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대란에도 타격 적어…전공의 비중 낮은 '중형병원' 키운다

심희진 기자(edge@mk.co.kr) 2024. 3. 10.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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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병원은 중증 환자만…정부, 회송전담병원 100곳 지정
대학병원 찾았던 경증환자들
전공의 이탈에 진료 밀리면서
중형병원으로 속속 발길 돌려
의료계 "이번 사태 기회 삼아
대형병원 쏠림 현상 개선해야"

◆ 의사 파업 ◆

10일 한산한 서울의 한 의과대학 복도를 학생이 지나가고 있다. 집단휴학 중인 의대생이 유급 사태를 피하려면 4월 말이 개강 마지노선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충우 기자

지난해 갑상선암 판정을 받은 A씨는 이달 초 세브란스병원에서 절제 수술을 하기로 했으나 전공의 파업 여파로 일정 취소를 통보받았다. 앞서 의료진에게 '암 크기가 0.6㎝로 비교적 작은 편이지만 피막과 근접해 빨리 제거하는 것이 좋다'는 진단을 받았던 터라 A씨의 불안감은 커졌다. 곧바로 일산차병원을 찾은 A씨는 그곳에서 수술 일정을 다음달 초로 잡은 뒤에야 마음을 놓았다. A씨는 "기약 없이 암을 달고 살아야 해 정신적 고통이 컸는데 천만다행"이라며 "일산차병원은 전공의 수가 많지 않아 수술 지연 사례가 거의 없다더라"고 말했다.

전공의 이탈에 따른 의료 공백으로 대형 병원의 진료 차질이 갈수록 커지면서 전문의 중심으로 운영되는 중형 병원의 역할이 주목받고 있다. 정부는 이번 기회에 대형 병원으로 환자가 쏠리는 현상을 완화하고 중형 병원이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의료전달체계를 개편할 방침이다.

10일 정부와 의료계에 따르면 지난 7일 기준 대형 병원 응급의료기관을 찾은 중등증(중증과 경증의 중간 정도)·경증 환자는 지난달 1~7일 평균 대비 32%가량 감소했다. 반면 중증 환자는 평소에 비해 변동 없이 유지되고 있다. 전공의 집단이탈이 본격화한 뒤 대형 병원이 수술실 가동률을 절반으로 줄이고 중증 질환자 위주로 집중 수용하면서 상대적으로 증상이 경미한 환자들은 중형 병원으로 분산되는 모양새다. 수도권 소재 한 상급종합병원 관계자는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예전엔 그냥 받았을 경증 환자를 다 돌려보내고 있다"며 "요즘도 수술 취소나 응급실 치료 거부 등에 반발하는 사례가 많긴 하지만 초반보다는 그 정도가 좀 누그러진 상태"라고 말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국내 의료기관은 중증 질환 입원 환자를 대상으로 의료행위를 하는 3차 의료기관인 '상급종합병원'과 이보다 중증도가 낮은 입원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병원 및 종합병원'(2차), 외래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의원'(1차)으로 분류된다. 앞서 A씨가 찾은 일산차병원은 종합병원 중 한 곳으로, 전공의 상당수가 수련교육을 받는 상급종합병원보다 전공의 비중이 작다. 일산차병원 관계자는 "올해 전공의를 받기 시작했는데 그 수가 굉장히 적다"며 "전공의 의존도가 낮아 집단이탈에 따른 영향도 미미한 편"이라고 말했다.

전공의가 아닌 전문의 위주로 운영되는 중형 병원은 의료대란 속 '든든한 허리' 역할을 하고 있다. 실제 수도권 소재 한 종합병원은 이달 들어 전체 환자가 지난달 초 대비 30%가량 늘었다. 현재 국내 2차 병원은 400곳이 넘는다. 서울 소재 한 소아전문병원 관계자는 "단순 감기 환자보다 초음파 등 검사나 입원을 해야 하는 소아가 평소보다 20% 정도 증가했다"며 "특히 심장 초음파는 사람이 몰리면서 예약 후 검사까지 보통 일주일이 걸렸는데 3주 정도로 길어졌다"고 말했다. 이어 "아무래도 3차 병원에서 진료를 받는 게 어려워지다 보니 환자들이 전문병원을 찾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의료전달체계를 정상화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수도권 소재 한 종합병원 관계자는 "경증 환자도 제한 없이 상급종합병원을 이용할 수 있으니 큰 병원 쏠림이 일상화된 것"이라며 "그 여파로 종합병원이 많이 사라졌는데 이번 일을 계기로 의료전달체계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원래 3차 병원은 지금처럼 중증·응급 환자를 담당해야 하는데, 환자가 수입이 되니까 이들 병원이 '환자 쏠림'을 조장한 측면도 있다"며 "이번 사태로 지역전문병원 등 중소형 병원이 역할을 할 계기가 마련됐다"고 설명했다.

정부도 의료전달체계를 바로세우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강구하고 있다. 2차 병원의 검사와 의뢰를 거친 환자만 상급종합병원에서 외래 진료를 볼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대표적이다. 복지부는 상급종합병원의 응급실 피로도를 덜기 위해 스스로 응급실을 찾아왔거나 직접 구급차를 부른 환자는 중증 질환으로 분류하지 않고 다른 병원으로 안내하는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1차에서 3차 병원으로 갈 경우 진료비의 80~100%를 환자가 부담하는 방안도 검토한다.

[심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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