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재용 회장에게 이토록 관대한가
[세상읽기] 윤홍식│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소셜코리아 운영위원장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이다. 최근 ‘삼성그룹 경영권 불법승계’ 1심 재판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분식회계, 주가조작, 뇌물공여 등 19개 혐의사실에 대해 모두 무죄판결이 내려졌다. 자판기 커피를 마시려고 버스 운임에서 800원을 쓴 버스 기사의 해고가 정당하다고 판결한 법원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법원의 판결보다 더 납득하기 어려운 것은 국민 다수의 반응이다. 재벌에게 비판적인 소수를 제외하면, 국민 다수는 이재용 회장의 무죄판결에 무관심하거나 무덤덤했다. 민심의 향방을 가른다는 설 연휴 동안에도, 친구들과 지인들이 어울리는 자리에도, 이재용 회장의 무죄판결은 밥상, 술상, 찻상의 가십거리로도 오르지 않았다. 그 흔한 “무전유죄, 유전무죄”라는 푸념도 들리지 않았다.
축구 국가대표팀을 둘러싼 논란부터 대학 입시까지 세세한 일상과 불공정에 분노를 표출하고 비판했던 국민이었기에, 이번 판결에 대한 국민의 반응은 더 납득하기 어려웠다. 더욱이 이재용 회장의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작업의 하나로 추진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은 국민에게 막대한 금전적 손해를 끼쳤는데도 말이다. 정춘숙 의원실 자료를 보면 옛 삼성물산 지분 11.21%를 보유했던 국민연금은 삼성물산의 합병으로 2015년 9월부터 2023년 1월까지 무려 2451억원의 누적 손실을 보았다.
왜 이럴까? 제너럴모터스(GM)의 찰스 윌슨 회장이 했다던 그 유명한 말처럼, 이재용 회장에게 좋은 것이 삼성에 좋은 것이고, 삼성에 좋은 것이 대한민국에 좋은 것이라고 믿기 때문일까?
그럴 수도 있다. 한국예탁결제원 결산자료를 보면 2022년 12월 기준으로 삼성전자 주식을 보유한 국민이 무려 638만명에 달했다. 그러니 많은 국민이 이재용 회장이 구속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실제로 리얼미터 조사에 따르면 이재용 회장의 무죄판결에 대해 56.7%가 옳은 판결이라고 응답한 데 반해, 그릇된 판결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35.1%에 그쳤다. 이 정도면 국민이 무관심했던 것이 아니라 무죄판결을 환영했다고 할 수 있다.
만약 국민 다수가 이재용 회장 같은 재벌 총수에게 좋은 것이 국민 다수에게도 좋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무죄판결을 환영했다면, 이는 대단한 착각이다. 이 회장에 대한 판결과 주가는 관련이 없었다. 법원이 무죄판결을 내린 지난 2월5일부터 지금까지 삼성전자 주가는 하락과 상승을 반복했다. 2021년 1월과 2017년 8월 이재용 당시 부회장이 실형을 선고받았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주가만이 아니다. 1990년대 이후 삼성과 같은 재벌 대기업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고, 우리나라도 중진국 함정에 빠지지 않고 고소득 국가로 진입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 기간에 평범한 국민의 삶이 나아졌다고 말할 순 없다.1990년부터 2020년까지 지난 30여년 동안대부분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자살률은 낮아졌지만, 우리나라는 무려 168%나 높아졌다. 가계동향조사를 활용해 시장소득의 불평등을 측정한 지니계수도 1992년 0.254에서 2018년 0.335로 31.9%나 높아졌다. 가계금융복지조사를 활용한 2022년 지니계수는 무려 0.405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한국은 오이시디 회원국 중 가장 높은 노인 빈곤율, 성별 임금격차, 가장 낮은 출산율, 두번째로 높은 임시직 비율을 기록했다.
재벌 총수에게 좋은 게 국민에게 떡고물이 되어 떨어진 시대는 이미 30여년 전에 끝났다. 이재용 회장이 무죄판결을 받는다고 그런 시대가 다시 돌아올 리도 없다. 그럼에도 우리가 여전히 재벌 총수에게 좋은 게 국민에게도 좋은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 있다면, 이는 확실하지도 않은 눈앞의 작은 이익에 눈이 멀어 우리 모두의 불행을 자초하는 것이다.
실제로 실증적 연구들에 따르면 총수 일인이 지배하는 불투명한 재벌 대기업의 지배 구조가 자원 배분을 왜곡해 성장과 혁신을 방해했다. 또한 한국 증시가 저평가되는 가장 중요한 원인 중 하나도 대기업의 불투명한 지배구조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제 착각에서 벗어나 재벌 총수에게 좋은 것이 국민 다수에게 나쁜 것일 수도 있다는 현실을 직시하자. 이재용 회장이 삼성은 아니다. 삼성도 대한민국이 아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했던 말처럼 “반칙과 특권이 용납되는 시대는 이제 끝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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