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미도 공작원’ 인권침해 사과없이…“5월부터 사형당한 이들 유해발굴”

고경태 기자 2024. 3. 10.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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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사형집행일 맞아 국방부 비공식 추모행사
유족들과 간담회…용유도에 위령관 건립 부지 확보
10일 오전 고양시 육군 제11보급대대 내 법당 안국사에서 열린 실미도 공작원 고 임성빈, 김병염씨의 천도제에서 임성빈씨의 여동생 임일빈, 임충빈(왼쪽부터)씨가 고인의 위패와 영정 앞에서 참배하며 오열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사과는 왜 미룹니까? 도대체 언제 합니까?”

“다른 과거사 사건과 함께 고려하고 있습니다.”

“간첩이니 특수범죄자였다고 발표한 거 정정해줘야죠. 사과 안 하면 평생 죄인처럼 살아갑니다.”

“다른 과거사 사건과 함께 고려하고 있습니다.”

“왜 자꾸 다른 사건과 연결합니까? 저희가 늙어 죽는 거 기다리세요?”

“….”

실미도 사건의 마지막 공작원 4명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지 52주년이 됐던 10일 오전, 고양시 덕양구 대자동 육군 제11보급대대 내 법당 등에서 열린 추모제에서 유족들은 국방부에 ‘국가의 사과’를 다시 한번 강력하게 요구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사과를 요구받는) 다른 과거사 사건과 함께 검토 중”이라는 원론적 답변만 되풀이했다. 또한 “사형당한 이들의 유해발굴을 5월말 또는 6월초에 벽제 지역에서 실시하고 실미도 공작원을 위한 위령관 건립을 위해 올해 내 실미도 옆 용유도에 부지를 선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날 추모제는 국방부가 2013년부터 매년 주최해온 비공식 행사다. 추모제에 참석한 유족들은 봉안소에 위패가 없는 고 임성빈·김병염 씨에 대한 천도제를 법당에서 먼저 지낸 뒤 부대 내 벽제 봉안소로 이동해 나머지 2명 고 이서천·김창구 씨에 대한 천도제를 지냈다. 임성빈·김병염씨 유족들은 “유해발굴이 완료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봉안소 위패 안치를 거부해왔다. 벽제 봉안소에는 사형당한 2명의 위패와 함께 실미도에서 서울로 진입하다 군·경과의 교전 끝에 사망한 공작원 20명의 위패 및 유해도 안치돼 있다.

‘실미도 사건’이란 중앙정보부(현 국정원)와 공군이 창설한 인천 중구 무의동의 실미도 부대(공군 제2325부대 제209 파견대)에서 3년4개월 동안 훈련을 받아오던 공작원 24명이 1971년 8월23일 기간병 18명을 살해하고 실미도를 탈출해 서울로 진입하다 군·경과 교전 끝에 경찰 2명, 민간인 6명, 공작원 20명이 사망한 사건이다. 생존 공작원 4명은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1972년 3월10일 사형이 집행됐으나, 군 당국은 사체를 가족에게 인도하지 않고 암매장했다.

10일 오전 고양시 육군 제11보급대대 내 법당 안국사에서 열린 실미도 공작원 고 임성빈, 김병염씨의 천도제에서 임성빈씨의 여동생들이 고인의 위패와 영정 앞에서 참배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사형당한 뒤 암매장된 공작원 4명의 유해 발굴은 2006년 3월 서울 오류동 공군2325부대에서 진행했으나 한 구도 나오지 않았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2022년 9월 ‘실미도 부대 공작원 유해 암매장 사건’ 조사를 통해 벽제리 묘지 5-2구역이 유해 매장 가능성이 가장 높은 지역으로 판단한 바 있다. 교전 중에 사망한 실미도 공작원 20명의 유해는 2005년 11월 벽제동 서울시립묘지 1-2지역에서 발굴됐었다. 20구 중 신원이 확인된 유해는 8구였다.

