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운의 사색(史色)] "섭섭합니다" "네가 감히" 잉글랜드 지킨 전쟁영웅 국왕에게 도전장 내밀다
◆ 매경 포커스 ◆
전장에서 그는 언제나 최전방이었습니다. 불리한 전세에도 병사들은 그의 모습을 보며 용기를 냈었지요. 그와 함께라면 군사들은 무적이라고 느꼈습니다. 구름 떼처럼 모인 적군도 그의 이름을 들으면 두려움에 떨었을 정도입니다. 중세 잉글랜드의 위대한 장군 '헨리 퍼시'입니다.
스코틀랜드·아일랜드가 아직 잉글랜드에 복종하지 않았을 시절입니다. 퍼시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었습니다. 용맹함으로 이름난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의 전사들도 그 앞에서는 어린아이처럼 도망치기 바빴지요.
어찌나 전장을 열심히 누볐는지, 그의 말에 끼워진 '박차(spur)'는 늘 뜨거웠다(hot)고 전해집니다. 그의 별명이 '핫스퍼'인 이유입니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축구팀 '토트넘 홋스퍼'가 그의 이름에서 구단명을 따왔습니다. 퍼시는 어떤 인물이었기에, 토트넘에 발자국을 남길 수 있었을까요.
스코틀랜드 국경에서 태어난 '전사 중의 전사'
"그의 박차는 늘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 퍼시는 1364년 5월, 노섬벌랜드 백작의 아들로 태어납니다. 스코틀랜드 국경에서 64㎞밖에 떨어지지 않은 지역입니다. 그의 고향은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지는 '전장(戰場)'에 가까웠습니다.
퍼시는 가문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습니다. 기대에 부응했지요. 전사적 기질을 타고났기 때문입니다. 가문의 수문장이자, 잉글랜드의 수비수로 제 몫을 다합니다. 1385년 잉글랜드의 왕 리처드 2세가 스코틀랜드로 원정을 갈 때에도 그에게 동행을 청할 정도였습니다. 그의 나이는 고작 19세였지요. 첫 원정부터 스코틀랜드인들을 도륙하기 시작합니다. 마치 살인 기계와 같은 모습이었지요. 말을 타면서도 자유로이 칼을 휘두릅니다. 시간이 흘러도 결코 지치는 법이 없었습니다. 이때 스코틀랜드인들이 붙여준 별명이 '핫스퍼'였지요.
약관의 나이에 벌써 브리튼섬 전역에 '명장'으로 이름을 떨친 것이었습니다. 당시 퍼시가 프랑스와의 '백년전쟁'에서도 활약하게 된 배경입니다. 리처드 2세는 퍼시를 크게 신뢰했기에, 그를 프랑스 내에 있는 잉글랜드 영토 아키텐 공국의 군사책임자로 임명하기도 했습니다.
왕의 권력을 위협한 '핫스퍼'
"퍼시 가문을 배제하게."
군주에게 너무 뛰어난 영웅은 달갑지 않은 법입니다. 귀족에게나, 백성에게나 인기가 높았던 퍼시를 견제할 필요가 있다고 리처드 2세가 느끼기 시작합니다. 둘의 사이가 틀어진 결정적인 계기는 스코틀랜드와의 휴전 협상이었습니다. 리처드 2세가 스코틀랜드와의 국경 문제를 독단으로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국경을 맞댄 노섬벌랜드의 백작 퍼시는 철저하게 배제됩니다. 퍼시는 폭발하기 직전이었습니다만, 분노를 삭여야만 했습니다. 그는 기회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하늘은 퍼시의 편이었을까요. 리처드 2세에게 보복할 기회가 생각보다 빨리 찾아옵니다. 그를 향한 반란이 터진 것이었습니다. 주동자는 '헨리 볼링브로크'. 왕족의 일원이자 리처드 2세의 사촌이기도 한 그는 프랑스로 추방당했습니다. 영지도 몰수당하기에 이르렀지요. 왕의 권력을 위협할 만한 명망 있는 인사였기 때문이지요.
볼링브로크는 참지 않았습니다. 영지를 마음대로 처분하는 건 왕이더라도 선을 넘어선 것이었기에 대의명분도 있었지요. 리처드 2세에게 불만을 품고 있던 귀족들도 그의 '대의'에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중 하나가 '핫스퍼' 퍼시였습니다.
볼링브로크와 퍼시. 두 헨리의 만남이었지요. 잉글랜드 최고 권력자 둘의 조합이었습니다. 마침 리처드 2세는 아일랜드로 군사 원정을 떠난 차였지요. 왕은 자기 왕관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볼링브로크는 이제 헨리 4세라는 이름으로 왕좌에 앉았지요. 랭커스터 왕조의 시작이었습니다. 후대 역사가들은 이를 '장미전쟁'의 서막이라 불렀습니다(랭커스터 가문의 상징은 '빨간 장미', 정권을 탈취한 랭커스터 왕조에 대항해 요크 가문이 전쟁을 벌입니다. 요크의 상징이 '하얀 장미'였습니다).
