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첨단기술과 스마트 혁신으로 글로벌 관세행정 선도
올해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 'CES 2024'의 슬로건은 'All Together, All On'이었다. 모든 산업이 한데 모여 현대 인류가 마주한 문제를 혁신 기술로 함께 해결하자는 메시지다.
우리 정부 역시 '디지털 플랫폼 정부'를 주창하며, 모든 데이터가 융합되는 디지털 플랫폼 위에서 국민, 기업, 정부가 함께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자 한다. 바야흐로 기술혁신 시대가 도래했다.
법과 규제를 토대로 사회질서를 안정적으로 유지해야 하는 정부에게 이러한 세상 변화는 대응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인 동시에 또 다른 기회이기도 하다. 혁신 기술과 첨단장비를 공공 영역에서 제대로 활용할 수만 있다면 행정 효율을 비약적으로 증진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에 관세청은 지난 해 10월 새로운 비전으로 '혁신하는 관세청, 도약하는 글로벌 중추국가'를 수립했다. 대한민국이 전 세계가 인정하는 중추국가 반열에 오른 지금, 국격에 걸맞는 관세행정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는 혁신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지난 해 7월 관세청장 취임 후 가장 먼저 비전 재정립에 나선 결과다.
그리고 올해 2월 이를 실현하기 위한 실행계획인 '관세행정 스마트 혁신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여기서 '스마트 혁신'이란 규제 개혁과 디지털 혁신을 아우르는 개념으로, 국민과 기업 관점에서 관세행정 서비스를 혁신함으로써 '사회 안전'과 '국가 번영'에 기여하고 나아가 '글로벌 스탠더드를 선도'하는 전략을 의미한다.
특히 인공지능(AI)을 필두로 한 디지털 기술혁신은 스마트 혁신의 핵심 동력이다. 스마트 혁신을 통해 관세청이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와 대표 과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안전한 사회는 글로벌 중추국가가 충족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다. 치안이 보장돼야 사람이 안심하고 경제활동과 사회활동을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관광과 정보기술(IT) 중심지인 미국 샌프란시스코가 마약으로 인해 '좀비 도시'란 오명을 얻고, 대표적 복지국가 스웨덴에 갱단 폭력과 총격 사건이 난무하게 된 건 마약과 총기가 우리 사회를 어떻게 파괴하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우리나라는 일반인의 총기 소지를 제한하고 국내로의 반입을 철저히 차단하고 있어 총기 관련 문제는 크게 불거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마약의 경우 외국의 심각한 상황까지는 아니더라도 국내 마약사범이 급증하며 사회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이에 정부는 지난해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마약 문제 해결에 대한 적극적인 의지를 표명한 바 있다. 관세청도 첨단장비와 신기술을 적극 활용해 마약류, 총기류, 유해 식의약품 등 사회 안전을 위협하는 물품의 국내 반입을 원천 차단할 계획이다.
밀리미터파 신변검색기, 라만분광기 등 최첨단 감시단속 장비를 전국 공항만에 확대 보급하고, 우범여행자의 얼굴 특징을 분석해 동일 여행자를 찾아내는 AI CCTV를 설치한다. 또 AI 영상인식 기술로 기존 적발영상과 유사 영상을 찾아낸 후 화물정보와 연계·분석하는 분석기법을 개발하고, 마약류 등 고위험 선별모델에 AI 알고리즘을 도입한다.
한편 요소수 등 주요 원자재에 대한 공급망 이슈가 심각한 무역안보 침해 요인으로 떠오름에 따라 수출입 공급망 위기 징후를 조기에 포착하는 빅데이터 기반 '공급망 조기경보 시스템(C-EWS)'을 고도화해 무역안보도 확보할 계획이다.
둘째 지속적인 국가 번영은 글로벌 중추국가를 유지하기 위한 원동력이다. 이를 위해서는 경제주체들의 행정편의를 제고하고 성장을 지원하는 차원의 기술혁신이 필요하다.
