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 자금’ 모으는 전세사기 피해자들…동탄 ‘협동조합’ 10개월 성과
“탄탄주택협동조합 운영 첫해 적립금을 404만5802원으로 하는 안건이 만장일치로 통과됐습니다.”
10일 오후 3시 경기 화성시 동탄 북광장의 한 사무실에서 열린 ‘탄탄주택협동조합’의 정기총회에서 첫 ‘치유적립금’ 적립안이 통과됐다. 지난해 5월 국내에서 처음으로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연대해 만든 조합이 스스로 피해를 복구하기 위한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조합은 피해자 대신 임대인으로부터 전세사기 주택의 소유권을 이전받아 임대 수익을 내 피해자들에게 분배하는 식으로 피해로 인해 무너진 삶을 복구하는 모델을 만들었다.
출범 후 총 21채의 오피스텔 인수하면서 21명의 전세사기 피해자가 조합원이 됐다. 치유적립금은 이 조합원들이 나중에 돌려받기로 약속한 출자금을 지급하기 위한 것이다.
조합은 오피스텔 매입 당시 시장 매매가의 90% 수준으로 피해자들과 전세 계약을 맺고, 나머지 10%는 출자금으로 적립했다. 전세 계약 해지 후 조합을 나가는 조합원에게 기존 보증금을 돌려주기 위한 일종의 종잣돈인 셈이다.
조합의 최종 목표는 전세사기 피해자인 조합원들에게 전세금과 출자금을 모두 지급하는 것이다.
이를 위한 첫 치유적립금의 규모는 전체 출자금 2억7857만원의 1.4%에 불과하다. 하지만 전세 사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단초라는 의미가 있다.
출범 후 10개월이 지난 현재 21명의 조합원 중 6명이 퇴거해 ‘치유 조합원’이 됐다. 조합원이 나간 오피스텔에는 전세 사기 사건과 관계없는 새 임차인이 월세·반전세로 입주해 산다. 여기서 그동안 554만원의 임대수익이 발생했다. 이날 적립하기로 한 치유 적립금은 이 임대수익과 후원금 등으로 이뤄졌다.
현재 조합은 월 180만여원씩 월세를 벌고 있다. 모든 오피스텔이 월세·반전세로 전환되면 월 수익이 580만여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탄탄조합의 방식이 직접 주택 소유권을 떠안는 ‘셀프 낙찰’을 제외하면, 현행 법적 제도 내에서 비교적 빠르게 피해를 복구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본 것이다.
김수동 조합 이사장은 “상징적으로라도 조합원들의 치유를 위한 소정의 금액을 적자를 내지 않고 적립했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면서 “장기적으로 점차 적립액을 늘려서 (조합원들이) 출자금을 모두 돌려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총회는 피해자 18명으로 출범해 21명으로 늘어난 조합원들이 그동안 정신적 충격과 생계 위기 등으로 기회를 갖지 못했다가 처음으로 다 같이 모인 자리이기도 하다.
총회에 참석한 치유 조합원 A씨는 “정부의 전세사기 피해 지원 대상에 포함되지 못한 위태로운 상황에서 조합을 알게 돼 가입하게 됐다”면서 “모두 힘든 상황이겠지만, 언젠가 피해를 회복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고 했다.
정부의 전세사기 피해지원 특별법이 시행된 지 9개월이 지났지만, 현재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매입임대주택으로 활용하기 위해 매입한 전세사기 피해주택은 1채에 불과했다. LH에 매입 신청을 한 주택의 절반은 ‘매입 불가’를 통보받았다. 정부의 방식으로는 피해 복구에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다른 지역 피해자들도 탄탄조합 방식의 피해 복구에 관심을 보인다. 3000여명의 넘는 피해자가 발생한 ‘대전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문의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조합은 이날 모든 조합원의 피해가 복구된 뒤 계속 수익이 발생하면 이를 경기도 등에 후원하겠다는 ‘사회적 책임에 대한 결의안’도 채택했다.
김 이사장은 “공공의 지원을 많이 받아온 만큼 이익을 사유화하지 말고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취지”라며 “앞으로 협동조합식 전세사기 피해 치유모델을 알려 나가겠다”라고 했다.
김태희 기자 kth08@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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