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자장면

2024. 3. 10.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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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흔한 음식이지만 한때 자장면은 졸업식 날에나 먹을 수 있는 특별한 음식이었다.

졸업식이 끝나면 온 가족이 자장면을 먹던 시절이 있었다.

자장면과 비슷하게 만들려고 면발이 굵은 국수를 삶고 양파를 더 넣기도 했다.

자장면을 실컷 사드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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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흔한 음식이지만 한때 자장면은 졸업식 날에나 먹을 수 있는 특별한 음식이었다. 졸업식이 끝나면 온 가족이 자장면을 먹던 시절이 있었다. 졸업식 후에 무조건 중국집으로 가는 것이 당연시돼 자장면을 먹어야 졸업식이 끝난 것 같았다. 그날은 중국집이 졸업생과 가족들로 만원이었다.

어린 시절 엄마는 내게 중국집에 가 자장된장을 사오라고 하셨다. 뚜껑 있는 냄비와 자장된장 값을 주며 조심해서 잘 가져오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자장된장을 사러 나서면 엄마는 국수를 삶았다. 자장면과 비슷하게 만들려고 면발이 굵은 국수를 삶고 양파를 더 넣기도 했다. 나와 내 동생들은 시꺼먼 자장된장을 입술과 볼, 이마에도 묻히며 먹었다. 춘장이라는 단어를 모를 때였으니 자장된장이라 불렀다. 그때는 대한민국이 가난했고, 서울도 동대문구도 가난했었다. 우리 동네 사람들은 가끔씩 중국집에서 자장된장을 사와 집에서 자장면을 만들어 먹었다.

어머니는 자장면을 참 좋아하셨다. 당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필요치 않다고 하신 어머니지만 딱 한 가지, 좋아하는 음식이 자장면이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나는 어른이 되면 엄마에게 자장면을 실컷 사드려야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어른이 되었고 돈을 벌었다. 자장면을 실컷 사드릴 수 있었다. 한 달 치 자장면 값을 치르고 점심 식사로 자장면을 배달시켰다. 그만 드시겠다고 해도 계속 배달해 주세요, 싫다고 하셔도 두고 가세요, 뜨끈하게 배달해 달라고 미리 부탁했다. 우리나라도 서울도 동대문구도 형편이 나아졌다. 엄마는 매일 자장면을 드셨다.

몇 주 후 엄마는 그만 드시겠다며, 배달원에게도 그만 오라고 하셨다. 배달원은 안 된다고 했다. 한 달 동안 드셔야 한다고, 따님과 약속했다고 말했다.

"고만 묵을란다. 은제까지 묵어야 되나. 안 묵을란다."

엄마는 내 손을 잡고 안 먹겠다고 하셨다. 나는 엄마가 질릴 때까지 드시도록 하고 싶었다. 다음달 자장면 값을 치러야겠다고 말하자, 엄마는 내 손을 잡고 눈물을 글썽이며 안 먹겠다고 사정하셨다. 배달된 자장면을 보며 찡그린 웃음 한 꼬집 곱게 흘기던 눈가 주름 한 움큼이 그립다.

어린 시절 자장된장을 담아주던 중국집 사장님께 감사드린다. 그 때문에 내 어린 시절이 풍성해졌다.

중국집을 보면 국수를 삶아 채반에 건져내던 유년의 어머니와 자장된장을 온 얼굴에 묻히며 먹던 동생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게딱지같이 오종종 모여 살던 그리운 내 유년의 뜰이 무척 그리워진다.

[권명희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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