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칼럼] 봄꽃들의 과속 스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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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꽃들의 과속 스캔들.'
여행전문기자와 여행작가들에게도 봄꽃 과속은 달갑지 않다.
따스한 봄날, 봄꽃 축제를 핑계로 여행 지면도 늘리고, 출장도 떠나는데 이건 뭐, 설 자리가 없다.
봄꽃 속도 위반을 '반칙'이라고 투덜댄 최승자 시인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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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꽃들의 과속 스캔들.'
2009년 2월 27일자 모 일간지 '오늘의 날씨' 기사의 제목이다. 500자 정도 되는 이 짧은 날씨 기사는 최승자 시인의 시(詩) 구절로 문을 연다.
'잎도 피우기 전에 꽃부터 불쑥 전시하다니. 개나리, 목련, 이거 미친년들 아니야? 이거 돼먹지 못한 반칙 아니야?'(최승자의 '봄')
말랑말랑한 봄을 노래해야 할 시인들까지 열(?)받게 만들 정도로, 당시 봄꽃 과속이 심했던 게다. 원래 봄꽃 확산 속도는 느려야 정상이다. 남에서부터 시속 5㎞ 남짓 속도로 북상한다. 인간이 사는 도로로 치면 이게 '규정 속도'인 셈이다. 15년여가 지난 지금, 이 봄꽃들이 또 한번 '과속' 중이다. 이번엔 거의 폭주족 수준이다.
최대 벚꽃 축제 진해 군항제는 3월 22일 막을 올린다. 61년 만에 가장 빠른 일정이다. 통상 4월에 열리는 이 축제, 전기난로로 인공부화를 하던 게 불과 몇 년 전이다. 이쯤 되면 진짜 '반칙' 같은 느낌이다. 봄이 먼저 오는 제주는 초비상이다. 3월 말까지 제주 전역에 벚꽃 축제가 이어지는데, 오픈과 동시에 '벚꽃엔딩' 상황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이미 매화가 말썽을 피운 사례까지 있다. 평년(2월 16일)보다 32일이나 빠른 지난 1월 15일 개화를 해버린 것이다. 홍매로 유명한 양산 원동마을은 아슬아슬하게 위기를 넘겼다. 매화축제 시작일(3월 9일)보다 일주일이나 빨리 꽃망울을 터뜨렸지만, 잘 버텨준 덕에 간신히 축제는 치러냈다.
노랑 빛깔의 유채밭은 요즘 보기조차 힘들다. 해마다 유채꽃 축제가 열린 부산 강서구는 아예 취소를 결정했다. 겨울철 이상고온 현상으로 싹이 겨울 '과속'을 해버렸다 자라지 못한 것. 작년에도 취소를 했으니, 내리 2년째 문을 닫은 꼴이다. 한국뿐만이 아니다. 세계 곳곳이 봄꽃 과속 스캔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
멕시코 수도인 멕시코시티에선 가로수로 쓰이는 자카란다 나무가 평년보다 1~2개월 빠른 지난달 만개를 해버렸다. 자카란다는 서리에 민감하고 아열대 기후에서 잘 자라는 종(種)이다.
남미 대부분 지역에서 보통 3월 말 보라색 꽃을 피운다. 이웃 나라 일본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지난달 20일 수도 도쿄의 낮 최고기온은 24도에 육박했다. 북동부 홋카이도 몬베쓰시의 지난달 19일 낮 기온은 평년보다 18.8도 높은 17.1도까지 올랐다. 1960년 이후 64년 만에 가장 높은 2월 기온이다. 날씨가 이러니 4월 말 벚꽃 골든타임도 확 당겨질 전망이다. 여행전문기자와 여행작가들에게도 봄꽃 과속은 달갑지 않다. 따스한 봄날, 봄꽃 축제를 핑계로 여행 지면도 늘리고, 출장도 떠나는데 이건 뭐, 설 자리가 없다. 봄꽃 축제를 소개해달라며 쏟아지던 방송 요청까지 사라질 위기다. 봄꽃 속도 위반을 '반칙'이라고 투덜댄 최승자 시인은 말한다. '동의하지 않아도/ 봄은 온다. 삼십삼 세 미혼 고독녀의 봄/ 실업자의 봄/ 납세 의무자의 봄.'
아뿔싸. 그러고 보니 남 걱정할 때가 아니다. 통장 잔고도 마이너스인데, 아들내미 등록금 납부가 코앞이다. 동의하지 않았는데, 봄과 함께 '고지서'는 날아온다. 오늘따라 속도 위반의 봄이 더 야속하다.
[신익수(여행·레저)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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