모반으로 새 왕의 친구가 되다
헨리 4세는 '핫스퍼' 퍼시를 중용했습니다. 개국 공신인 데다 군사적으로도 잉글랜드 북부 국경을 튼튼히 지켜줬기 때문이지요. 헨리 4세 치하 웨일스 지역에서 일어난 반란을 진압한 것도, 스코틀랜드와의 호밀던 힐 전투를 승리로 이끈 인물 역시 퍼시였습니다.
든든한 신하에겐 그에 걸맞은 보상이 내려지기 마련입니다. 헨리 4세는 퍼시에게 런던 인근 지역에 영지를 하사합니다. 바로 '토트넘'이었습니다. 런던 기반 축구팀 토트넘이 멀리 떨어진 스코틀랜드 인근 지역 영주인 '핫스퍼' 이름을 따온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습니다. 퍼시가 가장 좋아했던 '싸움닭'도 토트넘의 엠블럼으로 남아 있지요. 토트넘과 퍼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인 셈입니다.
또다시 역모에 휘말린 헨리 퍼시
반골 기질이 있었던 것일까요, 아니면 토끼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잡아먹는 것이 역사의 본질이기 때문일까요. 헨리 4세와 퍼시 사이에 불화가 싹트기 시작합니다. 퍼시가 스코틀랜드와의 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뒀는데도 불구하고, 헨리 4세가 약속한 포상금을 주지 않아서였습니다.
퍼시 가문이 오랜 시간 바라 온 땅 컴벌랜드는 라이벌 가문에 하사됩니다. 반발한 퍼시는 스코틀랜드 포로들을 자신에게 넘기라는 헨리 4세의 요구에 불응합니다. 리처드 2세와 겪었던 불화가 헨리 4세와도 재점화된 것입니다. 전운이 다시 감돌았습니다.
퍼시는 승리를 자신했습니다. 헨리 4세의 반란에 의구심을 가진 귀족 세력이 많다고 생각해서였습니다. '전투의 신'이라 불리는 자기 능력도 맹신했었지요. 랭커스터 왕조에 불만이 있는 세력을 규합해 왕 헨리 4세에게 도전장을 내밉니다. 헨리와 헨리의 대립. 동지에서 적으로 돌아선 사내들의 대결이었습니다. '슈루즈베리' 전투, 1403년 7월 21일이었습니다.
한나절이 지나고, 헨리의 시체가 뒹굴었습니다. "헨리 4세가 죽었다"는 외침이 들렸습니다. 그러나 상대방이 소리칩니다. "우리 왕은 여기 계신다, 죽은 건 헨리 퍼시다"라고요. 전투에서 패한 이는 '핫스퍼'였습니다. 헨리 4세와 그의 용맹한 왕세자가 활약한 덕분이었습니다. 퍼시의 박차는 차갑게 식었습니다.
헨리 4세는 옛 친구에게 예를 다했습니다. 전투가 끝난 후 퍼시의 시신을 안고 눈물을 흘렸지요. 성대한 장례도 치러줬습니다. 하지만 수년 후 "그가 아직 살아 있다"는 소문이 들렸을 때, 헨리 4세는 잔인한 결정을 내려야만 했습니다. 그의 시체를 꺼내 전시하고, 목을 잘랐습니다. '부관참시'였습니다. 반란자는 죽어서까지 편치 못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던 것이었지요.
셰익스피어의 펜으로 영생을 얻은 '핫스퍼'
퍼시는 한 작가에 의해 영원한 명성을 얻게 됩니다. 셰익스피어였습니다. 그는 사극 여러 편을 썼었지요. 그중 대표작 하나가 '헨리 4세'였습니다. 이 작품에서 퍼시는 용감무쌍한 기사의 전형이지만 왕을 배신하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헨리 4세의 아들 '할 왕자'(헨리 5세가 모델)는 주색에 빠져 살면서도 결국 대의를 위해 칼을 잡는 인물로 묘사되지요. 한 인물을 진정한 군주로 성장시키는 위대한 '빌런'이 핫스퍼, 퍼시였던 것이지요. 그는 이 작품을 통해 잉글랜드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로 남게 됩니다(넷플릭스에서 방영된 '더 킹'에서 티모테 샬라메가 연기한 헨리 5세와 전투를 벌이는 이가 바로 퍼시, 핫스퍼 경입니다. 톰 글린 카니가 배역을 맡았지요).
퍼시는 죽었지만, 그의 후손들은 그만큼이나 영국 역사에서 깊은 발자국을 남겼습니다. 영국이 자랑하는 19세기 소설가 제인 오스틴이 대표적입니다. 현재 영국 왕위 계승 서열 1위인 윌리엄 왕세자의 부인 케이트 미들턴도 핫스퍼 경의 후손입니다. 그러나 그가 토트넘 홋스퍼의 팬인지는 명확히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이번 시즌 토트넘의 박차(spur)는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습니다. 초반 10경기 기준 무패 행진을 달리면서 역대 최고 성적을 거뒀기 때문입니다. 지금 그 박차가 조금 식은 모습이지만, 아직 시즌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토트넘의 우승을 기원합니다. 손흥민이 박차를 가할 주역이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으면서.
[강영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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