중요하다. 기존 리쇼어링(re-shoring) 정책의 관점을 전환해 국내에 복귀하는 공장의 디지털 기술 도입과 제조혁신 고도화를 지원해 새로운 혁신 창출을 촉진할 필요가 있다.
반면, 단순·반복 작업의 비중이 높은 분야는 지나친 고사양 중심의 첨단화보다는 자동화·효율화를 통해 생산성을 제고하는 접근이 유효할 것이다. 인공지능(AI), 제조데이터 등 첨단기술의 적용과 동시에 기존 산업현장에 적용돼 있는 레거시 시스템 고도화를 위한 지원도 병행돼야 한다.
무엇보다 산업의 혁신기반으로서 첨단제조의 역할에 대한 성찰이 중요하다. 개별 기업·산업을 대상으로 한 설비·공장 단위 지원을 넘어 관련 산업의 전후방 공급망, 대학·연구소 등 R&D 시설, 숙련된 인력 등이 모인 산업 공유지(industrial common) 전반의 혁신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제조혁신 전략이 필요한 때이다.
STEPI Outlook 2024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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