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데스크] '떴다방 정당'은 정치적 배임
페이퍼컴퍼니 가짜정당 봇물
엉터리 비례대표제는 수치
새 국회 열리면 뜯어고쳐야
12년 전 19대 총선을 앞두고 통합진보당이 닻을 올렸다. 민주노동당(NL), 진보신당 탈당파(PD), 국민참여당(친노)이 뭉친 총선용 정당이었다. 대중에게 잘 알려진 유시민, 심상정, 노회찬이 간판이었으나 당의 주인은 따로 있었다. 2012년 3월 통진당 비례대표 후보를 정하는 경선에는 온갖 부정투표 방법이 총동원됐고 이석기와 김재연이 비례 2~3번을 따냈다. 그해 4월 총선에서 통진당은 정당투표의 10.5%로 비례 6명을 얻었다. 지역구에서도 7명이 당선됐으나 이내 극심한 후유증에 빠졌다.
5월 통진당 중앙위원회에선 물리적 테러까지 발생했다. 조준호 공동대표의 머리끄덩이를 잡고 악다구니를 쓰던 젊은 통진당원의 표정이 지금도 생생하다. 나이브하게 진보 빅텐트를 꿈꿨던 유시민과 심상정은 제풀에 떨어져 나가고, 체제 전복을 꿈꿨던 경기동부연합은 당당히 국회에 입성했다. 940일 뒤 헌법재판소는 헌정 사상 첫 위헌정당 해산 결정으로 통진당을 축출했다. 한국 정치판에서 '트로이의 목마'라는 단어를 회자시킨 사건이었다.
10년이 흐른 지금 통진당 후예인 진보당이 다시 총선판의 전면에 등장했다. 이들은 19대 총선 때 통진당처럼 '제3당'으로 도약하겠다고 호기롭게 주장했으나 사실상 지역구를 포기하고 비례대표로 방향을 틀었다. 방법은 역시나 '통일전선(united front)'의 구축이다. 공동의 적을 둔 다른 세력과 일시적 연합을 하는 전술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든 양심의 자유(헌법 19조)와 공무담임권(헌법 25조)을 지닌다. 진보당과 이석기를 병치하는 시각에 '색깔론'이라는 반론도 있다.
문제는 진보를 자처하는 정당들이 스스로 편법적 통로를 택하고 있다는 데 있다. 미국 하원에는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라는 인물이 있다. 미국 의회에서 가장 왼쪽에 서 있는 인물이지만 지역구 경선에서 10선 거물 조 크롤리를 꺾고 의원이 됐다. 절차적 하자를 주장할 수 없는 이유다.
조국혁신당이라는 이름부터 황당한 비례 전용 정당도 등장했다. 헌정사에 개인의 이름을 내건 정당은 없었다. '조국(祖國)'이라는 중의법을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허용했으나 잘못된 결정이다. 당령은 급조했으나 홈페이지 공약란에는 "아직 준비 중"이라는 안내만 뜬다. 조국 전 장관은 당선되더라도 대법원 유죄 판결을 받으면 의원직을 잃는다. 그럼에도 비례대표 정당 선호도 조사에서 15%를 얻고 있다. 민주당 지지층 중 친문계열이 옮겨간 덕분이다.
국민의 대표이자 개개인이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은 올바른 방법으로 선출된 권력이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비례대표 선출 방식은 국민 기만이자 정치적 배임이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정의당의 최초 제안을 더불어민주당이 수용하며 4년 전 처음 적용됐다.
이들은 정당 득표율대로 의석을 나누자는 명분과 독일도 비슷한 제도를 갖고 있다는 그럴싸한 주장을 내세웠다. 하지만 지역구와 비례 의석수가 같은 독일과 비례대표는 양념 수준인 한국은 같은 환경이 아니다. 지역구 의원을 많이 배출할수록 비례 당선자가 줄어드니 거대 양당은 '위성정당'이라는 꼼수를 냈다. 그리고 이 꼼수에 좌파 소수당들이 기꺼이 올라탔다. 그렇게 전 세계에 유례없는 '떴다방 정당'이 등장한 것이다. 만약 사기업이 이런 방식으로 계열사를 운영한다면 CEO가 구속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정치적 이득 때문에 준연동형 유지를 택했지만 후회하고 있을 듯하다. 조국이라는 트로이 목마가 총선 뒤 자신의 대권 가도에 어떤 변수가 될지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홍수를 막는 제방의 붕괴는 아주 작은 균열에서 시작된다. 한국 사회를 지탱해온 민주주의는 지금 칼과 총이 아니라 투표에서 무너지기 시작할 판이다. 22대 국회가 열리면 가장 먼저 위성정당 방지법부터 처리해야 하는 이유다.
[신헌철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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