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시선] 사과, 수입하면 망하나요?

안승현 2024. 3. 10.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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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승현 경제부장
인류가 '사과'라는 과일을 먹기 시작한 역사는 대략 4000년쯤 된다고 한다. 중앙아시아 코카서스산맥에 가면 야생 사과나 배 나무가 가득한 산림이 있는데, 아마 사과의 시작은 여기서 비롯됐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짐작이다.

우리나라에는 17~18세기쯤 청나라를 통해 '능금'이 들어왔는데 이때는 귀하디귀해서 일반 백성들은 구경하기도 힘들었을 터이고, 세월이 한참 흘러 1902년이 돼서야 국광과 홍옥 품종의 재배가 시작됐다.

사과는 세계인들이 과일을 떠올릴 때 사실상 가장 먼저 연상하는 이름이다. 약 63개국에서 재배되고 있는데, 지역별로 품종은 천차만별이고 맛도 다르다 보니 거의 모든 사람의 기호를 맞출 수 있는 스테디셀러라고 부를 만하다.

그런데 이 사과의 역습에 한국 소비자들이 요즘 호되게 당하고 있다. 언제든지 냉장고에서 꺼내 와삭 한입 베어물면 상큼하고 달콤함이 입안에서 폭풍처럼 몰아치는 이 과일이 너무 귀하신 몸이 돼서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집계하는 가격정보를 지금 확인해 보면 요즘에 나오는 사과 품종인 후지가 10개 기준 최고가는 4만1000원, 평균 3만79원으로 나온다. 실제 소매시장에서는 한알에 5000원은 줘야 살 수 있다고 보면 된다. 아침 사과는 '금'이라는 말이 있는데 진짜 '금값'이 된 셈이다. 게다가 사과 값이 비싸지자 이제는 덩달아 다른 과일 가격까지 들썩이면서 정부가 안간힘을 쓰고 있는 물가 내리기 노력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사과 가격 상승은 날씨나 병충해 같은 이유 때문에 작황이 줄어들어 어쩔 수 없는 결과인데, 앞으로는 더 심해질 것이라는 게 문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사과 재배면적은 점점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10년 뒤에는 서울 여의도의 10배에 해당하는 재배면적이 사라지는데, 농가 고령화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변화다. 이렇게 되면 사과 가격은 앞으로도 계속 오르면 올랐지 내릴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는 얘기가 된다.

상황이 이렇지만 사과와 배는 수입을 할 수 없도록 엄격히 통제하고 있는 품목이다. 외국에서 사과나 배를 들여왔을 때 자칫 한국에 없는 해충이 따라오면 국내 사과농업 자체가 막대한 타격을 입을 수 있어서다. 그러나 이면에는 사과 재배농가에 대한 보호장치라는 의미도 크다.

그런데 불만이 쌓인 소비자 사이에서는 이렇게 가격이 비싸졌는데 수입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당연히 할 수 있는 생각이지만, 사과 재배농가가 들으면 경기를 일으킬 주장이다.

사실 실제로 수입을 결정하더라도 당장에 올여름부터 수입 사과를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사과를 수입하려면 총 8단계를 거쳐야 하는데 짧게 잡아도 몇 년이 걸리는 문제다. 이 때문에 외국산 사과 수입이 근본적 해결책이 되지는 않는다는 농민들의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농가 보호라는 명분 아래 국민에 대한 배려는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는 점은 꾸준히 문제로 지적될 것이다. 소비자는 오직 국산 사과만 먹어야 하도록 선택권을 제한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매가 가격을 결정하는 지금의 농산물 유통구조도 도마에 올려 놓을 때가 됐다. 정작 가격이 올라도 두둑한 이득을 챙기는 것은 대형마트와 중간유통상뿐이라는 건 오래전부터 지적받았던 문제다. 가격정보가 빠른 대형마트들이 대량으로 사재기를 해 오히려 도매시장에 출하되는 물량을 더 줄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이미 한참 전부터 사과 가격이 가장 비싼 나라가 됐다. 오랫동안 폐쇄적인 유통구조와 보호장벽을 운용한 결과다. 사실 감이나 딸기 등은 일부 국가에 한해 수입을 허용하고 있다. 방역 때문에 사과 수입에만 빗장을 걸어둔다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농가 보호와 국민의 먹거리 선택권 사이에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ahnman@fnnews.com 안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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