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상승이 가린 일본의 위기

한겨레 2024. 3. 10.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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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들어 일본 주가(닛케이지수)가 상승세를 이어가며 지난달에는 거품경제 때인 1989년 이후 최고치를 경신했다.

기업 실적이 호조를 보이는 등 주가 상승에는 근거가 있을 것이다.

일본 경제가 앞으로 계속 성장한다면 주식에 투자하는 것이 재테크의 유력한 방법이 될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주가 상승이 일본의 경제·사회가 처한 심각한 위기를 가리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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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오전 9시 개장과 동시에 일본 증시의 대표 주가지수인 ‘닛케이225’ 평균주가(닛케이지수)가 4만을 넘어서 최고치를 기록했다. 도쿄 증권거래소 닛케이지수가 적힌 전광판을 한 시민이 바라보고 있다. 도쿄/AFP 연합뉴스

[세계의 창] 야마구치 지로│일본 호세이대 법학과 교수

올해 들어 일본 주가(닛케이지수)가 상승세를 이어가며 지난달에는 거품경제 때인 1989년 이후 최고치를 경신했다. 기업 실적이 호조를 보이는 등 주가 상승에는 근거가 있을 것이다. 이를 두고 일본에서는 ‘잃어버린 30년’을 벗어났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지난해 3~4분기 연속 마이너스였고, 지난해 지디피는 독일에 역전돼 4위로 하락했다. 임금이 물가 상승을 따라가지 못하면서 실질임금은 계속 마이너스다. 또 지난해 일본에서 태어난 아이는 75만8천명으로 최저치를 기록했다. 혼인 건수도 48만9천건으로 전후 최초로 50만건을 밑돌았다. 젊은 세대가 일본의 미래에 희망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최근 경기 호조는 수출로 돈을 버는 대기업이 이끌고 있고, 주요한 원인은 엔화 가치 하락(엔저)에 있다. 엔저는 수출기업에는 혜택을 주지만, 수입물가 상승을 가져와 일반 소비자들의 부담은 커진다. 엔저는 아베 신조 2차 정권 당시인 2010년대 중반부터 추진한 대규모 금융완화의 결과다. 그 혜택은 매우 편중된 형태로 배분되고 있다.

예전에는 지디피가 증가하면 임금도 오르고 주식도 상승하는 등 자신이 근무하는 업종에 상관없이 삶의 풍요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일본 거품경제의 절정기였던 30여년 전, 나는 사회 초년생이었다. 사치를 누릴 수 있는 세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세상 전체가 즐거움을 좇아 들떠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하지만 지금은 경제지표가 제각각이다. 같은 나라에 살면서 어느 곳에는 햇빛이지만, 다른 곳에선 차가운 비가 내리는 형태다. 주가 상승은 자산가들을 부유하게 만들고 있다. 반면 도시에선 무료급식을 먹기 위해 줄을 서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강진 피해가 컸던 노토반도의 이재민 지원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호황의 혜택이 쏠려 있다면 이를 바로잡아 국민 모두에게 이익이 돌아가도록 만드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부를 늘린 기업이나 부유층으로부터 세금을 거둬 이를 사회적 약자에게 돌리는 것이 과제다. 그러나 기시다 후미오 정권은 의지가 없다. 이 정권이 추진하는 것은 소액투자비과세제도(NISA)를 확대해 서민에게 주식을 사도록 권장한다는 정책이다. 지금 주식을 사는 것은 다소 늦은 감이 있으나 정부는 서민들에게 당신도 주식으로 돈을 벌 수 있다고 선전하고 있다. 일본 경제가 앞으로 계속 성장한다면 주식에 투자하는 것이 재테크의 유력한 방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인구가 빠르게 감소하는 일본에서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올해 들어 일본 정계에선 자민당의 비자금 문제가 최대의 화두다. 얼마 전 기시다 총리가 중의원 정치윤리심사회에 출석해 비자금과 관련해 설명에 나서기도 했다. 그 일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겠다.

주가가 오르고 있지만 기시다 총리의 지지율은 계속 하락세다. 자민당 내에서는 기시다 총리 체제에서 중의원 선거를 치를 수 없다는 목소리가 확산하고 있다. 기시다 총리가 당내 반발을 억제하기 위해 올봄부터 여름에 걸쳐 중의원을 해산하고 총선거를 실시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또 한편에선 기시다 총리 퇴진 움직임이 커져, 젊은 세대나 여성을 새 총리로 내세워 이미지를 쇄신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정국의 향방은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주가 상승이 일본의 경제·사회가 처한 심각한 위기를 가리고 있다는 점이다. 정치인들은 비자금 의혹과 관련해 국민의 비판을 피하려고 정계 재편을 시도하며 문제 해결을 위한 귀중한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올해 중의원 선거가 치러진다면 일본 사회·경제 살리기를 위한 정책 논쟁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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