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랄한 색채·그림 속 ‘불안’ 찾기···캘리포니아 아티스트 스티븐 해링턴
귀여운 캐릭터, 화려한 색채와 그림
심리적 불안과 기후변화 위기의식 녹여내
대형 회화·조각부터 브랜드 협업 제품까지
연미복을 차려입은 개로 보이는 ‘멜로’, 장난스러운 표정의 야자수 ‘룰루’, 다채롭고 현란한 색감과 통통 튀는 그림들이 캔버스를 꽉꽉 채운다. 얼핏 봐서는 재미있는 팝아트 작품인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간단치 않다. 멜로는 생각에 잠긴 듯, 당황스러운 상황에 빠진 듯 모호한 표정을 짓고 있고, 타오르는 불덩이가 꽃과 땅을 덮친다. 벌 한 마리는 타오르는 꽃송이를 들고 “큰일이야!”라고 외치는 듯하다.
화려함과 발랄함에 눈길을 빼앗겼다가, 뜯어볼수록 생각에 잠기게 되는 작품들이다.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아티스트 스티븐 해링턴의 전시 ‘스티븐 해링턴: 스테이 멜로(Stay Mello)’가 서울 용산구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캘리포니아의 풍경과 문화가 스민 작품을 선보여온 해링턴의 국내 첫 전시로 그의 초기 판화와 드로잉부터 대형 회화와 조각, 나이키 등 다양한 글로벌 브랜드와의 협업 등 그의 작품 세계 전반을 볼 수 있다.
미술관을 가득 채운 건 작가의 분신처럼 보이는 캐릭터 멜로와 룰루다. 두 캐릭터는 작가의 작품에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멜로는 사색에 빠진 듯하며 때론 붓과 팔레트를 들고 있는데, 작가의 예술가로서의 자의식을 반영하기도 한다. 지난 5일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해링턴은 “인간의 형상으로부터 자유롭고 나이·인종·젠더와도 관계없는 캐릭터를 만들고 싶었다. 지구상 어디에, 어느 위치에 있든, 누구나 자신을 투영할 수 있는 캐릭터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작가의 첫 캐릭터 멜로는 2015년경 처음 만들어졌다. 귀여운 외모, 발랄한 그림체와 달리 작가의 불안을 반영한 캐릭터다. “수년 전 불안에 빠졌을 당시 시간과 공을 들여 그림을 그리는 창작 과정에 명상적인 성격이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림을 통해서 압박감과 불안과 걱정 또한 삶의 작은 한 부분이라는 걸 깨닫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두 캐릭터가 변주되는 그림 속엔 심리적 불안과 균형, 기후변화까지 다양한 문제의식이 녹아 있다. ‘떠나는 중(살아 있는)’(2021)의 지구에서 우주로 튕겨나가는 캐릭터들의 모습을 통해선 여러 면에서 한계상황에 직면한 지구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생명체들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꽃향기를 맡기 위해 멈춰보세요’(2023)에선 바쁜 일상과 고민은 접고 잠시 꽃향기를 맡을 수 있는 여유를 누릴 것을 권한다. ‘스테이 멜로’(2022)에선 해링턴이 만든 캐릭터들이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는 멜로(작가 자신)를 둘러싸고 내려다보는 모습을 통해 “창작을 이끄는 것이 작가 자신인지, 작가가 창조한 작품들인지에 대한 고민”을 드러낸다.
전시장에선 멜로가 미술관 바닥을 뚫고 미술관 안으로 들어온 듯한 모습의 대형 조각물, 벽면을 가득 채운 10m 너비의 대형 회화와 벽화 등 스케일 큰 작품들도 함께 볼 수 있다.
나이키, 크록스, 이케아, 이니스프리 등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해 만든 작업물도 볼거리다. 해링턴은 “현대미술을 잘 모르거나 미술관에 익숙지 않은 보통 사람들도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여러 브랜드와의 협업을 즐긴다”고 말했다. 7월14일까지. 8000~1만6000원.
이영경 기자 samemin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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