이날 천도제가 끝난 뒤 열린 국방부와 간담회에서 유족들은 “3월10일 전에 사과에 대한 구체적인 안이 나온다고 해놓고 왜 소식이 없냐”고 따졌다. 실미도 사건에 대한 대통령과 장관의 사과를 요구해온 유족들은 국방부 국장급 간부인 군인권개선추진단장이 실미도 유족에게 사과 보도자료를 대독하는 방식도 수용하겠다고 양보한 바 있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배인영 군인권총괄담당관은 “4월경에 군인권개선추진단장과 유족과의 만남자리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유족들은 최근 상소권회복을 통해 진행중인 고 임성빈씨 초병살해사건의 대법원 재판과 관련해 공군 검사가 ‘상고 기각’ 의견서를 제출한 일과 지난해 8월 윤석열 대통령 이름으로 희생자들에 대한 특수임무유공자증서를 줘놓고 이를 취소하고 반납하도록 한 사실에 관해서도 항의했다. 국방부 담당관은 이에 대해 “공군검사 의견서에 관해서는 잘 모르는 사항이고, 유공자증서 취소는 보훈부 소관”이라고만 답했다.

추모제 행사가 끝난 뒤 사형당한 실미도 공작원 4명의 가족 등이 한자리에 모여 사진을 찍었다. 앞줄 맨 왼쪽부터 고 김병염씨의 형 김병익씨, 고 이서천씨 동생 이향순씨, 뒷쭐 왼쪽부터 국방부 과거사위에서 실미도 사건을 조사한 안김정애 평화여성회 대표, 교전 중 사망한 고 장선광씨의 형 장무광씨, 고 김창구씨의 조카 백영철씨, 고 임성빈씨의 여동생 임일빈씨, 임충빈씨와 남편 박인씨, 실미도 사건 암매장 유해발굴 추진단장 고은광순씨.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보훈부는 지난해 7월 고 임성빈씨 유족 임충빈씨가 낸 특수임무유공자 등록신청에 대해 결정 통보를 했으나 한 달만에 “고인께서 군사재판으로 사형된 사실이 확인되어 특수임무유공자법 적용 비대상이므로 결정을 취소한다”는 공문을 보내왔다. 그러나 보훈부는 교전 중에 사망한 공작원의 유족의 신청에 따라 결정한 특수임무유공자 증서는 취소하지 않았다. 초병살해죄로 재판을 받고 사형당한 4명만 취소한다는 기준을 삼은 셈이다. 실미도 공작원 24명 전원은 지난 2005년 특수임무수행자보상심의위원회에서 1인당 3200만원씩 보상금을 받은 바도 있다.

오빠인 고 임성빈씨의 상소권 회복 청구를 해 받아들여져 대법원에서 재판 중인 동생 임충빈씨는 “국가가 죽여놓고 제사는 몰래 왜 지내주는지 모르겠다. 유해발굴도 5월에 한다고 하지만 실제 유해가 나올 가능성은 절반이다. 이번에 유해가 나오지 않으면 후보지였던 인천 가족공원과 서울 오류동 개웅산 일원도 발굴해야 한다. 유해가 나오고 국가가 사과할 때까지 끝까지 싸우겠다”고 말했다.

진실화해위는 2022년 11월 실미도 부대 공작원의 모집과정에서 발생한 국가의 기망행위 및 사형을 선고받은 공작원 4명에 대한 ‘대법원 상고 포기 회유’가 이뤄진 사건에 대하여 “현저히 부당한 공권력 행사에 의한 인권침해”라는 결정을 내리고 국가에 사과 및 화해를 이루는 조치를 권고한 바 있다.

국가가 사형당한 실미도 공작원들에게 줬다 뺏은 특수임무유공자 증서. 보훈부는 지난해 “군사재판으로 사형된 사실이 확인되어 유공자 결정을 취소한다”고 밝혀왔다. 임충빈 제공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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