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생도 '불법 교재공유' 일상화 … 15만명이 내려받았다
법학교재 폴더째 나르는 등
매일 수백건 PDF자료 오가
10대들은 일타 족집게 문제
수만원짜리 모의고사도 공짜
운영자 "교육 불평등 해소"
"저작권법 위반" 수사 의뢰도
14만명 이상이 가입해 활동 중인 '유빈 아카이브'(불법 교재 공유 텔레그램 방)는 쉬지 않는다.
매일 수백 건의 고등학교 문제집, 수능 대비 자료 파일이 올라온다. EBS 수능 특강처럼 가장 기본적인 수능 교재뿐 아니라 이지영, 조정식 등 유명 인터넷 강사가 유료로 판매하는 자료들도 공유된다. 텔레그램 방 회원들은 "휴대폰으로 스캔해서 화질은 안 좋을 수 있지만 문제 질은 좋다"며 본인이 가진 자료를 업로드하고 필요한 책이나 자료를 요청한다.
이 텔레그램 방에 가입한 이용자 수는 10일 기준 14만3832명에 달했다. 특별한 가입 절차나 비용 없이 누구나 텔레그램 방에 접속해 자료를 공유할 수 있어서 하루에 수백 명, 많게는 1000명 가까이 가입자가 늘어나고 있다. 그동안 주로 대학가에서 이뤄지던 불법 교재 복제가 이제 온라인상에서 고등학생·수험생들에게도 성행하는 일이 된 것이다.
새 학기를 맞이한 대학가도 여전하다. 학기 초를 맞아 전공 교재를 스캔하러 서울 관악구 스캔 가게에 방문한 대학생 김 모씨(24)는 가게가 꽉 차 발길을 돌려야 했다. 신촌 한 제본 가게는 스캐너 10분 이용 금액이 2000원이고, 제본은 1000원, 제단은 3000원을 받고 있었다. 400쪽 되는 3만~5만원짜리 전공책을 6000원 내고 10분 만에 복제한 책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심지어 법을 공부하는 로스쿨생들도 교재 파일을 공유하며 저작권을 위반하고 있다. 로스쿨 커뮤니티에는 법학 교재 파일과 링크가 포함된 드라이브 폴더가 올라오기도 한다. 국내 유일 법학 수험서 출판 업체인 도서출판 인해의 백현관 대표는 "전국 로스쿨생 6000명 대부분이 불법 복제 파일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지난해 5월부터 고소를 했고 전국 로스쿨에 경고문을 보냈음에도 올해 1~2월에 출판한 책이 벌써 파일로 공유되고 있다"고 말했다. 독점 기업이 되고도 운영이 어려워졌다는 얘기다.
이처럼 학생들이 교재를 불법 복제하는 이유는 물론 금전 부담 때문이다. 지난 학기 같은 수업을 듣는 대학 동기 3명과 함께 전공책 한 권을 산 후 근처 제본 가게에서 제본해 나눠 가진 생명과학과 재학생 이 모씨(25)는 "용돈 받아 생활하는 대학생 입장에서 부담이 컸다"며 "주변에도 친한 친구들끼리 교재 비용을 나눠 구입한 후 제본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요즘 학생들이 학습에 태블릿을 이용해 스캔 파일에 큰 거부감이 없다는 것도 불법 복제가 성행하는 이유 중 하나다.
유빈 아카이브 이용자들은 한술 더 떠 텔레그램 방이 교육 격차를 해소하고 있다고도 말한다.
고3 수험생 이 모양(18)은 "이 텔레그램 방에 필요한 자료가 다 있어 공부할 때 많은 도움을 받는다"고 말했다. 수능 커뮤니티에도 '강남 대치동으로 현장 강의를 가야지 얻을 수 있는 자료와 한 회에 몇 만원씩 하는 사설 모의고사가 공유되기에 교육 격차 해결에 큰 도움이 된다'는 글들이 올라온다. 유빈 아카이브 운영자는 "사교육이 필수적이지만 비용이 부담돼 충분한 교육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며 아예 평등교육을 위해 텔레그램 방을 개설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불특정 다수에게 교재를 공유하는 것은 명백한 불법행위다. 한국저작권위원회 관계자는 "내려받은 개인까지 처벌하긴 어려울 수 있어도 저작권자 허락 없이 파일을 공유하는 것은 저작권 중 복제권·전송권 침해"라고 밝혔다. 박정렬 한국저작권보호원장은 "법을 위반하는 것은 물론이고 향후 창작자들이 새로운 창작을 하려는 의욕마저 꺾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불법 복제가 성행하며 출판업계는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지난해 9월에는 대학 교재 파일을 온라인에서 불법으로 판매하던 연세대 학생이 출판사 박영사에 의해 고발됐다. 임재무 박영사 전무는 "불법 복제는 오래전부터 있어왔지만 그 정도가 심해 처음으로 수사를 의뢰했다"며 "학생 수도 줄어드는데 무더기 교재 불법 복제가 성행해 출판사 운영이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출판사는 판매 부수보다 폐기 부수가 더 많으니 신간을 내지 않으려 하고, 창작자들은 책을 내려는 동기가 줄어들어 학술 서적 등을 내지 않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이는 장기적으로 학술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임 전무는 "요즘은 수강자 수가 50명인 강의도 대학 서점에서 교재를 10부밖에 주문하지 않는다"며 "그나마 한 부 정도만 팔리고 나머지는 반품된다"고 말했다.
[지혜진 기자 / 이용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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