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월요일] 비누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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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누는 사라짐으로써 자기 존재의 가치를 다한다.
물에 씻겨나가며 처음보다 왜소해지다 결국 무(無)를 향해 사라지는 것이 비누의 운명이다.
손을 씻는 인간도 그 손을 씻기는 비누도 동시에 소멸의 순간으로 향하고 있다.
한 알의 비누에서 우리네 삶의 거품 같은 운명을 차분하게 응시하는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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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누가
나를 씻어준다고 믿었는데
그렇게 믿고서 살아왔는데
나도 비누를 씻어주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몸 다 닳아져야 가서 닿을 수 있는 곳,
그 아름다운 소모(消耗)를 위해
내가 복무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비누도 그걸 하고 있다는 걸
그리로 가고 있다는 걸
- 정진규 '비누' 일부
비누는 사라짐으로써 자기 존재의 가치를 다한다. 물에 씻겨나가며 처음보다 왜소해지다 결국 무(無)를 향해 사라지는 것이 비누의 운명이다. 손을 씻는 인간도 그 손을 씻기는 비누도 동시에 소멸의 순간으로 향하고 있다. 그러나 둘 간의 접촉을 통한 사라짐은 단지 없어짐이 아니라 소진이자 완성이다. 한 알의 비누에서 우리네 삶의 거품 같은 운명을 차분하게 응시하는 시다. 읽고 나면 아무 말 없이 손을 씻고 싶어진다. 두 손을 함께 맞잡으며 기도하듯이.
[김유태 문화스포츠부 기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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