관세청은 해외직구 급증세에 발맞춰 '전자상거래 전용 플랫폼'을 구축해 다양한 전자상거래 공급망과의 데이터 협업을 강화하고 소비자가 본인 개인정보와 구매 이력 등을 손쉽게 관리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또 해외직구 및 여행자휴대품에 대한 소액 관세를 모바일로 간편하게 납부할 수 있도록 개편하고, 납세증명서도 민간 모바일 앱으로 발급할 수 있도록해 사용자 편의성을 강화한다. 관세법령정보포털 및 고객지원센터에 생성형 AI 기반의 문장 검색시스템이 도입될 수 있는 기반도 마련하고자 한다.
아울러 민간 AI 산업의 성장을 위해서도 관세청이 보유한 방대한 양의 X레이 영상정보와 무역데이터를 확대 개방할 예정이다. 복합물류 보세창고에 반입할 수 있는 물품의 범위를 확대하는 등 기업 친화적으로 보세제도를 개편할 계획이다.
우리나라 주요 수출산업인 반도체, 조선 등에서의 보세공장을 활용한 수출 비중이 약 90% 수준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보세제도 혁신을 통한 경제적 효과는 상당할 것으로 기대된다.
또 공항만 스마트 물류시스템과의 연계로 별도 신고서 제출 없이 민간의 비즈니스 과정에서 생성되는 데이터만으로 행정절차를 이행할 수 있도록 하여 통관·물류 행정비용을 절감하는 방안도 찾는다.
셋째 글로벌 스탠더드 선도는 국제사회가 우리에게 글로벌 중추국가로서 기대하는 역할이다. 관세행정 분야에서도 한국 관세청은 더 이상 이미 만들어진 규칙을 추종하는 룰 테이커(Rule Taker)가 아닌 새로운 국제표준을 만드는 룰 메이커(Rule Maker)가 돼야 한다.
한국 관세청은 세계관세기구(WCO) 원산지기술위원회의 핵심 사업으로 추진 중인 '국가 간 전자원산지증명서(e-C/O) 표준지침' 제정에 있어 선구적 역할을 수행한 것을 인정받아 지난해 원산지기술위원회 의장 선출에 이어 올해 연임에 성공한 바 있다.
앞으로는 이에 더해 국제우편물의 통관절차와 관련한 국제표준 수립 논의도 주도할 예정이다. 우리의 선진화된 전자통관시스템인 유니패스(UNI-PASS)를 전 세계로 확산해 국제 관세행정의 수준을 높이고 한국형 모델이 국제표준이 되도록 추진할 계획이다. 기존 전자통관시스템에 신기술 적용 등 디지털 혁신의 성과가 가미된다면 목표 달성에 한층 더 가까워질 것이다.
우리나라는 세계 10위권의 경제 규모, 세계 6위의 무역 규모 및 군사력을 지닌 명실상부한 '글로벌 중추국가'다. 지난 해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가 발표한 글로벌 혁신국가 순위(Global Innovation Index)에서도 우리나라는 10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이에 만족하지 않고 주마가편의 마음가짐으로 공공과 민간 구분 없이 모든 분야에서 기술혁신을 멈추지 말아야 할 것이다. 관세행정 역시 끊임없는 스마트 혁신으로 대한민국이 글로벌 중추국가로서 한 단계 더 도약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고광효 관세청장 kokwanghyo@korea.kr
〈필자〉 고광효 관세청장은 전남 장성 출신으로 광주 대동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92년 행정고시(36회)에 합격해 기재부 조세분석과장, 국제조세협력과장, 재산세제과장, 법인세제과장, 조세정책과장, 조세총괄정책관 등 주요 보직을 역임했다. 기재부 세제실은 물론 국세청, 조세심판원 등을 거친 정통 조세 정책관료로 평가 받는다. 특히 윤석열 정부 첫 세제실장으로 임명돼 법인세 인하, 해외 배당 익금불산입 제도, 다주택 중과세제 완화 등 세제 개편을 주도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재정위원회 이사로도 3년간 근무한 경험이 있다. 지난해 7월 관세청장으로 취임해 경제회복과 민생안정 지원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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